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꿈은 창백하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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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꿈은 창백하더이다

  • 공개되어 있는 내용이 없어서 2009.8.11~8.15 직접 입력해서 올립니다.
  • 입력본은 학원출판공사의 학원한국문학전집 4권입니다

지은이

나도향

출전

개벽 30, <1922.12>

본문

내가 열 두 살 되던 어떠한 가을이었다. 근 5리나 되는 학교를 다녀온 나는 책보를 내던지고 두루마기를 벗고 뒷동산 감나무 밑으로 달음질하여 올라갔다.

쓸쓸스러운 붉은 감잎이 죽어가는 생물처럼 여기저기 휘둘러서 휘날릴 때 말없이 오는 가을바람이 따뜻한 나의 가슴을 간지르고 지나가매, 나도 모르는 쓸쓸한 비애가 나의 두 눈을 공연히 울먹이고 싶게 하였다. 이웃집 감나무에서 감을 따는 늙은이가 나뭇가지를 흔들 때마다 떼지어 구경하는 떠꺼머리 아이들과 나이 어린 처녀들의 침삼키는 고개들이 일제히 위로 향하여지며 붉고 연한 커다란 연감이 힘없이 떨어진다.

음습한 땅 냄새가 저녁 연기와 함께 온 마을을 물들이고 구슬픈 갈가마귀 소리 서편 숲속에서 났다. 울타리 바깥 콩나물 우물에서는 저녁 콩나물에 물 주는 소리가 척척하게 들릴 적에 촌녀의 행주치마 두른 짚세기 걸음이 물동이와 달음박질한다.

나는 날마다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로 하는 것이라고는 이것이 첫째번 과목이다. 공연히 뒷동산으로 왔다갔다한다.

그날도 감나무 동산에서 반숙한 연감 하나를 따먹고서 배추밭 무밭으로 돌아다녔다. 지렁이 똥이 몽글몽글하게 올라온 습기 있는 밭이랑과 고양이 밥이 나 있는 빈 터전을 쓸데없이 돌아다닐 적에 건너편 철도 연변에 서 있는 전기불이 어느 틈에 반짝반짝 한다.

그때에 짚신 신은 나의 아우가 뒷문에 나서면서 부엌에서 밥투정을 하다 나왔는지 열 손가락과 입 가장자리에는 밥알투성이를 하여 가지고 딴사람은 건드리지도 못하는 저의 백동 숟가락을 거꾸로 들고 서서,

“언니 밥 먹으래.”

하고 내가 바라보고 서 있는 곳을 덩달아 쳐다본다.

“그래.”

하고 대답을 한 나는 아무 소리도 없이 마루끝에 가서 앉으며 차려 놓은 밥상을 한 귀퉁이 점령하였다. 밥먹는 이라고는 우리 어머니와 일해 주는 마누라와 나와 나의 다섯 살 먹은 아우뿐이다.

소학교 4학년을 다니는 내가 무엇을 알며 무엇을 감득할 능력을 가졌으며 안다 하면 얼마나 알고 감득하면 몇 푼어치나 감득하리요. 그러나 웬일인지 그때부터 나의 어린 마음은 공연히 우울하여졌다. 나뭇가지 하나가 바람에 흔들리는 것이나, 저녁 참새가 처마 끝에서 옹송그리며1 재재거리는 것이나, 한가한 오계(午鷄)가 길게 목늘여 우는 것이나, 하늘 위에 솟는 별이 종알거리는 것이나, 저녁달이 눈<雪> 위에 차디차게 비추인 것이나, 차르럭거리며 흐르는 냇물이나 더구나 나무 잎사귀와 채소 잎사귀에 얼킨 백로의 뻔지르하게 흐르는 것이 왜 그리 어린 나의 감정을 창백한 감상의 와중으로 쳐 틀어박는지 약한 심정과 연한 감정은 공연한 비애 중에서 때없는 눈물을 흘리었었다.

그것을 시상의 발아라 할는지 현묘유원(玄妙幽遠)한 그 무슨 경역(境域)을 동경하는 첫째번 동구일는지는 알지 못하겠으나 어떻든 나는 다른 이의 어린 때와 다른 생애의 일절을 밟아왔다. 그러나 그것은 몽롱한 과거이며 흐릿한 기억이다.

그날 저녁에도 어둠침침한 마루 끝에서 갓 지은 밥을 한 숟갈 퍼먹을 때에 공연히 쓸쓸하고 적적하다. 어렴풋한 연기 냄새가 더구나 마음을 괴롭게 한다. 침묵이 침묵을 낳고 침묵이 침묵을 이어 침침한 저녁을 더 어둡게 할 때 나는 웬일인지 간지럽게 그 침묵이 싫었다. 더구나 초가집 처마 끝에서 이리 얽고 저리 얽어 놓은 왕거미 한 마리가 어느덧 나의 눈에 뜨일 때에 나는 공연히 으쓱하여 무엇을 생각하시는지 입에 든 밥만 씹고 계신 우리 어머니의 얼굴만 쳐다보았다. 그리고 코를 손등으로 씻어가며 손가락으로 반찬을 집어먹는 나의 아우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할멈 물 좀 떠오게.”

