천치(天痴)? 천재(天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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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치(天痴)? 천재(天才)?

  • 공개되어 있는 내용이 없어 2009.9.23~27일 직접 입력해서 올립니다.
  • 입력본은 학원출판공사의 학원한국문학전집 4권입니다.

지은이

전영택

출전

창조 2호, <1919>

본문

1

나는 성년도 되기 전부터 못해 본 것이 없이 별것을 다 하였나이다. 어려서는 물론 학교도 다녔지요. 그리고는 주사(관리)도 하였나이다. 예수 믿고 전도도 하였나이다. 어떤 회사에 가서 사무원 노릇도 하였나이다. 그뿐이겠어요? 어떤 친구와 작반해서 오입장이 노릇도 하였고, 아주 떨어져서 엿장사도 해보았나이다. 또 밥객주도 해보다가 교사 노릇도 하였나이다. 뛰어서 일본 유학생 노릇도 하였나이다. 촌에 가서 농군 노릇도 하였나이다. 녜—한때는 열렬한 애국자기 되어서 북간도 서간도로 다니면서 독립운동도 하였지요. 어떤 때는 광객 노릇도 하였나이다.

그러다가 어떻게 되어 나는 세 번째 소학교 교사 노릇을 하게 되었나이다. 나는 평생에 교사 노릇은 끔찍이 싫어하였고, 더구나 소학교 교사 노릇은 죽어도 아니하려고 하였나이다. 소학 훈장의 똥은 개도 안 먹는다는 속담도 있거니와, 실상 소학교 교사 노릇이야말로 사람은 못할 노릇이외다. 더구나 혈기 있는 청년은 참말 못할 노릇이외다. 내가 이전에 별노릇을 다 해보았으나, 소학교 교사같이 못할 노릇은 없더이다. 그러므로 나는 <세상에 노릇이 많은 가운데 훈장 노릇이 가장 어렵다> 하는 정의를 내리고, 저 혼자 늘 그 생각을 하고 있나이다.

내가 세 번째 갔던 학교는 평안도 중화군 서면예 있는 득영학교(得英學校)이었나이다. 그렇게 싫어하고, 그렇게 못할 소학교 교사 노릇을 겨우 십이원 월급에 팔려서 세 번째나 다시 하게 된 것은 정말 형편이 할 수 없어서 그런 것이지요. 늙은 어머니와 자식들과 살아갈 도리가 없고, 아주 궁해져서 교사 노릇 자리를 얻어간 것이지요.

득영학교는 중화 서면에서 꽤 세력있는 박씨 일문이 사는 촌중에서 세운 것이었읍니다. 교실은 본래 서당으로 쓰던 기와집인데, 동리 뒷산등에 들썩하게 지은 것인 고로, 그 근처 한 수십 리 안에서는 어디서 보든지 우뚝 솟은 득영학교가 눈에 얼른 띄나이다.

내가 맨 처음에 교사로 고빙1되어 봇짐을 지고 득영학교를 찾아오다가, 멀리서 보이는 회칠한 기와집을 보고 벌써 저것이 학교로구나, 짐작이 될 때에 여러 가지로 상상을 하였지요—저 학교에는 학생이 몇이나 될까? 저 학교에는 나같이 할 수 없이 되어 마지막 수단으로 몇 푼 월급에 팔려서 왔던 속 썩어진 훈장이 몇 놈이나 될까? 그래도 그 가운데도 제법 교육의 사명을 깨닫고 왔던 사람이 있을까? 무얼 있을라구‥‥‥ 훈장노릇! 에구, 또 해? 이전에 씩씩하던 생각이 나서 이마를 찌푸렸읍니다.

