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천리 제 6권, 7호 (1934.6.1)
- 나혜석(羅蕙錫)
본문
나를 극도로 위해주는 고마운 친구의 집 근처.
돈 이원을 주고 토방을 엇엇다. 빈대가 물고 베룩이 뜻고 모긔가 갈킨다.
어둑컴컴한 이방이 나는 실혓다.
그러나 시언하고 조용한 이방이야말로 나의 천당이 될 줄이야.
사람업고 변함업는 산중생활이야말로 실증 나기 쉽다.
그러나 나는 임의 삼 년째 이런 생활에 단련을 밧아왓다.
그리하야 내 긔분을 순환 식히기에는 넉넉한 수양이 잇다.
나무 몃헤 자리를 깔고 두러누어 책보기 울가에 평상을 노코 거긔 발을 당그고 안저 공상하기.
때로는 물이 뛰여 들어 후염지기 바위우에 누어 낫잠자기 풀 속으로 다니며 노래도 부르고 가경을 따라가 스켓취도 하고 주인 딸 동리처녀(洞里處女)를 따라 버섯도 따라가고 주인(主人)마누라 따러 콩도 꺽그러 가고 동자(童子) 압세고 참외도 사러가고 어칠넝 어칠넝 편지도 부치러 가고 놉흔 벼개 베고 소설(小說)도 읽고 전문잡지(雜誌)도 보고 뜻뜻한 방에 배를 깔고 업듸려 원고도 쓰고 촛불아래 편지도 쓰고 때로는 담배 피여물고 희망도 그러보고 달 밝거나 캄캄한 밤이거나 잠 아니올 때 과거도 희상(回想)하고 현재(現在)도 생각하고 미래도 게획한다.
고적이 슬프다고
아니다 고적은 자미잇는 것이다
말벗이 아쉽다고
아니다 자연(自然)과 말할 수 잇다.
이러케 나는 평은무사(平隱無事)하고 유화(柔和)한 성격(性格)으로 변(變)할 수 잇섯다.
그러기에 촌(村)사람들은 내가 사람 조타고 저녁 먹은 후는 어린것을 업고 웅긔중긔 내 방문 압헤 모혀들고 주인(主人)마누라는 옥수수며 감자며 수수이삭이며 머루며 버섯을 주어서 굼의굼의 끼여 먹이려고 애를 쓰고 일하다가 한참식 내방에와 드러누어 수수꺽기를 하고 허허 웃고 나간다.
여긔말하야 둘 것은 삼 년째 이런 생활(生活)을 해본 경험상 녀자 홀로 남의 집에 드러 상당이 존경을 밧고 한 달이나 두 달이나 지내기가 욥이한 일이 아니다. 더구나 임자업는 독신녀자라고 손문도 듯고 개암이 하나도 드러다보난 사람업는 점도 늙도 안은 독신녀자의 기신(寄身)이랴.
위선(爲先) 신용(信用)잇는 것은 남자(男子)의 방문(訪問)이 업시 늘 혼자 잇는 것이오. 둘재로는 낫잠 한번 아니 자고 늘 쓰거나 그리거나 읽는 일을 함이오. 셋재로 딸의 머리도 빗겨주고 아들의 코도 씩겨주고 마루걸네질도 치고 마당도 쓸고 때로난 돈푼주어 엿도 사먹게 하고 쌀도 팔어 오라하야 떡도 해먹고 다림질도 붓잡어 주고 빨내도 갓치하야 어대까지 평등태도(態度)요 교가 업는 까닭이다. 그럼으로 그들은 때때로
「가시면 섭섭해 엇더케 하나」
하는 말은 아모 꿈임업는 진정의 말이다. 재작년에 외금강 만산정에서 떠날 때도 주인(主人)마누라가 눈물을 흘니며 내년에 또 오시고 가시거든 편지하서요 하엿스며 작년에 총석정 어천(漁村)에서 떠날 때도 주인(主人)딸이 울고 쫏차 나오며
「아지미 가는대 나도 가겟다」
고 하엿고 금년 여기서도
「겨을방학에 또 오서요」
간절히 말한다.
오면 누가 반가워하며 가면 뉘가 섭섭해하리하고 한숨을 짓다가도 여름마다 당하는 진정한 애정을 맛볼 때마다 그것이 내생에 무슨 상관(相關)이 잇스랴 하면서도 공연(空然)히 깁부고 만족(滿足)을 늣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