하는 소리가 우리 어머니 입에서 떨어지며 그 흉한 침묵이 깨지었다. 할멈은 행주치마자락에 손을 씻으며 대접을 들고 부엌으로 내려가더니 솥뚜껑 소리가 한 번 덜컹 하고 숭늉 한 그릇을 들고 나온다. 어머니는 아무 소리 없이 그 물을 나에게다 내미시면서,

“물 말아 먹으련.”

하시니까 물어보신 나의 대답은 나오기도 전에 나의 동생이 어리광부리는 그 소리로

“물.”

하고 물그릇을 가로채간다.

“엎질러진다. 언니 먹거던 먹거라.”

하시는 어머니의 권고는 아무 효력이 없이 왈칵 잡아당기는 물그릇은 출렁하더니 내 동생 바지 위에 들어부었다. 그 일찰라간에 우리 네 사람은 일제히 물러앉으며,

“에그.”

하였다. 어머니는

“걸레, 걸레.”

하며 할멈에게 손을 내민다.

“글쎄 천천히 먹으면 어때서 그렇게 발광이냐.”

하시며 상을 찌푸리시고 할멈이 집어주는 걸레를 집어 나의 아우의 바지 앞을 털어주신다. 때가 묻은 바지 앞을 엉거주춤하고 내밀고 있는 나의 아우는 다만 두 팔만 벌리고 서서 아무 말이 없다. 나는 미안하였던지 동생의 철없이 날뛰는 것이 우스워 그리하였던지 밥은 먹지 못하고 다만 상에서 저만큼 떨어져 앉았다가 석유등잔에 불만 켜놓고서 다시 밥상으로 가까이 올 때,

“에그, 다리 아파. 저녁을 인제야 먹니?”

하며 마당으로 들어오는 이는 우리 동생 할머니시다. 손에는 나무로 만든 책보를 들고 발에는 구두를 신고 머리를 쪽진 데는 은비녀를 꽂았다. 키가 작달막한데다가 머리가 희끗희끗한데 검정 치마가 땅에 거의거의 끌리게 된 것을 보니까 아마 오늘도 꽤 많이 돌아다니신 모양이다.

“어서 오십시요.”

하며 들던 숟가락을 놓고 일어나시는 이는 우리 어머니시다.

“마님 오십니까.”

하고 짚세기를 신는 이는 할멈이다. 마루창이 뚫어져라 깡총깡총 뛰며

“할머니 할머니.”

를 부르는 것은 나의 아우다. 나는 숟가락을 입에 문 채로 다만 빙그레 웃으면서 반가와하였다.

마루 끝에 할머니는 걸터앉으셨다. 할멈은 걸레로 마루바닥을 훔치는 사이에 어머니는 부엌으로 내려가셨다. 그릇 소리가 덜거덕덜거덕 난다. 피곤한 가슴을 힘없이 내려앉히시며 한숨을 휘 하고 내쉬신 할머니는 무슨 걱정이나 있는 듯이 부엌을 향해서,

“고만두어라. 내 밥은 아직 먹고 싶지 않다.”

하신다. 어머니는 부엌에서 상을 차리시더니,

“왜 그러세요. 조금 잡숫지요.”

“아니다. 저기서 먹었다. 오늘 교인 심방을 하느라고 명철(明哲)이 집에 갔더니 국수장국을 끓여내서 한 그릇 먹었더니 아직까지도 배가 부르다.”

어머니는 차리던 상을 그대로 놓고 부엌문에서 나오며,

“명철이 집이요, 그래 그 어머니가 편찮다더니 괜찮아요?”

“응 인제는 다…… 낫더라. 그것도 하느님 은혜로 나은 것이지.”

우리 할머니는 그 동네 교회 전도 부인이시다. 우리 집안은 본래 우리 할아버지와 아버지 사이가 좋지 못하여 따로따로 떨어져 산다. 그리고 우리 할머니는 열심 있는 교인이요, 진실한 신자이지마는 우리 아버지는 종교(현대 사회에서 명칭하는)에 대하여 냉혹한 비평을 하는 사람이었다.

우리 할머니는 본래 교육이 있지 못하다. 있다 하면 구식 가정에서 유교의 전통을 받아오는 교육이었을 것이며, 안다 하면 한문이나 국문 몇 자를 짐작할 뿐이요, 새로운 사조와 근대사상이라는 옮기기도 어려운 문자가 있는지도 알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 열 두 살 되던 그 해에는 다만 우리 할머니를 한 개 예수 믿는 여성으로 알았었으며, 하느님이 부리는 따님으로만 알았었다. 종교에 대한 견해라든지 신앙이란 여하한 것인지를 알지 못하였다.