저 학교 생도가 적어도 열 다섯 명은 되겠지 그 가운데는 꽤 재간이 있는 천재도 있으렷다. 못나디 못난 천치도 있으렷다. 또는 흉악한 불량아도 있으렷다. 손을 댈 수가 없이 사나운 아이가 있어서, 내 말을 안 듣고 속을 썩이면 어떡하나—걱정도 해보았읍니다. —아니다. 내가 잘못하면 불량아를 만들어 놓기도 하고, 잘하면 천재나 훌륭한 인재를 만들어 놓을 수도 있고, 불량아가 변해서 우량아가 되도록 할 수도 있다. 옛날부터 농촌에서 시인 문사가 많이 나고, 위인 걸사가 많이 났다더라. 이런 생각을 하니까, 책임감으로 갑자기 짐이 무거워짐을 깨달았읍니다. 나는 문득 얼굴이 확확 달아짐을 깨달았읍니다. 나는 평시에 교육학은 한 페이지도 공부해 보지 못했읍니다. 물론 아동심리학 같은 것은 구경도 못했읍니다. 아이들의 성격과 개성을 가려볼 만한 총명한 눈도 가지지 못하였읍니다. 나는 다만 일찍 우리 아버지 덕에 쉬운 일어와 산술을 좀(겨우 분 수까지) 배웠을 따름이외다. 이것을 본전 삼고, 남의 귀한 자제를 맡아 가르치려고, 아니 돈 십이원을 거저 먹으려고 남이 땀흘려 농사지은 곡식을 편안히 앉아서 먹으러 간다고 생각을 하니, 부끄럽기가 끝이 없는 것을 염치없이 그날 저녁 여덟 시에 교감댁을 찾아 들어갔읍니다. 박교감의 인도로 학교로 을라갔읍니다. 저녁은 교감의 집에서 얻어먹었읍너다. 밥은 교감의 집에서 먹고, 거처는 학교에서 하기로 하였읍니다.

교감이 팔십원이나 들여 수리를 해서, 이제는 훌륭한 학교가 되었다고 자랑을 하는 교실은 밤이면 교사가 거처하는 방까지 합하여 두 칸 반이요, 깨진 유리창 한 개가 달린 것이 가장 신식이더이다.

교감이 내려간 후에 혼자서 자려니까 미상불 좀 무서운 생각이 나더이다. 나보다 먼저 왔던 선생이 혼자 자다가 승냥이한테 물려 가지나 아니하였나, 흑은 이 반칸 방에서 밤에 대들보에 목을 매고 죽지나 아니하였나, 목매 죽은 귀신이 퍽 무섭다는데‥‥‥교감이라는 영감이 벌써 얼른 보기에 천하 깍쟁이 같더라. 꼭 괭이 수염같이 노오란 것이 몇 오라기가 까부러진 매부리코 밑에 밭디밭은 입술 위에 빳빳 뻗치고, 눈은 연해 핼금핼금2하고, 공연히 헛기침을 자주 하는 것은 아무 보아도 깍쟁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나는 처음 보고 이내, 네가 아전 노릇으로 늙어 털이 노래졌구나, 하였읍니다. 이 동리 양반?들은 모두 다 몹시 교만하다는 말과 교사를 거지같이 여겨 괄시한다는 말을 들었읍니다. 아이들까지도 그 감화를 받아서 교사 따위는 우습게 알고, 제법 업신여긴다는 말과, 학교가 겨울에는 지독히 춥다는 말도 듣고 왔읍니다.

그래서 나는 분명히 분명히 목매 죽거나 얼어죽은 놈이 있으리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얼어죽은 놈은 반드시 있으리라고 하였읍니다. 당장 숭글숭글 터진 담 틈으로는 하늘의 별이 보이고, 산산한 가을 바람이 솔솔 불어 들어오더이다. 목매 죽은 귀신이 오면 어떡허나, 금년 겨울에 얼어 죽지나 않을까 별생각을 다 하고, 나같이 못난 놈을 하늘같이 믿고 있는 우리 어머님과 동생들 생각을 하다가 모르는 새에 잠이 들었읍니다.

다음날 오후에 나는 컴컴한 방안에 있기가 싫어서 혼자 뒷산으로 올라갔읍니다. 가을 하늘이 마치 잔잔간 호수같이 맑고, 넘어가던 석양빛은 먼 산 가까운 촌을 자홍색으로 물들여 놓았더이다. 나는 산꼭대기까지 올라가서 아랫동네를 내려보다가, 저—건너편 읍내에 대문은 기울어지고 담이 무너지고, 기와가 떨어진 한편쪽을 저문 햇빛에 목욕시키는 향교를 보고 감개한 느낌을 못이겨 하는데, 내 발밑에서 ‘선산님!’ 하는 소리가 들리더이다. 나는 깜짝 놀라서 굽어본즉 어디서 잠간 본 듯한 아이가 숨이 헐떡헐떡하면서 나를 쳐다보고 있더이다. 얼굴은 둥그렇고 머얼건데, 눈에 흰자위가 많고 빙글빙글 웃는 것이 어째 수상하게 보이더이다. 그 웃음은 나를 반기는 것인지, 너는 또 무얼 하러 왔니? 하고 성가신 물건이라는 표정인지 알 수 없는 이상한 웃음이더이다.

