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생화(犧牲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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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생화(犧牲花)

  • 공개되어 있는 내용이 없어서 2009. 7. 2일 직접 입력해서 올립니다. – 직지

  • 입력본은 학원출판공사의 학원한국문학전집 4권입니다.
  • 원전은 http://db.history.go.kr/item/level.do?sort=levelId&dir=ASC&start=1&limit=20&page=1&pre_page=1&setId=-1&prevPage=0&prevLimit=&itemId=ma&types=&synonym=off&chinessChar=on&brokerPagingInfo=&levelId=ma_013_0050_0390&position=-1 에서 참고했다.

지은이

현진건

출전

개벽 5호 <1920>

본문

1(一)

어머님은 우리 男妹를 다리고 社稷골 막바지에서 쓸쓸한 家庭을 이루어 잇섯다.

어머님은 우리 남매를 데리고 사직골 막바지에서 쓸쓸한 가정을 이루었다.

우리 아버지는 내가 세 살 먹던 가을에 돌아 가셧다한다. 어머님께서 時時로 눈물을 먹음고 아버지께서 牧使로 게시던 것이며 그 熱烈한 雄辯이 罪 만흔 사람을 感動시켜 한우님을 밋게 하던 것이며 自己 몸은 족음도 돌아보지 아니하고 敎會 일에 盡心竭力하던 것을 이악이 하신다. 나보다 4年 마지인 누님은 이 말을 들을 적마다 그 맑고 고흔 눈에 눈물이 어리엇다. 철 모르는 나는 그 이악이보다 어머님과 누님이 우는 것이 슯허서 눈물을 흘리엇다.
집안은 넉넉지는 아니하나마 만치 안흔 食口라 아버지 生前에 장만하여 주신 몃섬직이나 秋收하는 것으로 飢寒은 免할 수 잇섯다.
 우리 아버지는 내가 세 살 먹던 가을에 돌아가셨다 한다. 어머님께서 시시로 눈물을 머금고, 아버지께서 목사로 계시던 것이며, 그 열렬한 웅변이 죄많은 사람을 감동시켜 하느님을 믿게 하던 것이며, 자기 몸은 죽음도 돌아보지 아니하고 교희 일에 진심 갈력하던 것을 이야기하신다. 나보다 4년 맏이인 누님은 이 말을 들을 적마다 그 맑고 고운 눈에 눈물이 어리었다. 철모르는 나는 그 이야기 보다 어머님과 우님이 우는 것이 슬퍼서 눈물을 흘리었다. 집안은 넉넉지는 아니하나 많지 않은 식구라 아버지 생전에 장만하여 주신 몇 섬지기나 추수하는 것으로 기한은 면할 수 있었다.

 

아버지의 感化인지는 모르나 어머님은 우리 男妹를 學校에 단이게 하엿다. 멀서 十餘年 前 일이라 누님 工夫시기는데 對하야 別別批評이 다 만핫다. 그러나 어머님은 무슨 까닭에 女子敎育이 必要한 것인 줄은 모르셧겟지마는 아마 女子도 敎育시기는 것이 조흔 줄로 아신 것 갓다.

아버지의 감화인지는 모르나 어머님은 우리 남매를 학교에 다니게 하였다. 벌써 10여 년 전 일이라 누님 공부시키는 데 대하여 별별 비평이 다 많았다. 그러나 어머님은 무슨 까닭에 여자 교육이 필요한 것인 줄은 모르셨지마는 아마 여자도 교육시키는 것이 좋은 줄로 아신 것 같다.

2(二)

누님은 18歲의 꼿가튼 處女로 OO學校 女子部 4年級에 優等成籍으로 進級되고 나도 그 學校 2年級에 進級되던 봄의 일이다.
나의 손을 붉게 하고 내 얼골을 푸르게 하던 치위는 업서진지 오래이다. 해ㅅ빗은 따뜻하고 바람 끗은 부들업다. 잔디 밧헤는 새싹이 도다나고 개나리와 진달래는 벌써 山野를 붉고 누르게 繡 노앗다.
현대문보기

 

어느덧 버드나무 얽힌 곳에 꾀꼬리는 벗을 찾고 아지랑이 희미한 하늘에 종달새는 높이 떳다. 우리집 뜰앞에 심어 둔 두어 나무 월계화도 춘군(春君)의 고운 빛을 나도 받았노라는 듯이 난만히 피었었다.

하루날, 떠오르는 선명한 햇빛이 어렴풋이 조으는 듯한 아침 안개에 위황(煒湟)한 금색을 흩을 적에 누님은 가늘게 숨쉬는 춘풍에 머리카락을 날리며 어리인 듯이 월계화를 바라보고 섰다. 쏘아보는 햇발이 그의 눈을 비추니 고개를 갸웃하며 한 손을 이마 위에 얹고 눈을 스르르 감더니 아직도 어슴프레하게 조으는 월계화 그늘에 몸을 숨기매 이슬 젖은 꽃송이가 누님의 뺨을 스친다. 손으로 가벼이 화판(花瓣)을 만지며 고개를 숙여 꽃을 들여다 본다……

나도 한참 누님과 월계화를 바라보다가 학교에 갈 시간이나 아니 되었나 하고 방에 걸린 시계를 보니 아니나다를까 벌써 시간이 다 되어 간다. 급히 건넌방에 들어가 책보를 싸가지고 나오며, “누님 어서 학교에 가요. 벌써 시간이 다 되었어요.”, “응, 벌써?” 하고 누님은 내 말에 놀라 돌아서더니 허둥허둥 건넌방에 들어가 책보를 싸더니 또 망연히 앉아 있다. “어서 가요.” 나는 조급히 부르짖었다. 누님은 또 한 번 몸을 일으켰다.

요사이 누님이 하는 일이 매우 이상하였다. 그 열심으로 하던 공부도 책을 보다가 말고 망연히 자실하여 먼 산만 머얼거니 바라보고 있을 적이 많았다. 누님이 잠은 어머님을 모시고 큰방에서 자되 공부는 나를 데리고 건넌방에서 하였으므로 누님이 정신 잃고 앉은 것을 여러 번 보았다.

그날 밤 새로 1시나 되어 잠을 깨니 갑자기 뒤가 보고 싶었다. 나는 급히 일어나 뒷간에 갔었다. 뒤를 보고 나오니 이미 이지러진 어스름 반달이 중천에 걸리어 있다. 나는 달을 치어다보며 한 걸음 두 걸음 마당 가운데로 나왔다. 뜰 앞 월계화는 희미한 달빛에 어슴푸레하게 비추이는데 꽃 사이로 허여스름한 무엇이 보인다. 자세히 보니 누님이 꽃에다 머리를 파묻고 서 있다. 그의 흰 옥양목 겹저고리가 내 눈에 띔이라 왜 누님이 저기 저러고 서 있나? 온 세상이 따뜻한 봄의 탄식에 싸이어 고요히 잠든 이 밤중에 무슨 까닭으로 나와 섰나?

나는 어린 가슴을 두근거리며, “누님 거기서 무엇해요?” 내 소리에 깜짝 놀랐는지 몸을 흠칫하더니 아무 대답이 없다. 가만히 가까이 가서 어깨를 가볍게 흔들었다. 숨을 급히 쉬는지 등이 들먹들먹한다. 나오는 울음을 물어 멈추는지 가늘고 떨리는 오열성이 들린다. 나는 바싹 대들어 누님의 얼굴을 보았다.

