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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ents
지은이
이상
출전
매일신보 , 1937.4.15~5.15
책 표지
?
본문
서 장
생활, 내가 이미 오래 전부터 생활을 갖지못한 것을 나는 잘 안다. 단편적으로 나를 찾아오는 「생활 비슷한 것」도 오직 「고통」이란 요괴뿐이다. 아무리 찾아도 이것을 알아 줄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무슨 방법으로든지 생활력을 회복하려 꿈꾸는 때도 없지는 않다. 그것 때문에 나는 입때 자살을 안하고 대기(待機)의 열 자세를 취하고 있는 것이다. – 이렇게 나는 말하고 싶다만.
제2차의 객혈이 있은 후 나는 어슴푸레하게나마 내 수명에 대한 개념을 파악하였다고 스스로 믿고 있다.
그러나 그 이튿날 나는 작은어머니와 말다툼을 하고 맥 백이십오의 팔을 안은 채, 나의 물욕(物慾)을 부끄럽다 하였다. 나는 목을 놓고 울었다. 어린애 같이 울었다.
남 보기에 퍽이나 추악했을 것이다. 그리다 나는 내가 왜 우는가를 깨닫고 곧 울음을 그쳤다.
나는 근래의 내 심경을 정직하게 말하려 하지 않는다. 말할 수 없다. 만신창이의 나이언만 약간의 귀족취미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약 남 듣기 좋게 말하자면 나는 절대로 내 자신을 경멸하지 않고 그 대신 부끄럽게 생각하리라는 그러한 심리로 이동하였다고 할 수는 있다. 적어도 그것에 가까운 것만은 사실이다.
불행한 계승
사월로 들어서면서는 나는 얼마간 기동할 정신이 났다.
나는 물론 이래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작은어머니 얼굴을 암만 봐도 미워할 데가 어디 있느냐. 넓은 이마, 고른 치아의 열, 알맞은 코, 그리고 작은아버지만 살아 계시면 아직도 얼마든지 연연한 애정의 색을 띠울 수 있는 총기가 있는 눈하며 다 내가 좋아하는 부분 부분인데 어째 그런지 그런 좋은 부분들이 종합된 「작은어머니」라는 인상이 나로 하여금 증오의 염을 일으키게 한다.
물론 이래서는 못쓴다. 이것은 분명히 내 병이다. 오래 오래 사람을 싫어하는 버릇이 살피고 살펴서 후 급기야에 이 모양이 되고 만 것임에 틀림없다. 그렇다고 내 육친까지를 미워하기 시작하다가는 나는 참 이 세상에 의지할 곳이 도무지 없어지는 것이 아니냐. 참 안됐다.
이런 공연한 망상들이 벌써 나을 수도 있었을 내 병을 자꾸 덧들리게 하는 것일 것이다. 나는 마름을 조용히 또 순하게 먹어야 할 것이라고 여러번 괴로워하는데 그렇게 괴로워하는 것은 도리혀 또 겹겹이 짐되는 것도 같아서 나는 차라리 방심상태를 꾸미고 방 안에서는 천정만 쳐다보거나 나오면 허공만 쳐다보거나 하제도 역시 나를 싸고 도는 온갖것에 대한 증오의 염(念)이 무럭무럭 구름 일 듯 하는 것을 영 막을 길이 없다.
비가 두 어번 왔다.싹이 트려나 보다. 내려다보는 지면이 갈수록 심상치 않다. 바람이 없이 조용한 날은 툇마루에 드는 볕을 가만히 잡기만 하면 퍽 따뜻하다. 이렇게 따뜻한 볕을 쪼이면서 이렇게 혼곤한데 하필 사람만을 미워해야 되는 까닭이 무엇이냐.
사람이 나를 싫어할 성싶은데 나도 내가 싫다. 이렇게 저를 사랑할 줄도 모르는 인간이 남을 위할 줄 알 수 있으랴. 없다. 그러면 나는 참 불행하구나.
이런 망상을 시작하면 정말이지 한이 없다. 그러니까 나는 힘이 들고 힘이 드는 것이 싫어도 움직여야 한다. 나는 헌 구두짝을 끌고 마당으로 나가서 담 한 모퉁이를 의지해서 꾸며놓은 닭의 집 가까이 가 본다.