밥 먹으래! 하는 말에 웃음을 참지 못하였으나, 그애가 박교감집 아이인 줄은 얼른 짐작했읍니다. 나는, 오냐 가자 하고 내려가면서, 네 이름이 무어냐? 하고 물었읍니다. 칠성이 이것이 그 대답이었읍니다. 머리를 한 번 끄떡하더니 다시 흔들고는 입을 벌리고 나를 쳐다보더이다. 나는 속으로 짐작되는 것이 있어서 다시 더 묻지 아니하고 그 손을 잡고 슬금슬금 내려갔읍니다. 내려가면서, 나이는 몇 살이냐? 물은즉 얼굴이 갑자기 이상해지면서 대답을 아니하기에 다시 한번 물었읍니다. 그때에야 입술을 쭝긋쭝긋하더니,

“응—열세 나서.”

이상한 소리를 지르겠지요. 나는 다정하게

“너 학교에 다니니?”

말을 이어 물었습니다.

“응.”

“몇년급이냐?”

이 말에는 대답을 아니하고 히히 웃더니, 내 손을 뿌리치고 갑자기 큰 소리를 내서,

<학도야 학도야 청년 학도야> 노래를 부르고 먼저 막 달아나더니 보이지 아니합니다.

내가 장차 가르칠 득영학교 학생으로 처음 만난 것이, 이 이상한 아이 칠성이었읍니다. 나는 하도 우습기도 하고 이상해서, 이리저리 생각을 하면서 천천히 박교감 집으로 내려가 저녁을 먹었읍니다.

2

내려가서 알아보니까, 칠성이는 박교감의 누이 되는 과부의 아들이라 합니다.

이튿날 아침에 밥을 먹는데, 지난 저녁에 나를 부르러 와서 만났던 칠성이가 방문 밖에서 나를 보고, 반가운 듯이 벌쭉벌쭉 웃으며 문지방을 손톱으로 뜯고 서 있더이다.

“칠성이냐, 밥 먹었니?”

나도 반가와서 말을 붙였으나, 아무 대답도 아니하고 그냥 웃기만 하더이다.

나는 이리저리 주의도 하고 말을 들어서, 하루 이틀 지내는 새에 칠성이의 사정을 대강 알게 되었읍니다.

그 칠성이의 성은 정씨인데, 본시부터 좀 부족하게 태어났다 합니다. 말하자면 천치지요. 그 모친은 청춘에 그 남편을 잃고 본가로 돌아와서, 칠성이와 그 위로 열여섯살 된 딸 하나와 두 아이를 데리고, 그 오라버니 박교감을 의지하고 한집에 같이 사는 것이었읍니다.

박교감도 처음에는 천치란 것을 감추고 있더니, 하루는 종내 그 생질이 천치인 것을 말하고, 가르쳐야 쓸데없어 단념을 하였다는 말을 들었읍니다.

박교감의 말을 들은 즉, 그 매부되는 사람이 본래는 그 집이 읍내의 갑부로서, 열두살에 혼인을 했는데, 그때부터 몹시 잡기를 좋아해서 며칠씩 밤을 새워가면서 투전을 하는 것이 보통이요, 그 어머니는 마음이 약해서 번번이 돈을 당해 주는데, 그것을 그 부친이 알면 벼락같이 노해서 야단을 하기 때문에, 자기 누이는 출가한 후로 하루도 옷벗고 편안히 잠을 자본 일이 없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매부는 차차 술먹기를 배워서 나중에는 아주 큰 술꾼이 돼 버려서, 술을 잔뜩 먹고 들어와서는 돈내라고 야단하여 무죄한 그 아내를 함부로 꼬집고 때리니, 그 누이는 청춘 시절을 장 눈물로 보낼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나중에는 계집질까지 하고 돌아다니다가, 또 종내 아편침을 맞기 시작해서 아편 중독자가 되고, 주색의 여독으로 무서운 병이 들어서 고생을 하다가 죽었다고 합니다. 아버지도 술을 몹시 먹었는데, 젊어서 죽고, 칠성이의 아버지도 부친의 그 뒤를 그대로 따른 모양이외다.