분결 같은 두 손 사이로 보이는 얼굴은 발그레하였다. 나는 웬일인가 하고 얼굴 가린 두 손을 힘써 떼었다. 두 손은 젖어 있었다. 누님의 두 눈으로 눈물이 흘러내린다. 구슬 같은 눈물이 점점이 월계화에 떨어진다. 월계화는 그 눈물을 머금어 엷은 명주로 가린듯한 달빛에 어렴풋이 우는 것 같다. 누님의 머리는 불덩이같이 더웠다. “왜 안 자고 나왔니……” 하며 내 손을 밀치는 그 손은 떠는 듯하였다. 나는 목맨 소리로, “누님, 왜 우세요? 네?” 하고 내 눈에도 눈물이 핑 돌았다. 이슬에 젖은 꽃향기는 사랑의 노래와 같이 살근살근 가슴을 여위고 따뜻한 미풍은 연애에 타는 피처럼 부드럽게 뺨을 스쳐 지나간다. 이런 밤에 부드러운 창자에 느낌이 없으랴! 꽃다운 마음에 수심이 없으랴!

철모르는 나는, “누님 어서 들어가세요.” 하고 누님의 손목을 이끌었다. 맥이 종작없이 뛰는 것을 감각하였다. 누님은 눈물을 씻으며, “먼저 들어가거라. 나도 곧 들어갈 것이니……” 하였다.

“대관절 웬일이에요? 어데가 편찮으세요?”

“아니, 공연히 마음이 뒤숭숭하구나.”

하더니, 한 손으로 월계화 가지를 부여잡고 이마를 팔에다 대며 흑흑 느끼며 운다.

으스럼 달빛은 쓰린 이별에 우는 눈의 시선같이 몽롱하게 월계화 나무 위에 흘러있다.

3

이틀 후 공일날 누님과 나는 창경원1 구경을 갔었다. 창경원 벚꽃놀이가2 한창이란 기사가 수일 전부터 신문에 게재되고 일기도 화창하므로 구경군이, 구름같이 모여들어 넓으나 넓은 어원이 희도록 덮여 있다. 과연 벚꽃은 필 대로 피어 동물원에서 식물원 가는 길 양편에는 만단홍금이 필친 듯하다.

“국주(國柱)야, 우리는 동물원 구경은 그만두고 저 잔디밭에 앉아 꽃구경이나 실컷 하자.”

누님은 찬성을 구하는 듯이 나를 들여다 보며 묻는다. 나도 짐승 곁에 가니 야릇한 무슨 냄새가 나던 것을 생각하고, “그럽시다”라고 곧 찬성하였다.

우리는 길옆 잔디밭 은근한 편 소나무 밑에 좌정하였다. 붉은 놀 같은 꽃다리 밑으로 지나가는 흰 옷 있는 유객들은 꽃빛에 비치어 불그스름해 보이는 것이 말할 수 없는 춘흥을 자아낸다. 어린 나도 따뜻한 듯한 부드러운 듯한 봄의 기쁨을 깨달아 웃는 낯으로 누님을 돌아보니 누님은 나직이 한숨을 쉬며 고개를 숙이더니 푸른 풀 사이에 핀 노란 꽃을 하나 꺾어 뺨에다 대인다. 무슨 걱정이나 있는 듯이 눈살을 찌푸렸다. 나는 그날 밤에 누님의 월계화 사이에서 울던 광경을 가슴에 그리면서 유심히 누님의 행동을 살피었다.

누님의 얼굴에 수심을 띤 것이 퍽 애처로와서 무슨 이야기를 하여 흥미를 끄을까 하고 곰곰 생각하며 이리저리 살피었다.

우연히 식물원 편을 바라보다가 그곳을 가리키고 누님을 흔들며, “저기를 좀 보세요” 하였다. 웬일인지 누님은 깜짝 놀란다. 곤한 잠을 깬 사람에게 흔이 있는 표정으로 내가 가리키는 곳을 바라본다. 거기서 우리학교 교복을 입는 학생 하나이 이리로 내려온다. 그는 우리학교 4학년급 급장이었다. 누님이 한참 머얼거니 바라보다가 두 추파가 마주친 것 같다. 누님은 고개를 숙이었다. 나는 누님의 귀밑이 발그레해진 것을 보았다. 누님이 내 무릎을 꼭 잡으며,

“저기 무엇이 있다고 날더러 보라니?”

간신히 귀에 들릴이만큼 말하였다.

“아야, 아이고 아파요. 왜 저이를 모르세요? 그이가요, 이번에 첫째로 4년급에 진급한 이야요. 공부를 썩 잘하고 또 재조가 비범하대요. 게다가 얼굴이 저렇게 잘났겠지요.”

나는 바로 내나 그런 듯이 기뻐하면서 입에 침이 없이 칭찬하였다.

누님은 부끄럽게 웃으며,

“왜 내가 그를 모른다듸. 4년이나 한학교에 다녔는데…… 그래서 그 사람 보라고 사람을 흔들고 야단을 했니?”

“그러믄요…… 그런데요, 어저께 내가 누님보다 좀 일찌기 나왔지요? 집에 오니까 어머님 친구 몇 분이 오셨는데 누님 칭찬이 야단입디다. ‘어쩌면 인물도 그다지 잘나고 재조도 그렇게 좋고, 참 복많이 받았읍니다’ 라고요. 나는 그 말을 듣고 춤이라도 출 듯이 기뻐하였어요. 저 사람도 장하지만 누님은 더 장해요.”

나는 그 사람을 너무나 칭찬하여 행여나 누님이 그에게 질까 보아서 또 한참 누님을 추어올렸다. 누님은 또 얼굴을 붉히며, “너는 별소리를 다 하는구나. 누나 네게 칭찬 듣고 싶다듸.”

우리가 이런 수작을 하는 틈에 그가 벌써 우리 앞을 지나가며 슬쩍 누님을 보았다. 두 시선은 또 한 번 마주쳤다. 누님의 얼굴은 갑자기 다홍빛을 띠었다. 그가 중인 총중에 섞이어 점점 멀어가는 양을 누님이 물끄러미 바라본다. 그는 나가 버렸다. 누님의 눈이 이리로 도는 바람에 그 사람의 뒤꼴을 보는 누님을 도적해 보던 내 눈이 잡히었다. “너는 남의 얼굴을 왜 빤히 들여다보니?” 하고 누님의 얼굴은 또다시 붉어졌다. “보기는 누가 보아요” 하고 나는 빙그레 웃었다.

4

그 이튿날 아침에 누님은 좀처럼 바르지 않던 분을 약간 바르며 더럽지도 않은 옷을 벗고 새옷을 갈아입었다. “네가 오늘은 웬일이냐?” 하고 어머님이 의아해하신다. 누님이 머뭇머뭇하더니 어린애 모양으로 어머니 가슴에 안기며, “제가 오늘은 퍽 잘나 보이지요?” 하고 웃는다. 그 웃음과 함께 누님의 얼굴에 홍조가 퍼진다. 과연 오늘은 누님이 더 어여뻐 보였다. 두 손으로 기운없이 뒤로 큰 방문을 짚고 비스름히 문에다 봄을 반만 실려 웃는 양이 말할 수 없이 어여뻤다. 어리인 우유에 분홍물을 들인 듯한 두뺨은 부풀어오른 듯하고 장미꽃빛 같은 입술이 방실 벌어지며 보일 듯 말 듯이 흰 이빨이 벌쩍거린다. 춘산(春山)을 그린 듯한 눈썹은 살짝 위로 치어오른 듯하며, 그 밑에는 추수(秋水)가 맑은 눈이 웃음의 가는 물결을 친다.