나도 예수교 학교를 다니므로 자기의 선생을 절대로 신임하고 자기의 학교의 교풍을 절대로 존중하였었다. 그리고 예수의 십자가에 흘렸던 붉은 피가 참으로 우리 인생의 더러운 피를 씻었으며 수염 많은 할아버지 같은 하느님이 참으로 우리를 내려다보시고 계신 줄 알았었다.

날마다 아침 성경시간과 주일학교에서 선생에게 들은 바가 참으로 나의 눈앞에 환상으로 나타났었으며 유대 풍속을 그린 성화가 과연 천당, 지옥, 성지, 낙토의 전형으로 보이었었다. 그것이 나에게 어떻든 무슨 인상을 준 것은 사실이니 천사를 생각할 때에는 반드시 서양여자를 그린 그 채색 칠한 그림이 나의 눈앞에 나타나 보이며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간 것을 생각할 때에는 시뻘건 육괴(肉塊)가 시안(屍眼)을 부릅뜨고 초민(焦悶)과 고통의 극도를 상징하는 그의 표정과 비린내나고 차디찬 피가 흐르는 예수의 죽음이 만인의 입과 천년의 세월을 두고 성찬 성찬 하며 추앙 경모의 그 부르짖음의 소리가 그 어린 나의 귀와 나의 심안에 닿을 때에도 그것은 고통으로 보이지 않았으며 초민으로 보이지 않았으며 비린내 나는 붉은 피 보혈로 보이었으니 무서운 시체를 그린 그 그림이 도리어 나의 어린 핏결 속에 무슨 신앙을 불어넣어 주었었다. 그때의 나의 기도는 하느님이 들었으며 그때의 나의 죄는 예수가 씻었었다. 그것이 결코 지금의 나를 만족시키며 지금 나에게 과연 신앙을 부어주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내가 열 두 살 되는 그때의 나의 영혼은 있는지 없는지도 판단치 못하던 하느님이 지배하였었으며 이천 년 옛날에 송장이 되어 썩어진 예수가 차지하였었다. 그때의 나의 영혼은 나의 영혼이 아니고 공명(空名)의 하느님의 것이었으며 그때의 나의 생은 나의 생이 아니며 촉루(髑髏)까지 없어진 예수의 생이었다. 그때의 나는 약자이었으며 그때의 나는 피정복자이었다. 무궁한 우주와 조화를 잃은 자이었으며 명명무한대(暝暝無限大)한 대세계에 나의 생을 실현할 능력을 빼앗긴 자이었다.

명명한 대공을 바라볼 때에 유대식 건물의 천당을 동경하였을지라도 자아심상의 낙토는 몰랐으며 사후의 영생은 구하였을지라도 생하여서 영생을 알지 못하였다. 사는 생의 척도됨을 알지 못하고 생이 도리어 사후의 희생으로 알았었다.

산상의 교훈과 포도동산의 교훈을 듣기는 들었으나 열 두 살 먹은 나의 호기심을 끌기에 너무 현묘하였으며 사랑의 복음과 자아의 희생을 역설함을 듣기는 들었으나 나에게 과연 심각한 감화를 주지는 못하였었다. 성경의 해석은 일종의 신화로 나의 귀에 들렸으나 그 무슨 신앙을 주었으며 성화를 그린 종이조각은 한 개 완구가 되었으나 빼기 어려운 우상을 나의 심전에 그리어 주었다.

아아, 나는 물으려 한다. 하느님의 사자(使者)로 자처하고 교회의 일꾼으로 자임하는 우리 할머니의 그때의 내면적이나 외면적을 불문하고 열 두 살밖에 되지 않은 나의 그것과 얼마나 틀린 점이 있었으며 얼마나 혼점이 있었을는지? 그는 과연 예수의 성훈을 날것대로 삼키는 자가 되지 않고 조리하고 익히며 그의 완전한 미각으로 그것을 저작(咀嚼)할 줄을 알았을까? 그는 참으로 예수의 정신을, 그의 내적 생활을 체득한 자이었을까? 그는 과연 여하한 신앙으로써 생으로 생까지를 살아갔었으며 그는 참으로 어떠한 영감을 예수교에서 감득하였을까? 나는 다만 커다란 의문표를 안 그릴 수가 없다.

그날도 우리 할머니는 여자의 몸의 피곤함을 깨달으면서도 무슨 만족함이 그의 얼굴을 싸고 도는 듯하였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자아 이외의 우리 어머니나 할멈이나 내나 나의 동생을 일개의 죄인시하는 곳에 가련함을 견디지 못하는 듯한 표정이 그의 시들어가는 입 가장자리와 가느다란 눈초리에 희미하게 얽히어 있었다. 할머니는 조금 있다가 눈살을 잠깐 찌푸리시더니,

“큰일났어! 예배당에 돈을 좀 가져가야 할 텐데 돈이 있어야지. 다른 사람과 달라서 아니 낼 수도 없고 또 조금 내자니 우리 집을 그래도 남들이 밥술이나 먹는 줄 아는데 그렇게 할 수도 없고 이런 말씀을 아버지께 여쭈면 공연히 역정만 내시니까!”