혹 나는 마음으로 작은어머니에게 사과하려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또 이것은 왜 그러나 – 작은어머니는 나를 보더니 얼른 안으로 들어가 버린다. 저러기 때문에 안된다는 것이다. 닭의 집 높이가 내 턱 좀 못미쳤기 때문에 나는 거기 가로 질린 나무에 턱을 받히고 닭의 집속을 내려다보고 있자니까 내음새도 어지간한데 제일 그 수닭이 딱해 죽겠다. 공연히 성이 대밑둥까지 나서 모가지 털을 벌컥 일으켜 세워 가지고는 숨이 헐레벌떡 헐레벌떡 야단 법석이다. 제딴은 그 가운데 막힌 철망을 뚫고 이쪽 암탉들 있는 데로 가고 싶어서 그리는 모양인데 사람 같으면 그만하면 못 넘어갈 줄 알고 그만둠직 하건만 이놈은 참 성벽이 대단하다.
가끔 철망 무너진 구멍에 무작정하고 목을 틀어 박았다가 잘 나오지 않아서 눈을 감고 끽끽 소리를 지르다가 가까스로 빠져 나가는 걸 보고 저놈이 그만 하면 단념하였다 하고 있으면 그래도 여전히 야단이다. 나는 그만 그놈의 끈기에 진력이 나서 못생긴 놈, 미련한 놈, 못생긴 놈, 미련한 놈, 하고 혼자서 화를 벌컥 내어 보다가도 또 그놈의 그런 미칠 것 같은 정열이 다시 없이 부럽기도 하고 존경해야 할 것같이 생각키기도 해서 자세히 본다.
그런데 암탉들은 어떠냐 하면 영 본숭만숭이다. 모-른 체하고 그저 모이 주워 먹기에만 열중이다. 아하 저러니까 수탉이란 놈이 화가 더 날 밖에 하고 나는 그 새침데기 암탉들을 안타깝게 생각한 것이다. 좀 가끔 수탉 쪽을 한두 번쯤 건너다가도 보아 주지 원 – 하고 나도 실없이 화가 난다. 수닭은 여전히 모이 주워 먹을 생각도 하지 않고 뒤법석을 치는데 좀처럼 허기도지지 않는다.
이러다가 나는 저 수탉이 대체 요 세 마리 암탉 중의 어떤 놈을 노리는 것인가 살펴보기로 하였다. 물론 수탉이란 놈의 변두가 하도 두리번거리니까 그놈의 시선만 가지고는 알아채리기가 어렵다. 그래서 나는 보통사람 남자가 여자 보는 그런 눈으로 한 번 보아야겠다.
얼른 보기에 사람의 눈으로는 짐승의 얼굴을 사람이 아무개 아무개 하듯 구별하기는 어려운 것 같이 보이는데 또 그렇지도 않다. 자세히 보면 저마다 특징다운 특징이 있고 성미도 제각기 다르다. 요 암탉 세 마리도 기뻐하여서 얼른 보기에는 고놈이 고놈 같고 하더니 얼마만큼이나 들여다 보니까 모두 참 다르다.
키가 작달막하고, 눈앞이 검고, 털이 군데 군데 빠지고 흙투성이의 그 중 더러운 암탉 한 마리가 내 눈에 띄었다. 새침한 중에도 새침한 품이 풋고추같이 맵겠다. 그렇게 보니 그럴 성도 싶은 게 모이를 먹다가는 때대로 흘깃 흘깃 음분(淫奔)한 계집같이 곁눈질을 곧잘 한다. 금방 달려들어 모래라도 한줌 껴얹어 주었으면 하는 공연한 충동을 느끼나 그러나 허리를 굽히기가 싫다. 속 모르는 수탉은 수선도 피이는 구나.
아무 것도 생각 않는 게 상수다. 닭들의 생활에도 그런 개륵한 분쟁이 있으니 하물며 사람의 탈을 쓴 나에게 수없는 번거로움이 어찌 없으랴. 가엾은 수탉에 내 자신을 비겨 보고 비겨 보고 나는 다시 헌 구두짝을 질질 끈다. 바람이 없어서 퍽 따뜻하다. 싹이 트려나 보다.
얼굴이 이렇게까지 창백한 것이 웬일일까 하고 내가 번민해서 – 내 황막한 의학지식이 그예 진단하였다. – 회충 – 그렇지만 이 진단에는 심원한 유서가 있다. 회충이 아니면 십이지장충 – 십이지장충이 아니면 조충 – 이러리라는 것이다.