어머님이 누님을 보고 웃으시며, “언제는 못났듸.”

“그런데 오늘은요?” 누님이 되질러 묻는다.

“오냐, 오늘은 더 이뻐 보인다.”

“어머니, 정말이에요?” 하고 누님은 또 방긋 웃는다. 사색에 싸인 희색이 드러난다.

“오늘은 정말 더 이뻐 보인다. 너의 부친이 보셨던들 작히 기뻐하시겠니” 하시며 어머님의 눈에는 눈물이 스르르 어리었다. 곱게 빛나던 누님의 얼굴에는 구림이 끼인 것 같다. 그러나 얼마 아니되어 그 구름이 스러지고 또다시 기쁨과 희망의 빛이 어린다.

우시는 어머님을 민망히 바라보던 누님이 지은 듯한 슬픈 어조로, “어머님 마음 상하지 마세요” 하였다.

“얘 시간이 다 되었겠다. 내 걱정일랑 말고 어서 학교에나 가거라” 하고 어머님은 눈물을 삼키셨다.

우리는 책보를 끼고 나섰다.

학교 문턱에 들어서니 종소리가 들린다. 우리는 달음박질하여 들어갔다. 전학교가 다 모였다. 모두 행렬과 번호를 마치자, “기착, 산체, 출석원 도합 XX명!”이라 하는 카랑카랑한 소리가 들리었다. 그는 4년급 급장의 소리다. 이 소리가 끝나자 여자부 편에서도 이와 같은 호령과 보고를 하는 소리가 들리었다. 그는 옥을 바수는 듯한 날카로운 소리였다. 그는 우리 누림의 소리다. 오늘은 웬 셈인지 이 두 소리가 나의 어린 가슴을 뛰게 하였다.

그 다음 토요일 하학한 후에 교우회가 모인다고 4년급 학도들이 학교문을 걸고 파수를 보며, 철없는 1, 2년급들이 나가는 것을 막아섰다. 우리가 늘 모이는 강당에 들어가니 벌써 이편에는 남학생, 저편에는 여학생이 빽빽이 앉아 있었다. 나도 거기 앉았노라니 무엇이니 무엇이니 하고 한참 야단들이더니 얼마 아니되어 4년급생이 흰 종이조각을 돌리며, “지육부 간사 투표권이요, 한 장에 한 명씩 쓰시오” 하며 외친다. 내 곁에 앉은 녀석이 똑똑한 체로, “유기명 투표야요, 무기명 투표야요?” 묻는다. “물론 무기명 투표지요.” 아까 외쳤던 4년급생이 대답한다. 저편에서 “무기명 투표란 무엇이요?” 하는 녀석이 있다. “그것도 모르면서 회할 적마다 집에만 가려고 하지! 무기명 투표란 것은 선거자의 이름을 쓰지 않은 것이오.” 꾸짖는 듯이 그 4년급생이 말하고 기색이 엄숙하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담박 4년급 급장 이름을 썼다. 필경 남자부에서는 최다점으로 그가 선거되고, 여자부에서는 최다점으로 우리 누님이 선거되었다.

그후부터 누님은 간사회 한다, 지육부 간사회 한다 하고 저녁 먹고 나가면 밤 아홉 점, 열 점이나 되어 돌아오는 일이 빈번히 있었다. 그 회에 갈 적마다 안 보던 거울도 보고, 늘어진 머리카락도 쓰다듬어 올리며 옷고름도 고쳐매었다.

하룻밤은 누님이 지육부 간사회 한다고 저녁 먹고 나가더니 열 점이나 되어도 돌아오지 않는다. 어머님은 별별 염려를 다 하시다가,

“네 누이가 여태껏 돌아오지를 않니, 회는 벌써 끝났을 것인데. 너 좀 가보아라.”

나는 두루마기를 입고 집을 나와 사직골 막바지로부터 광화문통에 가는 길로 타박타박 걸어간다. 달도 없는 5월 그믐밤이었다. 전등도 별로 없고 행인도 희소한 어둠침침한 길을 걸어가려니 무시무시한 생각이 난다. 나는 무서운 생각을 쫓느라고 발을 쾅쾅 구르며, “하나, 둘” 하고 달음박질하였다. 한참 뛰어가니 숨이 헐떡거리고 진땀이 흐른다. 모자를 벗어 부채질하면서 천천히 걸어간다. 내 앞 멀지 않은 곳에서 이리로 향하여 젊은 남녀가 짝을 지어 올라온다. 그는 남학생과 여학생이었다. 그와 누님이었다. 나는 가슴이 설렁하며, 일종 호기심이 일어났다. 살짝 남의 집 담모퉁이에 은신하였다. 둘은 내가 거기 숨어 있는 줄도 모르고 영어로 무어라고 소곤거리며 지나간다.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 생각하니 아마 이 말인 것 같다.

“Love is blind. (사랑은 맹목적이라지요3)”

라니까 누님은 소리를 죽여 웃으며, “But our love has eyes. (그런데 우리 사랑은 보는 사랑이지요4)” 하였다. 그들이 지나가자 나도 가만가만 뒤를 따랐다. 어두운 속이라 누님의 흰 적삼이 퍽 눈에 뜨인다. 전등 켠 뒤집 대문 앞을 지날 때에 나는 그의 바른손이 누님의 왼손을 곡 쥔 것을 보았다. 나는 웬일인지 싱긋이 웃었다. 그들이 행여나 나를 돌아볼까 보아서 발자취를 죽이고 남의 담에 몸을 부비대며 꽤 멀리 떨어져 갔었다. 우리집 가까이 와서 둘이는 걸음을 멈추더니 서로 악수를 하고 또 악수를 하는 것 같았다. 연연히 서로 떠나기를 싫어하는 것 같다. 한참이나 그리하다가 손을 놓고 또 무어라고 수군거리더니 그가 돌아서 온다. 누님은 우리집 문 앞에 서서 한참이나 그의 가는 양을 바라보고 서 있다. 그는 또 내 곁으로 지나간다. 그의 걸음걸이는 허둥허둥하였다.

그가 지나간 후 나는 달음박질하여 집에 돌아왔다. 대문턱에 들어서니 어머님과 누님의 문답하는 소리가 들린다.

“왜 그처럼 늦었니? 나는 별별 근심을 다했다.”

“오늘은 상의할 일이 좀 많아서……” 누님이 머뭇머뭇한다.

”그애는 어디로 갔나? 같이 오지를 않았니? 오는 길에 못 봤어?” 어머님이 묻는다.

“그애가 어디로 갔을고…… 길에서 만났을 것인데.” 누님이 걱정한다.

나는 안방문을 열고 시침을 뚝 따고, “누님 인제 왔어요.” 하고 빙그레 웃었다. 어머님은 놀라며 “너 뺨에, 옷에 맨 흙투성이니 웬일이냐?” 하신다.

“담에 붙어 와…… 아니에요. 저저……”

하고 누님을 보고 빙글빙글 웃었다. 누님의 얼굴은 또 빨개졌다.

5

그후 더운 날 달밤에 누님은 친구하고 어디를 간다, 어디를 간다 하고 자주자주 나갔었다. 누님은 늘 나를 따돌리고 혼자 나갔으므로 푸른 물 잦아진 곳과 달빛 고요한 데에서 그와 누님이 만나 꿀 같은 사랑의 속살거림을 몇 번이나 하였는지 나는 모른다.