하며 우리 어머니에게 향하여 걱정을 꺼낸다.

“요사이 날이 점점 추워져서 시탄비(柴炭費)를 내야 할 터인데 김 부인은 벌써 5원을 적었단다. 그이는 정말 말이지 살아가기가 우리 집에다 대면 말할 것도 없지 않느냐. 그런데 아버지께 그런 말씀을 하니까 역정을 내시면서 남이 죽으면 따라 죽느냐고 야단을 치시면서 돈 1원을 주시는구나. 그러니 얘 글쎄 생각을 해보아라. 어떻게 1원을 내니! 내 속이 상해서 죽겠어.”

하며,

“그래서 하는 수가 있더냐, 명철이 집에 가서 돈 5원을 지금 꾸어 가지고 오는 길이란다.”

하며 차곡차곡 접어 쥔 1원 지폐 다섯 장을 펴보인다. 우리 어머니는 이렇다 저렇다 말이 없이 가만히 듣고만 있다가,

“그러면 그것은 어떻게 갚으실 것입니까?”

하며 빈곤한 생활에 젖은 우리 어머니는 그 갚는 것이 첫째 문제로 그의 가슴을 거북하게 하였다.

“글쎄 그거야 어떻게든지 갚게 되겠지? 하다못해 전당을 잡혀서라도.”

하더니,

“에그, 인제 고만 가보아야지.”

하며 벌떡 일어서서 나가려 하다가,

“애 아범은 여태까지 안 들어왔니?”

한 마디를 남겨놓고 바깥으로 나간다. 우리 어머니는 다만

“네, 언제든지 그렇게 늦는답니다.”

하며 걱정스러운 듯이 문 밖으로 할머니를 쫓아나간다.

우리 어머니는 아슬랑아슬랑 어둠 속으로 사라져가는 우리 할머니의 뒤 그림자가 사라져 없어져가는 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 할머니의 검은 그림자가 다 — 사라진 뒤에도 여전히 그 할머니의 그림자가 사라져 없어진 곳에서 무엇을 찾는 듯이 바라보고 서 있다. 모든 것이 검기만 한 어두운 밤이다. 나도 나의 동생을 등에 업고 어머니를 쫓아 문 밖에 서 있었다. 어머니는 소매 걷은 두 팔을 가슴에 팔짱을 끼고 허리를 꾸부정하고 서서 근심스러운 듯이 저쪽 길만 바라보고 서 계시다. 고생살이에다 — 썩은 얼굴은 웬일인지 나도 쳐다보기가 싫게 화기가 적다. 머리카락이 이마를 덮은 그의 두 눈은 공연히 쳐다보는 나를 울고 싶게 하였다. 때묻은 행주치마와 다 — 떨어진 짚세기가 더욱 나를 부끄럽게 하였다.

하얀 두루마기가 바라보는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 휘날릴 때마다 우리 어머니는 옆에 서 있는 나에게 나지막한 목소리로,

“아버진가 보다.”

하며 나에게 무슨 동의를 청하시는 것처럼 바라보신다. 그러나 그 흰 두루마기가 우리 집으로 향하지 않고 다른 곳으로 지나쳐버릴 때는 우리 어머니와 나는 섭섭한 웃음을 웃었다.

문간에 서서 아무 말 없이 늦게 돌아오는 우리 아버지를 기다리는 우리는 한 시간이 넘도록 서 있었다. 나의 어린 아우는 등에다 고개를 대고 코를 골며 잔다. 이마를 나의 등에다 대고 허리를 새우등같이 꾸부리고 자다가는 옆으로 떨어질 듯하면 반드시 한번씩 놀란다. 놀랄 그때 나는 깍지 낀 손을 다시 단단히 쥐고 주춤하고 한번씩 다시 추키었다. 한 시간을 기다려도 아버지는 돌아오시지 않으셨다. 어머니는 힘없고 낙망한 소리로,

“문 닫고 들어가자!”

하시며,

“애그, 어린애가 자는구나. 갖다 뉘어라.”

하시며 대문을 벌컥 닫고 들어오신다. 문 닫는 소리가 어쩐지 쓸쓸하고 적적하다. 우리집 공중을 싸고 도는 공기의 파동은 연색(沿色)의 파문을 그리는 듯이 동적이 아니며 정적이었으며 양기가 없고 음기뿐이었다. 회색 칠한 침묵과 갈색의 암흑이 이 귀퉁이 저 귀퉁이에서 요사한 선무를 추고 있었다.

