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잇지 안는 행복

나를 잇지 안는 행복(幸福) – 제전입선후감상(帝展入選後感想)

라혜석(羅蕙錫)

우리는 누구든지 팔자 좃케 다시 말하면 행복스럽게 살기를 원하고 바란다. 또 그대로 하기를 원한다.

뒤에 산을 끼고 압헤 물이 흘너 봄철에 꾀골이 소래며 여름날에 비 소리로 공기 좃코 경치 조흔 2, 3층 양옥 가온대서 금의포식(錦衣胞食)으로 남녀 노복(奴僕)이 즐비하고 자손이 번창한 부호가의 주부가 되면 이야말노 더 말할 수 업는 소위 행복을 가진 사람이라 할 것이다.

이와 갓치 평온무사한 것을 우리 행복의 초점을 삼는다면 행복은 확실히 우리 생활을 고정식히난 것이요 활기 업게 만드는 것이며 게으르게 만드난 것이요 우리로 하여곰 퇴보자요 낙오자가 되게 하난 것이다.

우리 중에 한 사람도 자기를 잇고 사는 사람은 업슬 것이다. 그럼으로 우리는 잘 먹고 잘 입고 편안히 살여고 하난 것이다. 그러나 우리 조선여자는 확실히 녜붓터 오늘까지 나를 잇고 살아왓다. 아모 한가지도 그 스스로 노력해 본 일이 업섯고 스스로 구해 본 일이 업섯스며 그 혼자 번민해 본 일이 업섯고 제것으로 어든 것이 아모것도 업섯다. 가이 업다. 나를 잇고 사는 것, 이것이야 말노 처량한 일이 안인가.

왜 우리는 자기 내심에 숨어잇는 무한한 능력을 자각 못해섯고 그 능력의 발현을 시험하여 보려들지 안이하엿든고!

세상에는 평범한 가운대서 자기만은 무슨 장래의 보증할 것이 틈틈히 잇는 것 갓치 안심하고 잇는 자가 만흐니 더욱이 우리 여자 중에 만흔 사실이다.

보라. 얼마나 귀중히 역이고 보호하든 생명 좃차 하로아참 하로밤에 끈허지지를 안는가! 철석 갓치 맹서한 연인 동지의 마음이 변하지 안는가. 최고 행복도 아모럿치도 안코 업서지고 마는 것이 안인가. 연인에게 뜨거운 사랑을 밧고 벗에게 깁흔 미듬을 엇는다 해도 상당한 시기가 지나면 실증이 나고 변하는 것이다. 그 뜻이 길이 잇지 못할 것을 미리 짐작하여야 한다. 웨 그려냐 하면 만일에 그 행복을 일허바리는 때는 오직 무능자가 될 것이요. 실망자로 자처할 수 밧게 업슬 터이닛까.

그리하야 이 한때에 행복을 빼앗길 때 마다 어느 때든지 우리의 더할 수 업는 일거리 되는 역시 자기를 닛지 말고 살아가랴난 목표를 정하난 여하에 잇는 것일다. 즉 무의식하게 자기를 잇고 살아온 가온대서 유의식하게 자기를 잇지 안코 살아가는 데 잇다고 생각한다. 다시 말하면 우리의 가장 무서워 하는 불행이 언제든지 내습(來襲)할지라도 염려업시 바더넘길수 잇슬것이다. 거기에 아모러한 고통이 잇슬지라도 그 고통 중에서 일신일변(一新一變)할 지언정. 결코 패배을 당할 이치는 만무하다. 즉 외형의 여하한 행복을 밧든지 또는 외형의 여하한 행복을 일허바리든지 행복의 샘[泉] 내맘 하나를 잇지 말자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든지 힘을 가지고 잇다. 그 힘을 사람은 어느 시기에 가서 자각한다. 아모라도 한번이나 두 번은 다-자기함을 자각한다. 그것을 밧는 사람은 즉 자기를 잇지 안는 행복을 늣기는 자다. 또 사람은 자기 내심에 자기도 모르는 정말 자기가 잇는 것이다. 그(보이지 안논 자기)를 차저 내는 것이 곳 자긔를 잇지 안은 것이 된다. 요컨대 우리들의 현재 밋 미래의 생활목표의 신앙과 밋 행복은 오직 자기를 잇지 안코 살어가는 수 밧게 아모것도 우리의 맘을 깃브게 해줄 것이 업슬 것이다. 이것이 자기 내(內) 생활의 전개를 자기가 보장하랴는 것인이 만치 지실(摯實)할 것이다.

그리하야 우리들의 할 일은 이 현실을 바로 보는 대 잇고 미래의 생활의 싹을 붓도다 길느난 대 잇는 것일다. 이러한 것슬 생각하더래도 잠시래도 방심하야 자기를 잇고 엇지 살 수 잇스랴.

하로 뒤 1년 뒤 지나는 순간마다는 후회의 연속이엿다. 그러나 그것이 하나가 된 큰 과거는 얼마나 늣김 잇는 과거인가. 또 그중에 매듸매듸를 멀니 잇서 도라다 보니 얼마나 즐거웟든 때이엿섯다. 우리는 언제든지 우리 압헤 빗최이는 현재의 환희로 살지 못함을 곳 갓가온 과거를 현재로 맨드는 까닭이엿다. 그럼으로 기 실(其 實)은 현재는 업서지고 만 것이다. 지나고 보니 이갓치 안전한 대로(大路)를 밟아온 것을 그리하야 기 중도(其 中道)에난 내게 업서서는 아니될 것이다. 구비해 잇고 그뿐 안이라 그때그때 전개해주는 생활이 다- 나를 깃브게 맨든 것이오 다- 나를 진보식힌 것이엇다. 그런대 웨 그때그때 과거에 잇서서는 그다지 길이 좁엇든고!

이번에 출품을 2점 하엿다. 금강산(金剛山) 삼선암(三仙巖)과 정원(庭園)이엿다. 전자(前者) 50호가 떠러지고 후자(後者) 20호가 입선되엿다. 후자는 임의 선전(鮮展)에서 특선으로 입선된 것이어서 별로 신통치 안을넌지 몰으나 나는 이 작품을 지금까지의 작품 중에 중요하게 생각한 것임으로 일본(日本) 화계(畵系)에서 소호(少毫)라도 평을 엇게 되면 행(幸)일가 함이다. 즉 구미(歐米)에서 본 화단(畵壇)의 요령이며 자기 심령 상에도 최고 행복한 때이엇고 겸하야 그림에 대한 힌트를 엇게 된 작품임으로 일부러 출품해 본 것이다. 이 작품에 대한 평에 의하야 압길을 정해 볼가 함니다. 이제까지 집안 살님사리 가온대서 겨오 끄러 나오든 그림이라 남들이 아는 이상 무실력한 것을 붓그러워 하는 바이다. 업는 재조가 보일가 하고 다시 동경(東京)길을 밟은 것이다.

 

1931.10.15어(於) 동경(東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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