누림의 출입이 자주롭고 기색이 수상하였던지 어머님이, “인제 네가 어디 나가거든 꼭 네 동생을 데리고 다녀라” 하신 뒤로는 누님이 집에 들면 공연히 짜증을 내며 하염없는 수색이 적막한 화용을 휩쌌었다. 그리고 때때로 머리가 아프다 하며 이불 쓰고 누웠었다.

하루는 우리가 점심을 마친 후 누님이 날더러, “너 나하고 남산공원 산보가련?” 하였다. 그때는 6월 염천이라 더운 기운이 사람을 찌는 듯하였다. 나도 거기 가서 서늘한 공기도 마시고 무성한 초목으로부터 뚝뚝 돋는 취색(翠色)에 땀난 몸을 씻으리라 생각하고 곧 “네” 하였다.

우리는 광하문통에서 전차를 타고 진고개를 거쳐 남산공원을 올라갔다. 저편 언덕 위에 그가 기다리기 지리하다는 듯이 앉았다 섰다가 하는 것이 보이었다. 누님이 갑자기 돌아서 나를 보며, “너 이것 가지고 진고개 가서 과자 좀 사와! 응?” 하며 돈 20전을 주었다. 나는 급히 진고개로 나왔다. 얼른 과자를 사가지고 가본 즉 그와 누님은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어디로 갔을까?’ 나는 누님이 무슨 위험한 곳에 나간 것같이 가슴이 팔딱거리었다. 이리저리 아무리 살펴도 그들은 없다. 나는 이편으로 기웃기웃 저편으로 기웃기웃하였다. 한참이나 취색이 어린 남산 정상을 치어다보다가 또다시 걸어갔었다. 한동안 걸어가도 보이지 않는다. “아이고 어디로 또 그만 가버렸어. 이리로는 아마 아니 갔나 보다” 하고 돌아오던 길로 도로 온다.

갔던 길로 도로 오려니 퍽 먼 것 같다. “에이그 그동안에 내가 퍽도 걸었네.” 속으로 중얼중얼하였다. 골딱지가 나니까 더 더운 것 같다. 대기는 횃불에 와글와글 끓는 것 같다. 나는 이 대기에 잠기어 몸이 삶아지는지? 땀이 줄줄 흘러내리고 숨은 헐떡헐떡 차오른다. 모자를 벗으니 머리에서 김이 무럭무럭 난다. 나는 부글부글 고여오르는 심술을 억지로 참으며 아까 섰던 곳까지 돌아왔다. “어디로 갔을까? 저리로 가보자.” 혼잣말로 투덜거리고 아까 갔던 반대 방면으로 걸어갔었다. 한동안 걸어가도 그을은 또 보이지 않는다. 참고 참았던 짜증이 일시에 폭발이 되었다. 잔디밭에 털썩 주저앉아 엉엉 울었다. 풀들을 쥐어뜯으며 한참 울다가 하도 내가 어린애 같은 것이 부끄럽고 우스웠다. 그렁그렁한 눈물을 씻고 히히 한번 웃은 뒤 이리 저리 또 살펴보기 시작하였다.

저편 좀처럼 사람 눈에 뜨이지 않을 소나무 그늘 밑에 그들이 나란히 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 나는 잃었던 보배를 발견한 듯이 기뻐하였다. “누님 거기 기셔요?” 고함을 지르고 뛰어가려다가 에라,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좀 엿들으리라 하고 어느 밤에 그들의 뒤를 따라가던 모양으로 가만가만 걸어 가까이 갔었다. 한낮이므로 유객 하나 없고 바람 한 점 불지 않는다. 더운 공기는 기름 언 것 같이 조금도 파동이 없다. 남이 들을까 보아서 가만가만히 하는 이야기도 낱낱이 내 귀에 들리었다..

“물론 그렇게 해야지요. 그런데 요사이는 어째 볼 수가 없어요?” 그가 말하였다.

“어머님께서 어디 나가게 하셔야지요. 나가거든 꼭 네 동생을 데리고 다녀라 하시겠지요. 그래서 오늘도 같이 왔지요.”

그리고 누님이 웃으며 말을 이어, “딴 이야기 하느라고 잊었구료, 기다리신다고 오죽 지리하셨겠어요.”

“한 시간이나 넘어 기다렸어요. 오늘도 아마 못 오시는가 보다 하고 그만 가버릴까까지 하였어요.”

“네? 가버릴까 하였어요? 제가 언제 약속을 어긴 일이 있어요. 저는 어찌 급했든지 점심을 먹는데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몰랐어요.” 둘이 웃는다. 나도 웃었다. 나는 드디어 어린애가 꽃에 앉은 나비를 잡으러 갈 때에 가는 걸음걸이로 한 걸음 두 걸음 가까이 갔었다. 사랑하는 이들은 달디단 이야기에 얼이 빠져 사람 오는 줄도 모른다. 그들 앉은 소나무 뒤에 살짝 붙어셨다. 두 어깨가 닿아 있고 누님의 풀린 머리카락이 그의 뺨을 스친다. 그와 누님의 눈과 입에는 정이 찬 웃음이 넘치운다. 그러다가 두 손길을 마주잡고 실심한 사람 모양으로 서 들여다 본다. 누님의 몸으로부터 발산하는 따뜻하고 향기로운 기운에 나도 싸인 것 같았다. 나는 와락 달려들며,

“누님, 여기 계세요, 나는 어디 가셨다고…… 아이, 사람 애도 퍽 먹이시지!”

둘은 깜짝 놀랐었다. 누님의 모시적삼이 달싹달싹하는 것을 보고 누님의 가슴이 팔닥거리는구나, 하였다.

그는 시치미를 뚝 따려 하였으나 <부끄럼>이란 원소가 얼굴에 퍼뜨리는 빛을 감출 길이 없었다.

“에그, 나는 누구라구. 퍽도 놀랐다.” 누님은 두근거리는 가슴을 한 손으로 어루만지며 말하였다. 누님이 그를 향하며,

“이애가 제 동생이야요. 아직 철이 안 나서…… 많이 사랑해 주세요” 한 뒤 나를 보고 그를 눈으로 가리키며,

“너 이이보고 이후일랑은 형님이라 하여라.”

“어째서 형님이라 해요?” 내가 애를 먹이었다. 누님의 얼굴은 새빨개지며 나를 흘겨본다.

“왜 누님 성나셨소? 그러면 형님이라 하지요.”

하고 어리광을 부리며,

“형님, 누님, 과자 잡수세요.”

하고 쥐었던 과자를 앞에 내놓았다. 누님이 나를 보고 빙그레 웃으며,

“우리는 먹기 싫으니 너 혼자 저쪽에 가서 먹고 있거라. 우리 갈 때 부를 것이니……”

나도 길게 방해 놀기가 싫었다. 과자를 쥐고 나와 풀밭에 앉아 먹으며 혼자말로,

“내 배 속에 영감장이가 열 둘이나 들어앉았는데 어린애로만 여기지……”

하고 웃었다.

그 긴긴 해가 벌써 서산에 걸리었다. 낙조에 비치는 녹수와 방초는 불이 붙는 것같이 붉어 보인다.