나는 그때에 무엇을 감각하였으며 무엇을 감득하였을까? 회색 침묵과 아득한 암흑이 조화를 잃고 선율이 없이 티없는 쓸쓸한 바람과 섞이어 시름없이 우리집 전체의 으스스한 공기를 휩싸고 돌아나갈 때 나의 감정은 푸른 감상과 서늘한 감정으로 물들여주었었다. 마루 끝까지 올라선 나의 눈에 비추인 찬장이나 뒤주나 그 외의 모든 기구가 여러 가지 요괴의 화물같이 보일 때에 나의 가슴은 더욱 서늘하여졌었다. 다만 나무 잎사귀가 나무 끝에서 바스락 하는 것일지라도 나를 방안으로 뛰어들어가도록 무서웁게 하였다. 어머니가 등잔불을 떼어 들고 나의 뒤를 쫓아 들어오실 때에 그 불에 비추인 나의 어두운 그림자가 저쪽 담벼락에서 어른어른하는 것까지 나의 머리끝을 으쓱하게 하였다.

그러나 그 정숙과 공포가 얽힌 나의 심정을 풀어주고 녹여주는 것은 나의 뒤에 서 있는 사랑의 신 같은 우리 어머니의 부드러운 사랑의 힘이었다. 그것은 나의 신앙의 전부였으며 나의 앞길을 무한한 저 앞길로 인도하는 구리 기둥이었다. ‘’베드로’’가 예수를 보고 ‘’갈릴리’’바다로 걸어감과 같이 이 세상 모든 것을 초월케 하는 최대의 노력이었다. 등잔불의 기름이었으며 쇠북을 두드리는 방망이였다.

방으로 들어온 나는 아랫목에 자리를 펴고 누워서 복습을 하였었다. 본래 공부를 하지 않는 나는 내일에 선생에게 꾸지람이나 듣지 않으려고 산술 문제 두어 문제를 하는 척하여 다른 종이에 옮기어 베끼고 쓰기 싫은 습자는 내일 아침 일찍 일어나 쓰기로 하였다. 나의 동생은 발길로 나의 허리를 지르면서 이리 뒤척 저리 뒤척 이리 뛰굴 저리 뛰굴, 남의 덮은 이불을 함부로 끌어다가 저도 덮지 않고서 발치에다 밀어던진다. 그리고는 힘있는 콧김을 길게 내쉬며 곤하게 잔다. 우리 어머니는 등잔 밑에서 바느질을 하시며 눈만 깜박깜박 하신다. 할멈은 발치에서 고단한 눈을 잠깐 붙였다.

나는 방안이라는 조그마한 세계에서 네 개의 동물이 제각각 다른 상태로 생을 계속하는 가운데 남의 걱정과 남의 근심을 알 줄을 몰랐었다. 우리 어머니의 머릿속에는 과연 어떠한 심리상태의 활동사진이 그의 뇌막에 비치었으며 늙은 할멈은 어떠한 몽중 세계에서 고생살이 잠꼬대를 할는지 몰랐다. 어린 아우의 단순한 머릿속에도 무서운 호랑이와 동리집 아이의 부러운 장난감을 꿈꾸는 줄은 알지 못하였다. 따뜻한 이불 속에서 두 발을 문지르며 편안히 누웠으니 몇십 분 전 가득하던 감정이 이제는 어디로 인지 다 — 달아나고 모든 것이 한가하고 모든 것이 평화롭고 모든 것이 노곤한 감몽을 유인하는 것뿐이었다. 이제는 어느 틈에 올는지 모르는 달콤한 잠을 기다릴 뿐이었다. 불그레한 등불 밑에 앉아서 바느질하시는 어머니의 머릿속에 있는 늦게 돌아오시는 아버지를 기다리시는 초민과 지나간 일을 시간의 얽히었다 풀리었다 하는 기억과 연상과 기대와 동경의 엉클어진 심리는 알지 못하고 다만 재미있는지 기쁜지 으례히 그래야 할 것인지 알지 못하는 무의식의 연장선이 나의 전신을 거미줄 얽듯 얽기를 시작하더니 나는 아무것도 몰랐다. 잠이 들었다.

어느 때나 되었는지 알지 못하게 든 잠이 마려운 오줌으로 인하여 어렴풋하게 깨었을 때이었다. 이불을 들치고 엉거주춤 일어선 나의 귀에는 지껄지껄하는 사람의 목소리가 들리더니 등잔불에 부신 두 눈 사이로 우리 아버지의 희미한 윤곽이 보였다. 나는 반가운 마음에,

“아버지!”

하였다.

그러나 우리 아버지는 젓가락으로 앞에 놓인 반찬을 뒤적뒤적 하시면서 나를 냉담한 눈으로 멀거니 쳐다보시기만 하시더니 무슨 불만한 점이 계신지 노여운 어조로,

“아버진 뭐든지 다 귀찮다. 어서 잠이나 자거라.”

하시고는 다시 본 척 만 척하시고 반찬 한 젓가락을 입에 넣으신다.

