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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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

지은이

빙허 현진건

출전

본문

()은 가정(家庭)의 단란(團欒)에 흠신 심신(心身)을 잠그게 되엇다.

보기만 하여도 지긋지긋한 형식상(形式上)의 애해가, 궐()이 일본(日本) XXX대학(大學)을 졸업(卒業)하자 말자 불의(不意)에 죽고 말엇다. 궐()은 중등교육(中等敎育)을 마치인 어여뿐 처녀(處女)와 신식결혼(新式結婚)을 하얏다. 새안해는 비스듬이 갈른 머리와 가벼이 옴기는 구두 신은 발만으로도 궐()에게 만족(滿足)을 주고 남앗다. 게다가 그 날신날신한 허리와 언제든지 생글생글 웃는 듯한 눈매를 바라볼 때에 궐()은 더할 수 업는행복(幸福)을 느끼엇다. 살아서 산 보람이 잇섯다.

부모(父母)의 덕택(德澤)으로 궐()은 날 때부터 수만원(數萬圓) 재산(財産)의 소유자(所有者)이엇다. 수년(數年)() 부친(父親)이 별세(別世)하시매, 무서운 친권(親權)의 압박(壓迫)과 구속(拘束)을 벗어난 궐()은 인제, 맛형(兄)으로부터 제목아치를 타기도 되엇다. 새안해의 따뜻한 사랑을 알뜰살뜰히 향락(享樂)하기 위()함에 번루(煩累) 만코 방해(妨害) 만흔 고향(故鄕) XX부()를 떠난 궐()은 바람끄테, 꼿날리는 느진 봄에 서울에서 신살림을 차리기로 하얏다. 위선(爲先) 한 스무남은간 되는 집을 장만한 그들은 다년(多年)의 동경(憧憬)대로 포부(抱負)대로 이상적(理想的) 가정(家庭)을 꾸미기에 노력(努力)하엿다.- 마루는, 한복판에 도화심목(桃花心木) 테불을 노코, 그 주위(周圍)를 소파로 둘러 응접실(應接室)로 맨들엇다. 그리고 안방은 침실(寢室), 건너 방은 서재(書齋), 뜰알에ㅅ 방은 식당(食堂)으로 정()하얏다. 늣그릇은 위생(衛生)에 해()롭다 하야 사긔그릇, 유리그릇만 사용(使用)하기로 하고. 세간도 조선의(朝鮮衣)거리, 삼층장(三層欌) 가튼 것은 거창스럽다 하야 전부(全部) 폐지(廢止)하얏다. 누구든지 그집에 들어서면 첫눈에 띄이는 것은 마루ㅅ 정면(正面) 바람벽 한가운대 노힌, 근 체경(軆鏡) 박히인 양복장(洋服欌)과 그량편, 화류목(樺榴木)으로 맨든 소쇄(瀟灑)한 탁자(桌子)에 아기자기하게 언처인 사긔그릇, 유리그릇이리라.

식구(食口)라야 단 둘뿐인데 찬비(饌婢)1와 침모(針母)2를 두고 보니 지어미의 할 일도 업섯다. 지아비로 말하여도 먹을 것이 넉넉한 다음에야 인재(人才)를 몰라주는 이 사회(社會)에 승두미리(蠅頭微利)3를 다툴 필요(必要)도 업섯다. 독서(讀書)·정담(情談)·화투(花鬪)·키쓰 포옹(抱擁)이 그들의 일과(日課)이엇다.

이외(外)에 그들의 일과(日課)가 잇다고 하면 이상적(理想的) 가정(家庭)에 필요(必要)한 물품(物品)을 사들이는 것이리라. 이상적(理想的) 안해는 놀랄만한 예리한 관찰(觀察)과 치밀(緻密)한 주의(注意)로써 이상적(理想的) 가정(家庭)에 잇서야 만할 물건을 차저 내엇다. 트람프, 손톱깍는 집개 가튼 것도 그 중요(重要)한 발견(發見)의 하나이엇다.

하로는 안해는 그야말로 이상적(理想的) 가정(家庭)에 업지 못할 무엇을 깨달앗다. – 그것은 내가 어째 입때 그것 생각이 아니 낫는고, 하고 스스로 놀랄 만한 무엇이엇다. 호올로 제 사색(思索)의 주도(周到)한데 연거퍼 만족(滿足)의 미소(微笑)를 띄우며, 마츰 어대 출입(出入)하고 업는 남편(男便)의 돌아옴을 기다리기에 제삼자(第三者)로는 상상(想像)도 할 수 업시 지리(支離)하얏다.