나는 이동안에 퍽도 심심하였다. 풀을 자리삼아 눕기도 하고 기지개도 켜고 몸을 비비 틀기도 하며 곡조도 모르는 창가를 함부로 부르기도 하였다. 이제나 올까, 저제나 부를까를 고대고대하여도 그들의 그림자는 얼른도 아니한다. 무슨 이야기가 그렇게 많은고. 아마 사랑하는 사람끼리의 이야기는 끝이 없는가 보다. 벌써 이야기한 것이 수만 마디가 넘건마는 말 몇 마디 못하여 해는 어이 수이 가나, 하는 것이다.

남산 밑 풀과 나무에 빛나던 붉은 빛은 점점 걷히고 모색(暮色)이 가물가물 쳐들어 온다. 햇빛은 쫓기어 남산 정상을 향하여 자꾸 기어올라가더니 남산 맨꼭대기에 옴츠리고 앉았을 뿐이다.

검푸른 저문 빛이 남산 밑을 에워싸자 정상에 비치는 햇빛조차 스러지고 저편 하늘에 흰 구름을 붉고 누렇게 물들인다.

나는 참다못하여 몸을 일으키어 그곳으로 갔다. 어두운 빛에 놀랐는지 그들도 일어섰다. 나는 걸음을 멈추고 나무로 깍아세워 놓은 사람 모양으로 주춤 섰다. 누님의 걱정스러운 떨리는 소리가 나의 귀막을 울림이다.

“K씨! 우리가 일전의 즐거움만 다행히 여겨 그냥 이리 지내다가는 우리의 꿈 같은 행복이 끝에는 소태 같은 고통으로 변할 것 같애요. 우리 각각 꼭 아까 말한 것과 같아야 됩니다.”

“아무렴요! 꼭 그리해야 될 터인데…… 아까도 말했지만 우리집은 워낙 완고라……”

그의 말은 떨리었다.

나는 가슴이 선뜩하였다. 무슨 말을 하였나? 무슨 일을 하려는가? 엿듣지 못한 것이 한이 되었다.

둘은 이리로 걸어온다. 누님은 눈이 약간 발그레하였다. 그 고운 뺨에 눈물 흔적이 보이었다. 나는 또 웬일인가 하고 가슴이 선뜩하였다.

6

그날 밤에 나의 어린 소견에도 별별 생각을 다 하고 씩씩이 잠도 잘 자지 못하였다. 내가 어렴풋이 잠을 깰 적마다 큰방에서 어머님과 누님이 무어라고 이야기 하는 소리가 간단없이 들리었다.

새로 한 점이나 되어 내가 또 잠을 깨니 큰 방에서 훌쩍훌쩍 우는 소리가 들린다. 울음 섞인 어머님의 말소리가 난다.

“그래 네가 요사이 늘 탈기를 하고 행동이 수상하더라…… 나는 허락한다 하더래도 만일 그 집에서 안된다면 네 신세가 어떻게 되니…… 네가 다만 하나 있는 어미 몰래 그 사람과 약혼한 것이 괘씸하다. 아비 없이 너를 금옥과 같이 길러내어 이런 일이 날 줄이야. 남편이 없다고 너까지 나를 업수이 여기는 게지……”

누님은 흑흑 느끼며,

“어머님 잘못하였읍니다. 무어라고 말씀을 여쭈어야 좋을지…… 친키도 전에 말씀 여쭙기도 부끄러운 일이고…… 친한 뒤에 몇 번이나 말씀 여쭈려 하였지만 잘 떨어지지를 않았어요… 들어 주세요. 암만 어머님이라도 그때는 부끄러웠어요. 이젠 서로 약혼까지 해놓으니 몸과 마음이 달아 부끄러움도 돌아불 수 없게 되었어요. 그래서 뻔뻔스럽게 여쭌 것이예요. 어머님 말씀같이 그가 저를 잊을 리는 없어요. 버릴 리는 없어요. 그렇게 다정한 그가 그럴 리가 있다고요? 어제 공원에서 단단히 맹서하였읍니다. 각각 부모님께 여쭈어 들으시면 이 위에 더 좋은 일이 없거니와 만일 그렇지 않거든 멀리멀리 달아나겠다구요. 배가 고프고 옷이 차더래도, 부모님도 못 보고 형제도 못보더래도 둘이 같이만 있으면 행복이라구요. 온갖 곤란과 갖은 고통을 달게 겪겠다구요. 정말 그래요. 저도 그 없으면 미칠 것 같아요. 어머님이 허락을 아니하신다 할 것 같으면 저는 이 세상에 살아 있을 것 같잖아요.”

밀어오는 물을 막았던 방축을 무너버릴 때에 물밀듯이 누님이 말하였다. 흔히 순결한 처녀가 사랑의 불을 가슴속 깊이깊이 숨겨두고 행여나 남이 알까 보아서 전전긍긍하며 홀로 간장을 태우다가도 한번 자기 친한 이에게 발성하기 시작하면 맹렬히 소회를 베푸는 것이다.

나는 가슴을 울렁거리며 안방에 건너왔다.

누님은 어머님 무릎에 머리를 파묻고 울며, 어머님은 누님의 등에다 이마를 대고 운다. 나도 한참 정연히 섰다가 어머님 곁에 앉았다. 어머님을 흔들며 목멘 소리로,

“어머님 우지 마세요.” 이 말을 마치자 가슴이 찌르르해지며 흐르는 눈물을 금할 길이 없었다. 어머님은 눈물을 삼키고 누님을 흔들며,

“이애, 이애, 그만 그쳐라.”

누님은 더 섧게 운다.

“이애, 남부끄럽다. 그만두어라. 오냐, 네 원대로 하마. 그도 한번 데리고 오너라.”

어머님은 동곳을 빼었다.

‘여자가 수약(雖弱)이나 위모즉강(爲母則强)’이란 말은 어찌 생각하고 한 소리인고?

이틀 후, 누님이 그를 데리고 왔다. 그의 곱상스러운 얼굴과 얌전한 거동이 어머님의 사랑을 이끌었다. 참 내 딸의 짝이라 하였다.

애녀의 평생이 유탁하다 하였다. 단꿈이 꾸이리라 하였다. 기쁜 날이 오리라 하였다.

더구나 맑은 눈과 까만 눈썹이 내 딸과 흡사하다 하였다. 누님과 그가 영어로 말하는 양을 보고 뜻도 모르면서 웃으셨다. 자미스러운 딸의 장래 가정을 꿈꾸고 사랑스러운 외손자를 꿈꾸었다.

그후부터는 남의 이목을 피해 가며 몇 번 이나 서로 맞추어서 길게 기다려 가지고 살까지 만나던 애인들은 자유로이 우리집에서 만나 웃고 즐기게 되었다.

7

어떤 날 저녁에 그가 우리집에 왔다. 그때 마침 어머님은 더디 가시고 나와 누님과 단 둘이 있었다. 나는 와락 내달으며, “형님 오세요” 하고 반갑게 인사하였다. 누님도 반가이 맞으며,

“요사이는 왜 오시지 안하세요?”

“아니, 내가 언제 왔는데.” 하고 그는 지어서 웃는다.

누님은 눈을 스르르 감으며 무엇을 생각하는 듯하더니,

“오늘이 칠월 초열흘이고 초칠일이 공일이라…… 공일날 오시고 오늘 처음이지요.”

“그래요, 한 사흘밖에 더 되었어요?”

“사흘! 저는 한 3년씩이나 된 듯하였어요. 사흘 만에 한 번 만나? 멀어요! 퍽 멀구말구요. 사흘이 그다지 가까운 것 같습니까?” 하고 누님은 무엇을 찾는 듯이 그를 바라본다.