나는 얼굴이 홧홧하도록 무참하였다. 나는 죄지은 사람같이 양심에 무슨 부끄러움이 나의 아버지를 쳐다보지 못하게 하였다. 숙몽(熟夢)에 취하였던 나의 혼몽한 정신은 한꺼번에 깨어지며 뻣뻣하던 두 눈은 기름을 부은 듯이 또렷또렷하여졌다. 그때야 나는 우리 아버지의 붉은 얼굴을 보고 술 취하신 줄을 알았다.

어머니는 무참해하고 무서워하는 나의 꼴을 보시고 아버지를 흘겨 쳐다보시며,

“어린 자식이 반가와하는 것을 그렇게 말하니 좀 무참하겠소. 어린애들이라 하더래도 좋은 말할 적은 한번도 없지.”

하시다가 다시 나를 향하시어 혼잣말 비슷하고 또는 누구더러 들어보란 듯이,

“너희들만 불쌍하니라. 아버지라고 믿었다가는 좋지 못한 꼴만 볼 터니까.”

하시며 두 눈을 아래로 깔고 방바닥을 걸레로 훔치시는 체하신다.

나는 드러눕지도 못하고 일어나지도 못하였다. 드러눕자니 아버지 진지 잡숫는데 불경(不敬)이 될 터이요, 그대로 앉았자니 자다가 일어난 몸이 추운 가운데 공연히 무서워서 몸이 떨린다. 이런 때는 나의 어머니가 변호인이요, 비호자임을 다소간의 지낸 경험으로 알고 또는 사람의 본능으로 모성의 자애를 신임하는 나는 우리 어머니의 얼굴만 쳐다보았다.

그때 마침 어머니는,

“어서 누워 자거라. 아버지 진지도 거의 다 잡수셨으니.”

하셨다. 나의 마음은 얼었던 것이 녹는 듯이 아주 좋았다. 나는 못 이기는 체하고 곁눈으로 아버지의 눈치만 보며 이불자락을 들었다. 그리고는 눈 딱 감고 이불을 귀까지 폭 덮고 그대로 드러누웠다. 그러나 잠은 어디로 달아나버렸는지 오지 않는 잠을 억지로 자는 척하지마는 마음은 조마조마하여 못 견딜 지경이었다.

아버지는 숟가락을 탁 집어 상 위에 내던지시더니,

“엥, 내가 없어야 해. 없어야 해.”

를 두서너 번 중얼거리시더니,

“그래 자기 자식은 굶든지 죽든지 상관하지를 않고 예배당인지 무엇인지 거기에다간 빚을 얻어다가 주어야 해?”

하시며 옆으로 물러앉으시니까 어머니는,

“누가 알우. 왜 그런 화풀이는 내게다가 하우.”

하시는 소리가 떨어지기도 전에,

“무엇, 흥, 기가 막혀. 그래 예수가 무엇이고 십자가가 무엇이야? 예배당에 다닌다 하고 구두만 신고 다니면 제일인가? 왜 구두를 신어! 그 머리가 허연 이가 구두짝을 신고 다니는 꼴이라니. 활동사진 박을 만하지. 예수가 무슨 말을 하였는지 알기들이나 한다나? 그 사생아를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그러나 예수가 나쁜 사람은 아니지. 좋은 사람이지. 참 성인은 성인이야! 그렇지만 소위 예수 믿는 사람들이 예수라는 그 사람을 믿었지 예수가 부르짖은 그 하느님은 믿지 못하였어! 하느님은 이 세상 아니 계신 곳이 없지! 누구에게든지 하느님은 계신 것이야! 다 각각 자기 마음속에 하느님이 계신 것이야! 여편네들이 무엇을 알아야지. 내가 이렇게 떠들면 술 먹고 술주정으로만 알렸다! 흥, 우이독경(牛耳讀經)이야! 기막히지! 여보 무엇을 알우? 그런 늙은이가 무엇을 알어. 그래 신앙이 무엇인지 참 종교가 무엇인지를 알어? 예수, 예수 하고 아주 기도를 하고! 그것은 모두 약자의 짓이야. 사람은 강자가 되어야 해!”

우리 어머니는 듣고만 계시다가,

“듣기 싫소. 웬 잔말이요! 그런 말을 하려거던 어머니나 아버지한테 가서 하구려.”

하시며, 상을 들고 나가려고 하시니까 아버지는,

“뭐야, 듣기 싫다구?”

하시더니 어머니의 치마를 홱 잡아당기시는 김에 치마가 북 하고 찢어졌다. 어머니는 상을 할멈에게 주고 찢어진 치마를 들여다보시며 얼굴이 빨개지신다. 여자인 어머니는 의복의 파손이 얼마큼 아까운지 모르시는 모양이다. 치마폭이 찢어지는 그 예리한 소리와 함께 우리 어머니의 신경은 뾰족한 바늘끝으로 쪽 내리 베는 것같이 날카롭고 자극을 받으신 모양이다.