박교감에게 이런 말을 들은 뒤에 한 주일 지난 일요일날인데, 나는 갑갑해서 박교감하고 이야기나 하려고, 오후에 저녁때는 아직 이르나, 슬금슬금 내려갔읍니다. 박교감은 없고 한 삼십 될락말락한 아직 젊은 부인이 안으로 향한 문을 열더니 밥상을 들고 들어오더이다. 나는 얼른 칠성이의 어머닌 줄 알았읍니다.

나는 점은 부인이 밥상을 가지고 들어오는 것이 황송하기도 하려니와, 수줍은 생각에 그 얼굴을 바로 보지는 못하였읍니다. 그는 무슨 말을 할듯말듯하다가 머리를 숙이고 그냥 나가 버렸읍니다.

내가 밥을 다 먹고 나니까, 칠성이의 어머니가 다시 들어오더니 이번에는 문안에 앉더이다. 머리를 숙이고 한참이나 있더니 말을 꺼내더이다.

“선산님.“

”녜.“

하고 나는 공손히 대답하였읍니다. 부인은 그 아래를 이어,

“이렇게 말씀드리기는 어려워도‥‥‥”

하고, 또 말을 그치더니, 조금 있다가,

“저것을 하나 믿고 사는데, 암만 일러도 하는 공부는 아니하고 장난만 합네다가레. 공부를 할래두 배와 주는 것을 암만해도 깹드지를 못해요. 그래서 선산님들이 내종엔 화가 나서 내던지군 합네다가레. 저걸 어띠합네까.“

부인은 옷고름으로 눈물을 씻으면서 말을 이어,

“선산님이 저걸 어떻게 좀 가라쳐서 사람을 맨들어주시‥‥‥”

말을 마치지 못하더이다. 나는 잠시 대답을 못하고 앉았다가,

“녜— 걱정마십시오. 내 기어이 가르쳐 놓지요.”

나는 대답할 수밖에 없었지요.

“기애가 ‥‥‥”

하고 부인이 다시 말을 꺼냅디다.

“장난을 해도 별하게 해요. 무엇이든지 눈에 보이는 대로 깨뜨리고 찢고 뜯어 놓아요. 그래서 저의 외삼춘한테 늘 매를 맞군 합네다가레. 또 어떤 때는 무엇을 제법 만들어 놓아요. 한번은 칼을 가지고 무엇을 자꾸 깎더니 총을 맨들었는데 모양은 제법 되었어요. 또 한번은 무자위3래는 것을 맨드누라고 눈만 뜨면 부슬부슬 애를 씁데다가레. 남들은 공부하는데 공부는 아니하고 장난만 하는 것이 너머 송화가 나서, 하루는 밤에 그것을 감초았디요. 그랬더니 아침에 그것을 찾다가 없으니까 밥도 안 먹고 자꾸 울어요. 그래서 하는 수 없이 도루 내주었디요. 그리구 또 별한 버릇이 있어요. 무엇이든지 네모난 함이나 곽이 있으면 그것은 한사하고 모아들였다가 방에 그득하게 쌓아 놓아요.”

나는 이 말을 듣고 비로소 칠성이의 머리 뒷덜미가 쑥 나온 것을 생각하고, 평범한 아이는 아닌 줄을 알았읍니다. 그리고 어떻게든지 잘 가르쳐 보기로 결심하였읍니다. 부인은 젊은 사나이 혼자 있는 데 들어와서 길게 이야기한 것이 부끄러운 생각이 났던지, 얼굴이 버얼개서 일어서 밥상을 들고 나가는 데, 오래 갖은 고생을 겪은 흔적이 얼굴에 분명히 드러나 보이더이다. 그러나 귀밑에 조금 나온 그 옻칠한 듯한 머리털이며, 그 맑은 눈과 붉은 입술은 오히려 청춘을 못 잊어하는 빛이 보이며, 처녀때, 아씨때에 동리 젊은이의 속을 태우던 한때는 부자집 며느리였다는 모양이 넉넉히 드러나더이다.