“사흘 만에 한 번씩 와도 장하지요.”

하고 그는 또 웃는다.

“장해요! 사흘 동안에 제가 몇 번이나 문밖을 내다보는지 아세요? 저는 온갖 걱정을 다 했지요. 몸이 편찮으신가, 꾸중이나 뫼셨는가……” 하고 목소리는 전성(顫聲)을 띠어 가며 눈에는 눈물이 괴어진다. “저는 우리 일에 대하여 무슨 큰 걱정이나 생겼나 하고 얼마나 애간장을 태웠는지요!” 하고는 눈물이 그렁그렁 넘쳐흐른다.

“아니에요. 여하간 죄없이 잘못하였읍니다.”

그는 눈살을 찌푸리고 선웃음을 치며,

“어린애 모양으로 걸핏하면 울기는 왜 울어요. 저 동생 부끄럽지 않아요. (갑자기 어조를 야릇하게 변하며) 그런데 내가 어지도 올라카고, 아레도 올라켔지마는 올라칼 때마다 동무가 찾아와서 올 수가 있어야지.”

울던 누님이 웃음을 띠었다. 나도 웃었다.

그는 대구 사람이다. 그의 부모는 아직도 대구에서 산다. 서울 있는 오촌 당숙 집에 유숙하고 있다. 그는 서울 온 지가 벌써 5, 6년이 지났으므로, 사투리는 거의 안 쓰게 되었으나 때때로 우리를 웃기려고 야릇한 말을 하였다.

“올라카고, 갈라카고.” 흉내를 내며 나는 방바닥에 뚤뚤 굴러가며 웃었다. 그는 시치미를 뚝 따고,

“남 이야기하는데 웃기는 와 웃소. 참 얄궂다” 하였다. 누님이 어떻게 웃었는지 얼굴이 붉어 가지고 배를 움켜쥐고 숨찬 소리로,

“그만두세요. 그만 웃기세요.”

한참 동안 우리는 이렇게 웃고 즐기다가 나를 누님이 또 심부름을 시켰다. 무슨 심부름이던가 생각이 아니난다. 그가 오기만 하면 누님이 무엇 좀 사오너라, 어디 좀 갔다 오너라 하고 늘 나를 따돌렸다.

“에그, 누님도 돼 나를 따돌려.” 두덜두덜 하면서 집을 나왔다. 반달은 비스듬히 푸른 하늘에 걸리어 있다. 만경창파에 외로이 떠나가는 일엽편주와 같았다.

나 없는 동안에 그들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듣고 싶어서 급히 오느라고 오는 것이 한 시간이 넘어 걸리었다. 나는 벌써 엿듣기에 익숙하여 사뿐 중문에 들어서며 가만히 살펴보니 애인들은 달 비치는 월계화 나무 밑에 평상을 내어놓고 나란히 앉아서 무어라고 소곤거린다. 나는 숨소리도 크게 아니 쉬고 귀를 기울였다.

“그러면 어째요. 어머님께서는 좀처럼 올라오시지 않을 것이고…… 왜 그러면 상서로이 사정을 못 아뢸 것이야 있어요?”

누님의 애타는 소리가 들린다.

“글쎄요. 몇 번이나 상서를 썼지만…… 부치지를 못하겠어요.”

“만일 차일피일하다가 딴 데 혼인을 정해 놓으면 어째요?”

“정해 놓아도 안 가면 그만이지요.”

“그러면 어렵지 않아요.”

“그런데 오촌 당숙 내외분은 아마 이 눈치를 아시는 것 같아요…… 네? 아마 그런 것 같아요. 그래서 집에서 무슨 통기가 있었는지 할아버지께서 일간 올라오신대요.”

“올라오시면 죄다 여쭙겠단 말씀이구료.”

“글쎄요. 그런데, 우리 할아버지는 참 호랑이 같은 어른이라 완고완고 참 완고신데…… 나도 어찌할 줄을 모르겠어요. 그래서 밤에 잠이 잘 오지 않아요” 하고 머리를 긁적긁적하고 눈살을 찡기더니 또 말을 이어,

“오늘 또 아버지께서 하서하셨는데 이번 울산 김승지 집에서 너를 선보러 간다니 행동을 단정히 하여라 하는 뜻입니다. 참 기막힐 일이에요.” 하고 한숨을 내쉰다.

“부모님께 하루바삐 이 사정을 여쭙지 않으면 큰일나겠읍니다그려.” 누님의 안타까운 소리가 들린다.

“여하한 꾸중을 모시더라도 장가를 못 가겠다 할 터이에요. 조금도 걱정 마세요.” 그는 결심한 듯이 고개를 들며 단연히 말하였다.

밝은 달은 애타는 양인의 가슴을 나는 몰라라 하는 듯이 이리저리도 미끄러져 가며 더운 공기에 맑은 빛을 흩날린다. 월계화는 더욱 붉고 더욱 곱다. 진세의 우수고뇌를 나는 잊었노라 하는 것 같았다.

8

그 이튿날 일어난 누님의 얼굴은 해쓱하였다. 머리카락이 흩어질 대로 흩어진 것을 보아도 작야에 잠을 못 이루어 몇 번이나 베개를 고쳐 벤 것을 과히 알 터다. 누님이 사랑의 맛이 쓰고 떫은 것을 처음으로 맛보았도다. 행복의 해당화를 꺾으려면 가시가 손 찌르는 줄 비로소 알았도다.

하루가 가고, 이틀이 가고, 어느덧 일주일이 지내었건만 누님이 오늘이나 와서 호음을 전해 줄까, 내일이나 와서 희식을 알려줄까 고대고대하는 그는 코끝도 보이지 않는다. (내가 학교에를 가도 그를 볼 수 없었고 누님도 이때부터 심사가 산란하여, 학교에 못 갔었다.)

이동안에 누님은 어찌 애를 태웠던지 양협에 고운 빛이 사라져 가고 눈언저리는 푸른 기를 띠고 들어갔다.

입술은 까뭇까뭇 타들어 가고 두 팔은 맥없이 늘어졌다.

일주일 되던 날 누님은 생각다 못하여 편지 한 장을 주며,

“너 이 편지 가지고 그 댁에서 그가 있거든 전하고 못 보거든 가지고 오너라.” 하였다.

전일에 그를 따라 한 번 그 집에 갔던 일이 있으므로 그 집을 자세히 알아 두었다. 그 집 대문에 들어서니 행랑사람도 없고 그가 있던 사랑문도 닫히어 있다.

안에서 기운찬 노인의 성난 말소리가 귀를 울린다.

“이놈, 아직 학생이니 장가를 못 가겠다? 핑계야 좋지, 이놈 괘씸한 놈. 들으니 네가 어떤 여학생을 얻어 가지고 미쳐 날뛴다는 구나! 아니야요란 다 무엇이야. 부모가 들이는 장가는 학생이라 못 가겠고 학생 신분으로 계집은 해도 관계찮으냐, 이놈 고약한 놈! 네 원대로 그 학교나 마치고 장가들일 것이로되, 벌써 어린 놈이 못 견뎌서 여학생을 얻으니, 무엇을 얻느니, 그냥 두다간 네 신세를 망치고 가문을 더럽힐 터이야, 그래서 하루바삐 정혼하고 인수(姻需)까지 보냈었는데 지금 와서 가느니 마느니 하면 어찌하잔 말이냐. 암만 어린 놈의 소견이기로…… 그 집은 울산 일판에 유명한 집안이라 재손도 있고, 양반도 좋고…… 다된 혼인을 이편에서 퇴혼하면 그 신부는 생과부로 늙으란 말이냐. 일부함원(一婦含怨)에 오월비상(五月飛霜)이란 말 못 들었어! 죽어도 못 가겠다. 허허, 이놈 박살할 놈, 조부모도 끊고 부모도 끊고 일가친척도 끊으려거든 네 마음대로 좀 해보아라.”