“이게 무슨 짓이오. 여편네 옷을 찢지 못하면 말을 못하오? 그래 무슨 말이오. 어디 말을 좀 해보우. 어쩌자고 이러시우. 날마다 늦게 술이나 취하여가지고 만만한 여편네만 못 살게 구니 참으로 사람 죽겠구려! 무슨 말이요! 할 말 있거든 어서 하시요!”

흥분된 어조를 조금 높이신 까닭에 음성은 또 우리 아버지를 흥분시키는 동시에 노엽게 하였다.

“말을 하라구? 흥 남편된 사람이 옷을 좀 찢었기로 무엇이 어쩌구 어째?”

“글쎄 내가 무엇이라고 했소, 내가 무슨 죄요. 참으로 허구헌날 살 수가 없구려.”

“듣기 싫어. 여편네들이 무엇을 알아야지. 남편의 심리를 몰라주는 여편네가 무슨 일이 있어서. 다 고만두어. 나는 우리 아버지에게 내버림을 당한 사람이고 세상에서 구박을 당한 사람이니까…… 에…… 후……”

우리 아버지는 이렇게 떠드시다가 다시 한참 가만히 앉아 계시더니 벌떡 일어나시며,

“엥! 가만 있거라. 참말 그대로 있을 수는 없어! 내가 가서 좀 설교를 해야지 내가 목사 노릇을 좀 해야 해.”

하고 모자를 쓰고 벌떡 일어나시며 문 밖으로 나가시려고 하니까 어머니는 또다시 목소리를 고치시어 부드럽고 애원하는 중에도 조금 노기를 띠신 어조로,

“여보 제발 좀 고만두. 글쎄 이게 무슨 짓이요. 이 밤중에 가기는 어디로 가며 가셔서 어떻게 하실 모양이요. 자! 고만 옷 좀 벗고 눕구료.”

아버지는 듣지도 않고 방문을 홱 열어젖뜨린다. 고요한 저녁 공기가 훈훈한 방안으로 훅 불어들어오며 나의 온몸을 선뜩하게 하더니 석유 등잔의 불이 두어 번 뻔득뻔득 한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팔을 붙잡으시었다. 웅크리고 마루에 앉아 있던 할멈은 황망하여 하지도 않고 여러 번 경험한 그의 침착한 태도로 두 팔을 벌리고 다만 이리 왔다 저리 왔다 하면서 동정만 살피고 있다.

어머니는 떨리는 목소리로,

“글쎄 남부끄럽지도 않소. 어서 들어갑시다. 가기는 어데로 가우. 남이 알면 글쎄 무슨 꼴이우.”

하는 말을 듣지도 않으시고 우리 아버지는 어머니의 팔을 홱 뿌리치신다. 어머니는 ‘에크’ 소리를 지르시며 방문 밖에서 방안으로 넘어지시며 한참이나 아무 말 없이 엎드려 계신다.

“남부끄럽다? 남부끄럼을 당하는 것보다도 자기 양심에 부끄러운 짓을 하는 것이 더욱 부끄러운 것이야.”

하시고 술 취하신 얼굴에 분기를 띠시고 또한 옆으로는 엎어져 일어나시지도 못하는 어머니를 다소간 가엾음과 미안한 마음이 생기시나 위신상 어찌 하시지 못하는 어색한 얼굴을 돌이켜 보지도 않으시고 문 바깥으로 나가신다.

나가시는 규칙 없는 발걸음 소리가 대문이 닫히는 소리와 함께 사라졌다.

할멈은 어머니를 붙잡아 일으키시며,

“다치지 않으셨어요?”

하며 어머니가 애처로와 보이기도 하고 또는 아버지의 술주정이 귀찮기도 하여서 상을 찌푸려 어머니를 들여다보시며 물어 본다.

나도 그때야 이불을 벗고 일어나서 어머니를 보았다. 어머니는 일어나 앉으시기는 앉았으나 아무 말이 없으셨다.

철모르는 나의 아우는 말라붙은 코딱지를 떼며 주먹으로 비비면서 힘없는 손가락을 꼼질꼼질하며 자고 있다. 나는 다만 어머니의 동정을 살피고 있었을 뿐이었다.

몇 분간 동안은 아주 고요 정적(靜寂)하여졌다. 폭풍우가 지나간 바다의 물결 같은 공기가 온 방안을 채우고 자는 듯이 고요하다.

그때에 나는 어머니의 머리카락이 덮힌 두 눈을 바라보았다. 두 눈에는 불에 비쳐 반짝거리는 눈물방울이 방울방울 떨어지고 있었다. 이것을 본 나의 전신의 뜨거운 피는 바늘끝으로 찌르는 듯이 파랗게 식는 듯하였다. 나의 마음은 어머니의 눈물에서 그 무슨 비애의 전염을 받은 듯이 극도로 쓰렸었다. 나는 그대로 어머니의 얼굴을 쳐다볼 수가 없어 이불을 뒤집어쓰고 어머니와 함께 눈물 흘려 울었다.