회충약을 써서 안 들으면, 십이지장충약을 쓰고, 십이지장충약을 써서 안들으면 조충약을 쓰고, 조충약을 써서 안 들으면 그 다음은 아직 연구해 보지 않았다.
어떤 몹시 불쾌한 하루를 선택하여 위선 회충약을 돈복하였다.
안다. 두 끼를 절식해야 한다는 것도, 복약 후에 반드시 혼도한다는 것도…
대낮이다. 이부자리를 펴고 그 속으로 움푹 들어가서 너부죽이 누워서, 이래도? 하고 그 혼도라는 것이 오기를 기다렸다.
기다리는 마음이 늘 초조한 법, 귀로 위 속이 버글버글하는 소리를 알아 듣고 눈으로 방 네 귀가 정말 뒤퉁그러지려나 보고, 옆구리만 좀 근질근질해도 아하 요게 혼도라는 놈인가보다 하고 긴장한다.
그랬건만 딱한 일은 끝끝내 내가 혼도않고 그만두었다는 것이다.
세 시를 쳐도 역시 그턱이다. 나는 그만 흥분했다. 혼도커녕은 정신이 말똥말똥하단말이다. 이럴 이너가 없는데.
그렇다고 금방 십이지장충약무을 써 보기도 싫다. 내 진단이 너무나 허황한데 스스로 놀래이고 또 그 약을 구해야 할 노력이 아깝고 귀찮다.
구름 파듯 뭉게뭉게 불쾌한 감정이 솟아 오른다. 이러다가는 저녁 지으시는 작은어머니와 또 싸우겠군 – 얼마 후에 나는 히죽 히죽 자도 안 쓰고 거리로 나섰다.
막 다방에를 들어서니까 수군(壽君)이 마침 문깐을 나서면서 손바닥을 보인다.
「쉬 – 자네 마누라 와 있네」
나는 정신이 번쩍 났다.
「얘 요것 봐라」
하고 무작정 그리 들어서려는 것을 수군이 아예 말리는 것이다.
「만좌지중에서 망신 톡톡이 당할 테니 염체 어델」
「그런가 – 」
입맛을 쩍 쩍 다시면서 발길을 돌리기는 돌렸으나 먼발치서라도 어디 좀 보고 싶었다.
솜옷을 입고 아내가 나갔거늘 이제 철은 홋것을 입어야 하니 넉 달지간이나 되나보다.
나를 배반한 계집이다. 삼년 동안 끔찍이도 사랑하였던 끝장이다. 따귀도 한 개 갈겨주고 싶다. 호령도 좀 하여 주고 싶다. 그러나 여기는 몰려드는 사람이 하나도 내 얼굴을 모르는 사람이 없는 다방이다. 장히 모양도 사나우리라.
「자네 만나면 헐 말이 곡 한 마디 있다네」
「어쩌라누」
「사생결단을 허겠대네」
「어이쿠」
나는 몹시 놀래어 보이고 「레이몬드·하튼」같이 빙글 빙글 웃었다. 「아내 – 마누라」라는 말이 낮잠과도 같이 옆구리를 간지른다. 그 「이미지」는 벌써 먼 바다를 건너간다. 이미 파도소리까지 들리지 않았느냐. 이러한 환상 속에 떠오르는 내 자신은 언제든지 광채나는 「루파슈카」를 입었고 퇴폐적으로 보인다. 소년과 같이 창백하고 무시무시한 풍모이다. 어떤 때는 울기도 했다. 어떤 때는 어덴지 모르는 먼 나라의 십자로를 걸었다.
수군에게 끌려 한강으로 나갔다. 목선을 하나 빌어 맥주도 싣고 상류로 거슬러 동작리 갯가에다 대어놓고 목노 찾아 취토록 먹었다. 황혼에 수평은 시야와 어우러져서 아물아물 허공에 놓인 비조처럼 이 허망한 슬픔을 참 어디다 의지해야 떽葁을지 비철거리지 않을 수 없었다.