나는 이 말을 들으니 소름이 쭉 끼치었다. 한편으로는 분하기 짝이 없었다. 깨끗한 누님이 이다지 모욕을 당한 것이 절절히 분하였다. 곧 들어가 분풀이나 할 듯이 작은 눈을 흡뜨고 고사리 같은 손을 불끈 쥐었다.

“허허, 이놈 괘씸한 놈! 에이 화나. 거기 내 두루막 내.”

하는 그 노인의 우렁찬 소리가 또 들린다. 나는 간담이 서늘하였다. 그 노인이 신을 찍찍 끄을고 이리로 나오는 것 같다. 나는 무서운 증이 나서 급히 달음박질하여 그 집을 나왔다.

9

그날 밤 어머님 잠드신 후 누님이 살짝 내게로 건너와서, “이애, 너 본 대로 좀 이야기 하여다고 응?” 이 말을 하는 누님의 얼굴은 고뇌와 수괴(羞愧)의 빛이 보인다. 어린 동생에게 애인의 말을 물어도 부끄러워하였다. 나는 입을 다물고 묵묵히 앉았었다. 차마 그 이야기를 할 수가 없었다.

“왜 또 심술이 났니? 어서 이야기를 좀 하려무나. 편지를 도로 가지고 오는 것을 보니 형을 못 만났니? 만나도 못 전했니? 혹은 무슨 일이 났더냐? 남의 속 고만 태우고 어서 좀 이야기 하여다고. 가련한 네 누이의 청이 아니냐.” 이 말소리는 애완처량하였다. 나의 어린 가슴이 찌르는 듯하여 눈물이 넘쳐나온다. 이다지 나에게 정다이 구는 누님의 가슴에 그리던 꿈 같은 장래가 물거품에 돌아가고 만 것이 슬펐음이라. 그리고 순결한 우리 누님이 그 노인에게 <어떻다>든가, <계집을 했다>든가 하는 더러운 소리를 들은 것이 이가 떨리었다. 나는 비분한 어조로 그 집에서 들을 것을 이야기 하였다. 정신없이 듣고 있던 누님은 내 말이 끝나자 기운없이 쓰러지며 이 이야기를 들을 적부터 괴었던 눈물이 불덩이 같은 뺨을 쉬일 새 없이 줄줄 흘러내린다. “누님, 누님” 하고 나도 누님의 가슴에 안기며 울었다.

이럴 즈음에 누가 대문을 가벼이 흔들며 떨리는 소리로, “S씨, S씨, 주무세요?” 한다. 누님은 이 소리를 듣고 얼른 일어났다. 애인의 음성은 이럴 때라도 잘 들리는 것이다. 나올 듯, 나올 듯하는 울음을 입술로 꼭 다물어 막으며 급히 나간다. 대문 소리가 나더니 “K씨 오세요” 하며 우는 소리가 들린다. 나도 나갔다. 둘은 서로 붙들고 눈물비가 요란히 떨어진다. 누님이 울음 반 말 반으로, “저는 또다시…… 못 뵈올 줄…… 알았지요” 하였다. 그도 흑흑 느끼며,

“다 내 잘못이야” 하였다.

“저 까닭에 오늘 매우 꾸중을 뫼셨지요.”

“어떻게 알았어요?”

누님이 내가 편지를 가지고 그 집에 갔다가 내가 들은 이야기를 하였다. 그리고 우는 소리로, “좀, 들어가세요” 하였다.

“아니예요, 명일은 할아버지께서 꼭 데리고 가실 모양이어요. 지금 곧 멀리 달아나려고 합니다. 그래서 이런 말이나 몇 마디 할 양으로 왔어요.”

누림은 자기의 귀를 의심하는 듯이,

“네, 멀리 멀리 가세요? 부모를 버리시고 형제를 버리시고 멀리 가세요? 제 신세는 벌써 불쌍하게 되었읍니다. 불쌍한 저 때문에 전정이 구만리 같은 당신을 또 불행하게 만들 것이야 무엇 있읍니까. 절랑 영영이 잊으시고 부모님 말씀으로 장가드세요. 장가드시는 이하고나 백 년이 다진토록 정다운 짝이 되어 주세요. 아들 낳고, 딸 낳고…… 저의 모든 것을 바쳐도 당신이 행복되신다면 그만이에요! 곧 당신의 기쁨이 제 기쁨이 아니에요. 당신의 행복이 제 행복이 아니에요. 한숨 쉬고 눈물 흘리면서도 당신의 항복의 그늘에서 웃어볼까 합니다.”

열정 찬 눈으로부터 하염없이 흘러내리는 눈물에 적막한 화용이 아롱진다.

“아아, S씨를 내 손으로 불행하게 맨들고 나 혼자 행복을…… 사랑을 떠나 행복이 있을까요. 나에게 행복을 줄 S씨가 눈물 바다에 허우적거릴 때 나 혼자 행복의 정상에서 내려다보며 웃을 수가 있을까요? 없어요! S씨 없고는 나 혼자 행복을 누릴 수가 없어요!”

“제 불행은 제 손으로 맨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오늘날 이렇게 된 것이 당신의 잘못도 아니고 저의 잘못도 아니에요. 그 묵고 썩은 관습이 우리를 이렇게 맨든 것 입니다. 그러하지만 저 때문에 당신의 마음을 수난하게 맨든 것 같아서 어떻게 가엾고 애달픈지 몰라요. 그런데 이 위에 더 당신을 영영이 불행하게 하겠어요. 당신이 행복되신다면, 저는 오늘 죽어도 아깝잖아요.”

“안될 말씀입니다. 그런 말씀을 들을수록…… 기가 막혀요! 해야 늘 그 말이니까 길게 말할 것 없이 나는 가겠어요. S씨 부디 안녕히.” 그는 흐르는 눈물을 씻으며 결심한 듯이 돌아서 가려 한다. “K씨!” 안타까운 떠는 소리로 부르더니 북받쳐나오는 울음이 말을 막는다. 그는 또 한 번 돌아다보고 “S씨! 부디 안녕히……” 말을 마치자 그는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돌려 마음은 이리로, 몸은 저리로 멀어 간다……

나는 심장을 누가 칼로 싹싹 에이는 것 같았다.

10

그후 그는 어디로 갔는지 영영이 소식을 들을 수가 없고 누님은 시름시름 병들기 시작하여 날이 가고 달이 갈수록 병은 점점 깊어 온다.

이슬 젖는 연화같이 블그스럼하던 얼굴이 창경에 비치는 이화처럼 해쓱하였다. 익어가는 임금(林檎)같이 혈색 좋던 살이 서리맞는 황엽처럼 배배 말라 간다. 거슴츠레 한 눈은 흰 눈물에 붉어졌다. 그러다가 차마 볼 수 없이 바싹 말라 버렸다. 마치 백골을 엷은 백지로 덮어 두고 물을 흠씬 뿜어 놓은 젓같이 되고 말았다. 마침내 한강 얼음 얼고, 남산에 눈 쌓일 제, 누님은 그에게 한숨을 주고 눈물을 주던 이 세상을 떠나 버렸다.