3

나는 그 어머니가 눈물을 흘리면서 부탁하던 말을 들은 뒤에는, 특별히 힘을 써서 칠성이를 가르치려고 하였읍니다. 내게 있는 온갖 지식을 쥐어짜고, 할 수 있는 데까지 시간을 바쳐서 살살 달래가면서 가르쳤읍니다.

나는 혼자 갑갑하기도 하려니와, 칠성이가 너무 불쌍해서 매일 산보할 적마다 늘 손목을 잡고 다니면서, 정다운 말로 이야기를 해 주고 한 번도 책망을 하지 아니하니까, 다른 사람은 다 무서워 흠칠흠칠 하건마는, 나만 보면 늘 싱글싱글 웃고 제 동무같이 알게 되었읍니다. 그래서 내 말은 매우 잘 듣게 되었읍니다.

그런데, 한번은 내가 어디 갔다가 학교로 올라가서 내 방에 들어가니까, 칠성이가 내 방에 혼자 있더이다. 내가 오는 것을 보고 무엇을 얼른얼른 감추더니 또 싱글싱글 웃더이다.

“너 무엇을 감추니? 나좀 보자꾼.”

웃으면서 이렇게 달랬읍니다. 칠성이는 자리밑에 감추었던 것을 꺼내면서,

“이거야, 누수필4이야.“

내게 만일 재산이 있다고 하면 오직 하나의 재산일 뿐 아니라, 내가 끔찍이 귀애하는 만년필—내가 동경가서 OO대학 XX과를 졸업할 때에, 내 의동생 누이가 영원히 잊지 말자고 사 보낸 워터맨 만년필은 벌써 원형을 잃어버리고, 다시 소용 못되게 조각조각 해부를 하고, 동강동강 꺾어졌더이다.

나는 하도 기가 막혀서 입맛만 다시고 아무 말도 아니하였읍니다. 속으로는 몹시 분하고 성이 나는 것을 억지로 참았읍니다.

그 다음날 나는 웃으면서,

“너 누수필 왜 뜯어서 꺾었니?”

물었읍니다.

“꺾어 볼라구, 물감이 왜 자꾸 나오나 볼라구.“

이렇게 대답하고 이상스럽게 나를 쳐다보더이다. 그래 나는 할 수 없이 이렇게 말했읍니 다.

“이담에는 무엇이든지 나하고 같이 뜯어보자. 너 혼자 하면 안돼!”

나는 아무에게도 이 말을 하지 아니하였읍니다.

그리고 오후에 아이들을 보내고 책을 좀 보다가, 동리로 내려가서 칠성이를 찾으니까 벌써 어디 나가고 없더이다. 혼자서 천천히 동리 밖으로 나갔읍니다. 거기는 조그만 개울물이 흘러가는데, 늙은 버드나무가 하나 서 있읍니다.

늦은 가을 석양이라, 하늘은 맑고 새소리 하나 아니 들리고 사방이 고요한데, 누가 고운 목소리로 창가를 부르는 소리가 들리더이다. 그 소리는 꼭 내가 열일곱살 된 해 여름에 평양사랑 고을이라는 데 갔을 때, 옆의 방에서 들리던 어떤 어린 여학생의 찬미 소리 같더이다. 그야말로 옥을 옥판에 굴리는 소리같이 맑고 고운 소리였읍니다. 놀랐읍니다. 그 소리의 주인이 칠성인 줄을 어찌 알았으리까. 칠성이의 목소리가 그렇게 좋은 줄은 몰랐읍니다.

하늘빛, 석양볕, 맑은 개울, 늙은 버드나무, 거기에 천진스러운 소년, 꼭 그림이외다. 소년은 천사외다.

나는 가만가만히 수양버들 옆으로 가까이 가 보았나이다. 칠성이는 모래밭에 펄쩍 주저앉았는데, 마침 떼를 지어 날아가는 기러기를 바라보고 혼자서 흥이 나서 노래를 부르던 것이더이다. 내 눈에는 아무리 하여도 칠성이가 천치같이는 보이지 아니하더이다. 나는 속으로 너는 자연의 아이로구나, 네가 시인이로구나, 하고 한참 생각에 잠겼나이다.