「응 – 넉달이 지나서 인제? 네가 내게 헐 말은 뭐냐? 애 더리고 더리다」
「이건 왜 벤벤치 못하게 이러는 거야」
「아-니, 아-니, 일테면 그렇다 그말이지, 고론 앙큼스럼 놈의 계집이 또 있을 수가 있나」
「글세 관 둬 관 둬」
「관 두긴 허겠지만 이채피 말을 허자구 자연 말이 이렇게쯤 나가지 않겠느냐 그런 말이야」
「이렇게 못생긴 건 내 보길 처엄 보겠네 원!」
「기집이란 놈의 물건이 아무리 독헌 물건이기루 고렇게 싹 칼루 어인 듯이 돌아설 수가 있나 고」
우리들은 술이 살렸다. 나야말로 술 없이 사는 도리가 없었다.
노들서 또 먹었다. 전후불각으로 취하여 의식을 완전히 잃어버려야겠어서 그랬다.
넉 달 – 장부답지 못하게 뒤끓던 마음이 그만하고 차츰 차츰 가라 앉기 시작하려는 이 철에 뭐냐 부전 붙은 편지모양으로 때와 손자죽이 잔뜩 묻은 채 돌아오다니,
「요 얌체두 없는 것아 요 요 요」
나는 힘껏 고성질타로 제 자신을 조소하건만도 이와 따로 밑둥치운 대목 기울 듯 자분참 기우는 이 어리석지 않고 들을 소리도 없는 마음을 주체하는 방법이 없는 것이었다.
넉 달 – 이 동안이 결코 짧지가 않다. 한 사람의 아내가 남편을 배반하고 집을 나가 넉달을 잠잠하였다면 아내는 그예 용서 받을 자격이 없는 것이요 남편은 꿀꺽 참아서라도 용서하여서는 안된다.
「이 천하의 공규(公規)를 너는 어쩌려느냐」
와서 그야말로 단죄를 달게 받아 보려는 것일까.
어떤 점을 붙잡아 한 여인을 믿어야 옳을 것인가. 나는 대체 종잡을 수가 없어졌다.
하나같이 내 눈에 비치는 여인이라는 것이 그저 끝없이 경조부박(輕燼浮薄)한 음란한 요물에 지나지 않는 것이 없다.
생물이 이렇다는 의의를 훌떡 잃어버린 나는 환신이나 무엇이 다르랴. 산다는 것은 내게 따는 필요 이상의 「야유」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은 무슨 한 여인에게 배반당하였다는 고만 이유로 해서 그렇다는 것 아니라 사물의 어떤 「포인트」로 이 믿음이라는 역학의 지점을 삼아야겠느냐는 것이 전혀 캄캄하여졌다는 것이다.
「믿다니 어떻게 믿으라는 것인구」
함부로 얘 제 침을 퇴 퇴 배앝으면서 보조는 자못 어지럽고 비창한 것이었다. 술을 한 모금이라도 마시고 나면 약속 빨리 내 심경에 아첨하는 이 전신의 신경은 번번이 대담하게도 천변지이( 千變地異)가 이 일신에 벼락치기를 바라고 바라고 하는 것이었다.
「경칠 화물자동차에나 질컥 치여 죽어버리지 그랬으면 이렇게 후덥지근헌 생활을 면허기라두 허지」
하고 주착 없이 중얼거려 본다. 그러나 짜장 화물자동차가 탁 앞으로 닥칠 적이면 뎅급을 해서 피하는 재주가 세상의 어떤 사람보다도 능히 빠르다고는 못해도 비슷했다. 그럴 적이면 혀를 쑥 내밀어 제 자신을 조롱하였읍네 하고 제 자신을 속여 버릇하였다.
이런 넉 달 –
이런 넉달이 지나고 어리석은 꿈을 그럭저럭 어리석은 꿈으로 돌릴줄 알만한 시기에 아내는 꿈을 거칠은 걸음걸이로 역행하여 여기 폭군(暴君)의 인상으로 나타난 것이다.
나는 어떻게 해야 하나? 거암(巨岩)과 같은 불안이 공기와 호흡의 중압이 되어 덤벼든다. 나는 야행열차와 같이 자야 옳을는지도 모른다.
추악한 화물
그예 찾아내고 말았다.
나는 안을 들여다보았다. 풀칠한 현관 유리창에 거무테테한 내 얼굴의 「하이라이트」가 비칠 뿐이다. 물론 아무것도 보이지는 않았다.
나는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만다. 내 바로 옆에서 한 마리의 개가 흙을 파고 있다. 드러누웠다. 혀를 내민다. 혀가 기葁발같이 굽이치는 게 퍽 고단해 보였다.