아아, 사랑아, 사랑의 불아! 내가 부드럽고 따뜻하므로 철없는 청춘들은 그의 연하고 부드러운 심장에 너를 보배만 여기 강징난다. 잔인한 너는 그만 그 심장에다 불을 붙인다. 돌기둥 같은 불길이 종작없이 오른다. 옥기조차 버리고 홍안도 타버리고 금심도 타버리고! 수장(繡腸)도 타버린다! 방안에 켰던 촛불 홀연히 꺼지거늘 웬일인가 살펴보니 초가 벌써 다 탔더라! 양협이 젖던 눈물 갑자기 마르거늘 무슨 연유 묻잤더니 숨이 벌써 끊쳤더라.

<1920>

첨부문서

쪽지글

다음글은 희생화(犧牲花)에 실려있는 현진건님이 이 작품에 대한 개인의 생각을 적은 수필입니다.

처녀작 발표 당시의 감상(1925)

스물한 살 때 ‘개벽(開闢)’에 ‘희생화(犧牲花)’란 것을 처음 발표하였다. 바로 어제와 같은 그 때의 일이 역력히 기억에 남았건만 벌써 5년 전 옛이야기가 되었다. 남녀 학생 간에 남몰래 사랑을 주고받다가 남학생은 부모의 엄명(嚴命)으로 딴 처녀에게 장가를 아니 갈 수 없게 되자 표연히 외국으로 달아나 버리고, 여학생은 애인을 기다리다 못하여 마침내 병이 들어 죽고 만 경로를 센티멘탈하게 그린 것이었다. 구도덕(舊道德)에 희생된 여자라 하여 ‘희생화’라고 제목을 붙인 것부터 시방 생각하면 곰팡내가 난다. 그러나 그 당시엔 몇 번을 고쳐 쓰면서 감흥에 젖었는지 몰랐다.

그 때 ‘개벽’의 학예 부장으로 있던 나의 당숙인 현철(玄哲)씨를 성도 내며 빌기도 하며 제발 그것을 내어달라고 조르고 볶았다. 간신히 내어주겠다는 승낙을 받은 뒤에 그것이 실릴 잡지가 나오기를 얼마나 고대하였을까. 그야말로 1일이 삼추(三秋)이었다. 잡지의 나올 임시가 가까워 가자 하루에도 몇 번씩 그의 집에 들러서 활자로 나타난 나의 첫 작품을 보려고 초초한지 몰랐다.

급기야 그 보잘것없는 작품이 활자로 나타났을 제 나의 기쁨이란! 형용할 길이 없었다. 아무리 훌륭한 지위를 얻은들 이에서 더 좋으랴! 아무리 끔찍한 명예를 얻은들 이에서 더 즐거우랴! 나의 몸은 갑자기 보석과 같이 번쩍이는 듯하였다. ‘아라비안 나이트’엔 여성의 키스로 말미암아 단박에 수십 장(丈)을 자란 남성이 있었지만 나는 이 ‘희생화’가 잡지에 게재됨으로 말미암아 천길 만길로 키가 커진 듯도 하였다.

더구나 그 잡지의 편집 후기에 ‘희생화’가 손색 없는 작품이란 호의 있는 소개를 읽을 때면 뛰어야 옳을지 굴러야 옳을지 알 길이 없었다. 애인이나 무엇같이 그 잡지를 품고 그날 밤이 새도록 읽다가 자고 깨면 또 읽었다.

그런데 그 다음달 호인가, 다음다음달 호인가에 ‘희생화’에 대한 황석우(黃錫禹)군의 비평이 났다. 나는 무엇보다도 먼저 그 비평을 읽었다. 그것은 여지없는 비평이었다. ‘희생화’는 소설이랄 수도 없다. 감상문이랄 수도 없고 하등 예술의 형식을 갖추지 못한 무명 산문(無名散文)이란 의미로 냉혹하게 공격하였다. 그야말로 기뻐 뛰던 나에게 청천의 벽력이었다. 갈기갈기 그 잡지를 찢고 싶을 만큼 나는 분노하였다. 극도의 분노는 극도의 증오로 변하여 황석우란 자를 당장 죽여도 시원치 않을 것 같았다. 몇 번이나 팔을 뽐내며 방 안을 왔다갔다했는지 모르리라.

나는 열에 들떠서 그날 밤을 새우며 그 비평에 대한 공격문을 생각하였다. 그 때 나는 투르게네프의 단편에 심취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희생화’를 비위 좋게도 그 문호의 명작의 하나에 마음 그윽히 비기고 있었다.

‘희생화’를 무명 산문이라 한 그대의 비평은 매우 반갑다. 옛날 사람이 쓰지 않던 산문의 형식을 내가 새로이 발명한 것이니 나도 창조적 천재의 한 사람인 듯싶어서 어깨를 추스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애달플손 ‘희생화’와 같은 형식은 벌써 투르게네프의 단편의 어디서든지 볼 수 있는 것이 유감 천만이다. 투르게네프의 그런 작품을 모조리 무명 산문으로 돌릴진대 ‘희생화’호올로 무명 산문이란 이름 듣는 것을 어찌 한하랴. 다만 한되는 것은 이 세상 사람이 모두 그대와 같이 장님이 아니기 때문에 창조적 천재란 월계관을 내가 얻어 쓰지 못하는 일이다.

이런 의미의 지독한 문구를 생각하면서 일어났다 누웠다 잠 한눈 자지 못하고 밤을 밝히었다. 그 후부터는 ‘희생화’를 보기도 싫었다. ‘타락자’란 단편집을 출판할 때에도 빼고 넣지 않았다.

5년이 지난 오늘에야 비로소 무명 산문에 틀림없는 ‘희생화’를 뒤적거리니 그 때의 흥분이 우습기도 하고 그립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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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

  1. 직지 주: 창덕궁은 경복궁 다음으로 지어진 별궁이었으나 조선 제 9대 성종때부터는 여러 임금들이 아곳에 지내 본궁이나 다름없는 궁궐이 되었다. 창덕궁의 후원은 조선시대 임금과 왕실이 풍류를 즐기던 휴식처로 수많은 연못과 정자, 그리고 천년 가까이 묵은 아름드리 느티나무, 향나무 등 울창한 나무숲과 한국의 고전 건축미를 자랑하는 부용정, 영화당, 어수문, 주합루 등이 조화를 이루고 있어 한국의 자연미를 대표하는 정원으로 손꼽히고 있다. 창경궁은 일제에 의하여 창경원이라 격하되고 동물원으로 탈바꿈되어 오랜 기간 동안 궁궐보다는 공원으로 시민들에게 인식되어 왔다. 하지만 일제의 잔재를 없애기 위한 한국정부의 노력으로 1983년부터 3년간에 걸친 복원공사 끝에 놀이시설은 사라지고 옛 궁궐의 모습을 되찾게 되었다.
  2. 직지 주: 원전에는 ‘사꾸라꽃이’라고 되어 있는 것을 ‘벚꽃놀이가’로 바꿨습니다. 이하 ‘사꾸라’는 다 ‘벚꽃’으로 바꿉니다.
  3. 직지 주: 이 번역이 원문의 일부인지는 알 수 없으나, 뒤에 주고 받는 대화상 “사랑을 하면 눈이 먼다지요”가 나을 것 같다.
  4. 직지 주: “그런데, 우리 사랑에는 눈이 있다지요.”가 더 나은 해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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