나는 두 번째 놀란 일이 있읍니다.

칠성이가 나를 보더니 벌떡 일어나면서,

“선산님!”

부르더이다.

나는 웬일인가 하고 칠성이의 옆으로, 무얼 하고 있니? 물으면서 갔읍니다.

“젓지 않고 저 혼자 가는 배를 만들었는데, 가요! 가요!”

입을 벌리고 손뼉을 치면서 뛰놀더이다.

나는 가방 반갑고 기쁜 듯이, 실상은 한 호기심으로 무엇을 가지고 그러는지 보았읍니다. 과연 칠성이의 옆에 장난감 같은 조그만 배가 놓여 있더이다. 나는 그 내용을 살펴 보 려고도 아니하고, 한번 다시 실험해 보기를 청하였읍니다. 칠성이는 자기 배를 가지고,

썩 잘 가는데! 하면서 물가로 가더이다. 돌아서서 잠간 꾸물꾸물하더니 어느새 물에 띄웠는지 벌써 찌르르하면서 달아나더이다.

나는 칠성이와 같이 손뼉을 치고 기뻐했읍니다. 나중에 보니까 <젓지 않고 가는 배>의 장치는 양철과 고무줄과 쇠줄 같은 것으로 만든 모양인데, 보자고 하여도 보이지는 아니하더이다. 그래 억지로 보려고도 아니하고 내버려 두었읍니다.

4

나는 불쌍한 칠성이를 위하여 힘도 많이 써보고, 여러 가지로 연구도 많이 해보았으나, 별로 시원한 결과가 생기지 않고, 칠성이는 여전히 한 알 수 없는 아이였나이다.

그러나 칠성이의 모친은 때때로 나를 보고 아들을 위하여 부탁을 하고, 의복과 음식을 아주 집안 사람같이 친절히 해주었읍니다. 어머니의 말을 들은즉 박교감은 분명히 자기의 아들과 누이의 아들을 무엇이나 차별있게 한다고 하고, 칠성이가 하루에 한 번씩은 으레히 매를 맞는다 합니다.

그럭저럭 하는 새에 겨울이 되고 눈이 오게 되었읍니다. 나는 어떤 날 저녁에 책을 보기에 재미가 나서 시간이 좀 늦어서 박교감 집으로 갔읍니다. 갔더니 칠성이가 아침부터 없어졌다고 온 동리를 온통 찾아보고 야단법석이 났읍니다.

“아차!”

나는 놀랐읍니다.

“선산님, 칠성이가 없어졌어요.”

어머니의 호소를 듣고 나는 가슴이 뜨끔했읍니다.

무엇으로 대갈빼기를 얻어맞은 것같이 골이 아팠읍니다. 나는 박교감집 머슴을 하나 데리고, 그 어머니와 같이 등불을 가지고 개울로 나가 보았읍너다. 그 모친은 어쩔 줄을 모르고 울면서,

“칠성아! 칠성아!”

부르짖었읍니다.

개울에는 아무리 찾아보아야 없더이다. 칠성이가 배를 띄우던 개울물은 여전히 말없이 흘러가지마는, 칠성이의 간 곳은 도무지 알 수 없었읍니다. 나는 지난 가을에 칠성이가 모래 위에 앉아서 고운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던 생각을 하고, 그 어머니가 칠성아! 칠성아! 아들 찾는 소리가 학교 뒷산에 울리는 처량한 소리를 듣고, 눈물을 아니 흘리지 못했읍니다. 나는 저녁도 못 먹고 밤에 잠도 못 자고 칠성이의 일을 곰곰 생각했읍니다.

그 이튿날 오후에야 칠성이를 찾았습니다. 찾기는 찾았으나 말 못하고 차디찬 칠성이를 찾았읍니다.

이튿날 새벽에 동리 사람이 평양으로 가다가 길가 버드나무 밑에 앉아서 죽은 시체를 발견했다고 합니다. 그것이 박교감의 조카 칠성인 줄 알고, 도로 와서 알려주어서 사람을 보내 시체를 찾아왔다고 합니다.

내가 학교에서 내려가니까, 칠성이의 어머니는 아들의 시체 위에 엎드려서 아무 정신을 못 차리고 혹혹 느끼기만 하다가, 이따금 하는 말은, 죽은 칠성이를 흔들면서,

“칠성아! 칠성아! 일어나 밥 먹어라.”