— 온돌방 한간과 「이첩간(二疊間)」
이렇단다. 굳게 못질을 하여 놓았다. 분주하게 드나드는 쥐새끼들은 이 집에 관해서 아무것도 나에게 전하지 않는다.
안면근육이 별안간 바작바작 오그라드는 것 같다. 살이 내리나보다. 사람은 이렇게 하루에도 몇 번식 살이 내리고 오르고 하나보다.
— 날라와야겠다. 그 오물투성이의 대화물( 大貨物)을!
절이나 하는 듯이 「대가(大家)」라 써 붙인 목패(木牌) 옆에 조그마한 명함 한 장이 꽂혀 있다. 한(韓)XX, 전등료( 電燈料)는 XX정XX번지로 받으러 오시오(거짓말 말어라) 이 한XX란 사나이도 오물투성이의 대화물을 질질 끌고 이리저리 방황했을 것이어늘 — XX정이 어디쯤인가!
(거짓말 말어라)
왜 사람들은 이삿짐이란 대화물을 운반해야 할 구차기구한 책임을 가졌나.
나는 집 뒤로 돌아가 보려 했다. 그러나 길은 곧장 온돌방까지 뚫인 모양이다. 반간도 못되는 컴컴한 부엌이 변소와 마주 붙었다. 나는 기가 막혔다. 거기도 못이 굳게 박혀 있다. 나는 기가 막혔다.
성격파산 무엇 때문에? 나의 교식(敎食)은 아늬 생애와 다름 없이 되었다. 헌 누더기 수염도 길렀다. 거리. 땅.
한 번도 아내가 나를 사랑 않는 줄 생각해 본 일조차 없다. 나는 어느틈에 고상한 국화 모양으로 금시에 쑤세미가 되고 말았다. 아내는 나를 버렸다. 아내를 찾을 길이 없다.
나는 아내의 구두 속을 들여다 본다. 공복(空腹) – 절망적 공허가 나를 조롱하는 것 같다. 숨이 가빴다.
그 다음에 무엇이 왔나.
적빈(赤貧) – 중요한 오물들은 집안 사람들이 하나, 둘, 집어 내었다. 특히 더러운 상품가치 없는 오물만이 병균같이 남아 있었다.
하룻날, 탕아(蕩兒)는 이 처참한 현상을 내 집이라 생각하고 돌아와 보았다. 뜰 앞에 화초만이 향기롭게 피어 있다. 붉은 열매가 열린 것도 있었다. 그러나 가족들은 여지없이 변형되고 말았고, 기성(奇聲)을 발하여 욕지거리다.
종시 나는 암말 없었다.
이미 만사가 끝났기 때문이다. 나는 혼자서 손바닥만한 마당에 내려서서 주위를 둘러본다. 내 손때가 안 묻은 물건은 하나도 없다.
나는 책을 태워 버렸다. 산적했던 서신을 태워버렸다. 그리고 나머지 나의 기념을 태워버렸다.
가족들은 나의 아내에 관해서 나에게 질문하거나 하지는 않는다. 나도 말하지 않는다.
밤이면 나는 유령과 같이 흥분하여 거리를 魰었다. 나는 목표를 갖지 않았다. 공복만이 나를 지휘할 수 있었다. 성격의 파편 – 그런 것을 나는 꿈에도 돌아보려 않는다. 공허에서 공허로 말과 같이 나는 광분하여다. 술이 시작되었다. 술은 내 몸 속에서 향수같이 빛났다.
바른팔이 왼팔을, 왼팔이 바른팔을 가혹하게 매질했다. 날개가 부러지고 파랗게 멍들은 흔적이 남았다.
몹시 피곤하다. 아방궁을 준대도 움직이기 싫다. 이 집으로 정해 버려야 겠다.
— 빨리 운반해야 한다. 그 악귀가 가득한 육신들을 피를 토하는 내가 헌 구루마 위에 걸레짝같이 실어 가지고 운반해야 한다.
노동이다. 나에게는 생각할 여유조차 없었다.
불행의 실천
나는 닭도 보았다. 또 개도 보았다. 또 소 이야기도 들었다. 또 외국서 섬그림도 보았다. 그러나 나는 너이들에게 이 행운의 열쇠를 빌려 주려고는 않는다. 내가 아니면 – 보아라 좀 오래 걸龶느냐 – 이런 것을 만들어 놓을 수는 없다.