할멈은 화젓가락만 만지고 있는지 달가닥달가닥 하는 소리가 들릴 뿐이다. 그리고 어머니의 떨리는 숨소리와 코마시는 소리가 이불을 뒤집어쓴 나의 귀 위에서 연민과 비애의 정을 속삭여주었다.

어머니는 한참이나 우시더니 코를 요강에 푸시고 이불을 다시 붙잡아 나와 나의 동생을 다시 덮어주시었다. 그리고 한 손으로 나의 발치와 나의 가장자리를 어루만져주실 때 간지러운 자애의 정이 부드러운 명주옷같이 나의 어린가슴을 따뜻하게 하시었다.

이튿날 아침, 우리 어머니는 나의 동생의 손을 잡고 나와 함께 우리 외가로 향하여 떠나갔다. 물론 아침도 먹지 않고 늦도록 주무시는 아버지의 아침밥은 할멈에게 부탁이나 하셨는지 으례히 알아 할 할멈에게 집안일을 맡기시고 5리 남짓한 외가로 갔다.

가는 길에 나는 매우 기뻤었다. 무엇하러 가시는지도 모르는 어머니의 심정은 알지도 못하고 귀여워하시는 할머니를 만나러 간다는 것만 좋아서 앞장을 섰다.

그때의 어머니는 하소연 할 곳을 찾아가시는 것이었을 것이다. 팔자의 애소(哀訴)를 자기의 친부모에게 하러 가시는 것이었을 것이다. 일생을 의탁할 우리 아버지를 사랑하지 않는 것이 아니며 못 믿는 것이 아니지마는 발 아래 엎드려 몸부림할 만큼 자기의 울분과 자기의 비애를 호소할 곳을 찾아 지금 우리 어머니는 우리 외가로 가시는 것이다.

그때 그에게는 자기의 부모가 유일한 하느님이며 위안자이었다. 약한 심정을 붙일 만한 신앙을 갖지 못한 우리 어머니는 자애의 나라로 달음박질하면 거기에 자기를 위로하여주고 자기의 애소의 기도를 들어줄 아버지 어머니가 계실 것을 믿음이었었다. 명명한 대공과 막막한 천애 저편에 위안(慰安) 나라를 건설치 못하고 작은 가슴속과 보이지 않는 심상 위에 천당과 낙원을 걷지 못한 우리 어머니는 다만 자애의 동산을 찾아가시었다.

걸어가시는 어머니의 얼굴에는 어제 저녁의 울분을 참지 못하시는 푸른 표정과 어머니나 아버지에게 팔자 한탄을 푸념하리라는 굳은 결심의 빛이 보였었다.

가게 앞을 지나고 개천을 건너고 사람과 길을 피하고 돌멩이가 발끝에 채일 때에도 우리 어머니의 머릿속에는 그것뿐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어머니의 머리는 그렇게 단순한 것이 아니었다. 나어린 어린아이의 그 마음을 갖지는 않았었다. 우리를 볼 때 우리 아버지를 생각하여 부모의 자애를 생각할 때에도 자기의 충심에서 발동하는 애모의 정을 깨달았다.

그는 자기의 남편을 사랑하는 동시에 자기의 부모를 사랑하였다. 그는 자기 남편의 불명예를 자기 부모에게 하소연하는 것을 아까 집 대문을 나설 때까지는 결심하였는지는 알지 못하겠으나 반이나 넘어 가까이 자기 부모 집을 왔을 때에 그것을 부끄리는 정이 나오는 동시에 또한 그 불명예로운 소리를 발하는 아내 된 자기의 불명예로움을 알았다. 그리고 자기 남편의 불명예를 은폐하려는 동시에 자기 부모의 심로를 생각하였다. 자애를 부어주는 자기 부모에게 자기의 울분을 애소하는 것이 자기에게는 좋은 것이나 자기 부모의 마음을 조심되게 함을 깨달았다.

나의 동생은 아슬렁아슬렁 걸어가면서 무어라고 감흥에 띤 이야기를 중얼거리면서 걸어간다.

어머니는 외가에 거의 다 왔었을 때에 나에게 은근한 목소리로,

“너 할머니와 할아버지께 어제 저녁에 아버지가 술 먹고 야단했다는 말은 하지 말어라.”

하시며 무슨 응답이나 들으려시는 듯이 나를 들여다보신다. 나는,

“네.”

하였다. 그 <네> 소리가 나의 입에서 떨어지면서 무슨 해결치 못할 문제가 다 풀린 듯한 감이 생기며 집에서 나올 때부터 무슨 불행스럽고 불안하던 마음이 다시 화평하여졌다.

<192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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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

  1. 직지 주: 옹송그리다 – 춥거나 두려워 몸을 궁상맞게 몹시 옹그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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