그 어머니는 거의 다 미쳤더이다. 과연 못볼 것은 외아들 잃어버린 과부의 설워함이더이 다.

5

마지막에 내가 말 아니할 수 없는 것이 있읍니다. 꼭 내가 자백하여야 될 일이 있읍니다.

칠성이가 없어지기 전날에 학교에서 어떤 큰 학생의 시계가 없어졌읍니다. 그래서 나는 학생을 하나씩 불러서 몸을 뒤져 보았읍니다. 그 시계가 마침내 칠성이의 몸에서 나왔읍니다. 시계는 벌써 다 결단나 버렸더이다. 나는 칠성이의 버릇을 알면서도, 전에 내 만년필 버린 생각도 다시 나고, 내가 여지껏 애쓴 것이 허사로 돌아간 것이 너무도 분해서, 전후를 생각지 아니하고 채찍으로 함부로 때리기를 몹시 하였읍니다. 칠성이가 죽은 때문입니다. 칠성이는 내가 죽인 셈입니다. 칠성은 남이 가진 시계에 욕심을 내어서 훔친 것은 아니외다. 똑딱똑딱 가는 것이 이상해서 깨뜨려 보려고 훔친 것인 줄 확실히 아나이다. 칠성에게는 네 것 내 것이 없었나이다. 동무가 가진 시계나 길가에 있는 나뭇개비나 다름이 없었나이다. 그는 무엇이나 이상한 것이 있으면 끝까지 보고야 바는 열심을 가졌었나이다. 내 만년필을 꺾은 것도 그것이외다. 나는 그것을 방해하였나이다. 나뿐 아니라, 자기 주위에 있는 사람은 모두 칠성이의 하는 일을 방해하였읍니다. 나도 그 사람 가운데 하나이었읍니다. 그런 동네, 그런 세상을 칠성이는 떠났읍니다.

그리고 칠성이는 평시에 늘 평양 간다는 말을 하였나이다. 한번은 혼자서 평양을 다녀왔다고 하더이다. 돈 한푼 안 가지고 길도 모르고 평양을 간다고 가다가, 날이 저물어 그만 나무 아래서 돌을 베고 잤다는 말을 들었나이다. 이번에도 두 번째 평양을 가다가 추워서 가지 못하고 앉았다가 길가에서 얼어 죽은 것이더이다.

또 한 가지 말할 것은 자기 어머니의 의롱 속에서 칠성이의 글씨를 발견한 것이외다.

<내 맘대루 깨뜨려 보고, 내 맘대루 맨들고, 그러카구 또 고운 곽 많이 얻을라고 페양 간다.>

이런 말을 쓴 것을 나도 보았읍니다.

칠성이가 찬바람 몹시 부는 겨울에 버드나무 밑에서 눈 위에 쪼그리고 앉아서, 두 손을 모으고 흐흐 불면서 바들바들 떨다가 죽은 것은, 오직 밤새도록 자지 않고 반짝이언 하늘의 별들이 내려다보았을 줄 아나이다.

가련한 칠성이는 지금 자기 하는 일을 방해하는 어머니도 없고, 자기를 때리는 외삼촌이나 훈장도 없고, 자기를 놀려 먹는 동무도 없는 곳으로—저 —구름 위로 별 위로 올라가서, 마음대로 하고 싶은 것 하고 편안히 있을까 하나이다.

나는 다시 더 득영학교에 있기가 싫어서 겨우 사흘을 지내서, 칠성이의 묘를 한번 찾아보고 봇짐을 꾸려 지고 정처없이 떠났나이다. 이제는 무슨 노릇을 해먹을지 모르는 길을 떠났나이다.

<1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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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

  1. 직지 주: 낡은 사회에서, 학식이나 기술이 높은 사람을 청하여다가 보수를 주고 일을 시키는것.
  2. 직지 주: 가벼운 곁눈으로 귀엽게 자꾸 흘겨보는 모양을 나타내는 말.
  3. 직지 주: 물을 높은 곳으로 올리는 재래식의 수공업적인 도구나 기계.
  4. 직지 주: ‘물이 새는 붓’이라는 뜻으로 만년필을 나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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