책상 다리를 하고 앉은 채 그냥 앉아 있기만 하는 것으로 어떻게 이렇게 힘이 드는지 모른다. 벽은 육중한데 외풍은 되이고 천정은 여름 자처럼 이 방의 감춘 것을 뚜껑 젖히고 고자길하겠다는 듯이 선뜻하다. 장판은 뼈가 제리게 하지 않으면 안절부절을 못하게 달른다. 반닫이에 바른 색종이는 눈으로 보는 폭탄이다.
그저께는 그끄저께보다 여위고 어저께는 그저께보다 여위고 오늘은 어저께보다 여위고 내일은 오늘보다 여윌 터이고 – 나는 그럼 마지막에는 보숭보숭한 해골이 되고 말 것이다.
이 불쌍한 동물들에게 무슨 방법으로 죽을 먹이나. 나는 방탕한 장판위에 넘어져서 한없는 「죄」를 섬겼다(종사從事). 「죄」 – 나는 시냇물 소리에서 가을을 들었다. 마개 뽑힌 가슴에 담을 무엇을 나는 찾았다. 그리고 스스로 달래었다. 가만 있으라고, 가만 있으라고 –
그러나 드디어 참다 못하여 가을비가 소조하게 내리는 어느날 나는 화덕을 팔아서 남비를 사고, 남비를 팔아서 풍로를 사고, 냉장고를 팔아서 식칼을 사고, 유리그릇을 팔아서 사기그릇을 샀다.
처음으로 먹는 따뜻한 저녁 밥상을 낯설은 sp 조각의 벽이 에워쌌다. 육원 – 육원어치를 완전히 다 살기 위하여 나는 방바닥에서 섣불리 일어서거나 하지는 않았다. 언제든지 가구와 같이 주저앉았거나 서까래처럼 드러누웠거나 하였다. 식을까봐 연거푸 군불을 때웠고, 구들을 어디 흠씬 얼궈 보려고 중양(重陽)이 지난 철에 사날식 검부레기 하나 아궁지에 넣었다.
나는 나의 친구들의 머리에서 나의 번지수를 지워 버렸다. 아니 나의 복장까지도 말갛게 지웠 버렸다. 은근히 먹는 나의 조석이 게으르게 나는 육신에 만연(蔓延)하였다. 나의 영양의 찌꺼기가 나의 피부에 지저분한 수염을 낳았다. 나는 나의 독서를 뾰족하게 접어서 종이비행기를 만든 다음 어린아이와 같이 나의 자기(自棄)를 태워서 죄다 날려 버렸다.
아무도 오지 말아 안 드릴 터이다. 내 이름을 부르지 말라. 칠면조처럼 심술을 내이기 쉬웁다. 나는 이 속에서 전부를 살라 버릴 작정이다. 이 속에서는 아픈 것도 거북한 것도 동에 닿지 않는 것도 아무것도 없다. 그냥 쏟아지는 것 같은 기쁨이 즐거워할 뿐이다. 내 맨발이 값비싼 향수에 질컥질컥 젖었다.
한 달 – 맹렬한 절뚝발이의 세월 – 그 동안에 나는 나의 성격의 서막을 닫아 버렸다.
두 달 – 발이 맞아 들어 왔다.
호흡은 깨끼저고리처럼 찰싹 안팎이 달라 붙었다. 탄도(彈道)를 잃지 않은 질풍이 가리키는대로 곧잘 가는 황금과 같은 절정의 세월이었다. 그동안에 나는 나의 성격을 서랍 같은 그릇에다 담아 버렸다. 성격은 간데온데가 없어졌다.
석 달 – 그러나 겨울이 왔다. 그러나 장판이 카스테라 빛으로 타들어왔다. 얄팍한 요 한 겹을 통해서 올라오는 온기는 가히 비밀을 끄실를 만하다. 나는 마지막으로 나의 특징까지 내어 놓았다. 그리고 단 한 재조를 샀다. 송곳과 같은 – 송곳 노릇밖에 못하는 – 송곳만도 못한 재조를 – 과연 나는 녹슬은 송곳 모양으로 멋도 없고 말라 버리기도 하였다.
혼자서 나쁜 짓을 해보고 싶다. 이렇게 어둠컴컴한 방 안에 표본과 같이 혼자 단좌(端坐)하여 창백한 얼굴로 나는 후회를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