남편(男便)이 돌아오자 말자 안해는 무슨 긴급(緊急)한 일을 말하랴는 사람모양으로 회오리바람가티 달겨들엇다.

「나 오늘 또 하나 생각햇서요.」

「무엇을?」

「그야말로 이상적(理想的) 가정(家庭)에 업지 못할 물건(物件)이야요!」

「남편(男便)은 빙글에 웃으며,

「또 무엇을 가지고 그리우.」

「알아 마처 보셔요.」 안해의 눈에는 자랑의 비치 역력(歷歷)하얏다.

「무엇일가…」

남편(男便)은 먼산을 보기도 하고, 이리저리 세간을 둘러도 보며 진국으로 이윽히 생각하더니, 면목(面目)업는 듯이

「생각이 아니 나는걸…」하고, 무안새김으로 또 한번 웃엇다.

「그것을 못알아 마치셔요.」

안해는 배앗는 듯이 한 마듸를 던지엇다. 한동안 남편(男便)의 얼굴을 생글생글 웃는 눈으로 물그럼이 바라보고 잇다가, 무슨 중대(重大)한 사건(事件)을 밀고(密告)하랴는 사람모양으로 입술을 남편(男便)의 귀에다 다이고 소근거리엇다.

「피아노!」

「오올치! 피아노!」

남편(男便)은 대몽(大夢)이 방성(方醒)하얏다는 듯이 소리를 버럭 질럿다. 피아노가 얼마나 그들에게 행복(幸福)을 줄 것은 상상(想像)만 하여도 질거웟다. 머언하게 뜬 남편(男便)의 눈에는 벌서 피아노건반(鍵盤)위로 북가티 쏘대이는 안해의 보얀 손이 어른어른 하얏다.

그 후() 두시간(時間)이 못되어 휼륭한 피아노 한채가 그집 마루에 여왕(女王)과 가티 임어(臨御)하얏다. 지어미 지아비는 이 화려(華麗)한 악기(樂器)를 바라보며 깃븜이 철철 넘치는 눈웃음을 교환(交換)하얏다.

「마루에 무슨 서기(瑞氣)가 삐친 듯 한 걸이요」

「참 그래. 왼 집안이 갑작히 환한 듯 한걸」

「그것 보시요. 내 생각이 어떤가」

「과연 주도(周到)한걸. 그야말로 이상적(理想的) 안해 노릇할 자격이 잇는걸」

「하하하…」

말끗은 웃음으로 매치엇다.

「그런데 한번 처 볼 것 아니요. 이상적(理想的) 안해의 음악(音樂)에 대()한 솜씨 좀 봅시다 그려」

하고, 사나희는 행복(幸福)에 빗나는 얼굴을 안해에게로 향()하엿다. 게집의 벅적이든 얼굴은 갑작히 흐려지고 말엇다. 궐녀(厥女)의 상판은 피로 물들인 것가티 새빨개 젓다. 궐녀(厥女)는 억지로 그런 기색(氣色)을 감추랴고 애를 쓰며, 기어 들어가는 소리로

「먼저 한번 처보셔요」하얏다.

이번에는 사나희가 섬억섬억하얏다. 답답한 침묵(沈默)이 한동안 납덩이가티 그들을 누르고 잇섯다.

「그리지 말고 한번 처보구려. 그러케 부끄러워 할거야 무엇잇소」

이윽고 남편(男便)은 달래는 듯이 말을 하얏다. 그러나 그 소리는 자리가 잡히지 안핫다.

「나… 나 칠줄 몰라.」

모긔가튼 소리로 속살거린 안해의 두뺨에는 불이 흐르며 눈에는 눈물ㅅ그림자가 어른거리엇다.

「그것을 모른담.」하고, 남편(男便)은 득의양양(得意揚揚)한 웃음을 웃고는 「내 한번 치지」하고, 피아노압헤 안젓다. 궐()도 또한 이 악기(樂器)를 매만질 줄 몰랏다. 함부로 건반(鍵盤) 우를 치훌고 나리훌틀 따름이엇다. 그제야 안해도 매우 안심(安心)된 듯이 해죽 웃으며, 이런 말을 하얏다.

「참 잘 치십니다. 그려.」

(끗, 1922,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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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

  1. 직지 주: 반빗아치. 예전에, 반찬을 만드는 일을 맡아 하던 하인
  2. 직지 주: 남의 집에서 바느질을 하고 삯을 받는 사람
  3. 직지 주: 파리머리 같이 미미한 이익. 소동파가 쓴 시 만정방(滿庭芳) 에 와각허명(蝸角虛名) 승두미리(蠅頭微利)란 내용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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