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직지 자유 문서이다. http://html.jikji.org/leesang/ 에 있는 내용을 이곳으로 옮긴다. – 직지지기 2005.9.6 00:24 AM EDT. =- 지은이 == 이상
출전
조광, 1939.2
본문
소녀는 확실히 누구의 사진인가 보다. 언제든지 잠자코 있다. 소녀는 때때로 복통이 난다. 누가 연필로 장난을 한 까닭이다. 연필은 유독하다. 그럴 때마다 소녀는 탄환을 삼킨 사람처럼 창백하다고 한다.
소녀는 때때로 각혈한다. 그것은 부상한 나비가 와서 앉는 까닭이다. 나뭇가지는 부러지고 만다.
소녀는 단정(短艇)가운데 있었다.- 군중과 나비를 피하여 냉각된 수압이, 냉각된 유리의 기압이, 소녀에게 시각만을 남겨주었다. 그리고 허다한 독서가 시작된다. 덮은 책 속에 혹은 서재 어떤 틈에 곧잘 한 장의 ‘얄따란 것 ‘ 이 되어버려서는 숨고 한다. 내 활자에 소녀의 살결 내음새가 섞여 있다. 내 제본에 소녀의 인두 자국이 남아 있다. 이것만은 어떤 강렬한 향수로도 헷갈리게 하는 수는 없을 -사람들은 그 소녀를 내 처라고 해서 비난하였다. 듣기 싫다. 거짓말이다. 정말 이 소녀를 본 놈은 하나도 없다.
그러나 소녀는 누구든지의 처가 아니면 안 된다. 내 자궁 가운데 소녀는 무엇인지를 낳아놓았으니, 그러나 나는 아직 그것을 분만하지 않았다. 이런 소름 끼치는 지식을 내어버리지 않고야 – 그렇다는 것이 – 체내에 먹어 들어오는 연탄처럼 나를 부식시켜버리고야 말 것이다.
나는 이 소녀로 화장(火葬)해버리고 그만두었다. 내 이공으로 종이 탈 때, 나는 그런 내음새가 어느 때까지라도 저회(低徊)하면서 사라지려 하지 않았다.
기독에 혹사한 한 사람의 남루한 사나이가 있었다. 다만 기독에 비하여 눌변(訥辨)이요 어지간히 무지한 것만이 틀리다면 틀렸다.
연기 50 유 1(年紀五十有一)
나는 이 모조 기독을 암살하지 아니하면 안 된다. 그렇지 아니하면 내 일생을 압수하려는 기색이 바야흐로 농후하다. 한 다리를 절름거리는 여인이 한 사람이 언제든지 돌아선 자세로 내게 육박한다. 내 근육과 골편과 또 약소한 입방의 혈청과의 원가 상환을 청구하는 모양이다. 그러나 –
내게 그만한 금전이 있을까. 나는 소설을 써야 서 푼도 안 된다. 이런 흉장의 배상금을 – 도리어 -물어내라 그러고 싶다. 그러나 –
어쩌면 저렇게 심술궂은 여인일까. 나는 이 추악한 여인으로부터도 도망하지 아니하면 안 된다. 단 한 개의 상아 스틱, 단 한 개의 풍선. 묘혈에 계신 백골까지 내게 무엇인가를 강요하고 있다. 그 인감은 이미 실효 된지 오랜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않고.
‘그 대상으로 나는 내 지능의 전부를 기권하리라.’
칠 년이 지나면 인간 전신의 세포가 최후의 하나까지 교차된다고 한다. 칠 년 동안 나는 이 육친들과 관계없는 식사를 하리라. 그리고 당신네들을 위하는 것도 아니고 또 칠 년 동안은 나를 위하는 것도 아닌 새로운 혈통을 얻어 보겠다 – 하는 생각을 하여서는 안 된다.
돌려보내라고 하느냐. 칠 년 동안 금붕어처럼 개흙만을 토하고 지내면 된다. 아니 – 미여기처럼.
천사는 아무 데도 없다. ‘파라다이스 ‘는 빈터다. 나는 때때로 2,3 인의 천사를 만나는 수가 있다. 제각각 다 쉽사리 내게 ‘키스 ‘하여 준다. 그러나 홀연히 그 당장에서 죽어버린다. 마치 웅붕처럼 – 천사는 천사끼리 싸움을 하였다는 소문도 있다.
나는 B 군에게 내가 향유하고 있는 천사의 시체를 처분하여 버릴 취지를 이야기할 작정이다. 여러 사람을 웃길 수도 있을 것이다. 사실 S 군 같은 사람은 깔깔 웃을 것이다. 그것은 S 군은 5 척이나 넘는 훌륭한 천사의 시체를 십 년 동안이나 충실하게 보관하여 온 경험이 있는 사람이니까 –
천사를 다시 불러서 돌아오게 하는 응원기 같은 기는 없을까. 천사는 왜 그렇게 지옥을 좋아하는지 모르겠다. 지옥의 매력이 천사에게도 차차 알려진 것도 같다.
천사의 ‘키스 ‘에는 색색이 독이 들어있다. ‘키스 ‘를 당한 사람은 꼭 무슨 병이든지 앓다가 그만 죽어버리는 것이 예사다.
철 필 달린 펜촉이 하나. 잉크병. 글자가 적혀 있는 지편 (모두가 한 사람 치 ). 부근에는 아무도 없는 것 같다. 그리고 그것은 읽을 수 없는 학문인가 싶다. 남아있는 체취를 유리의 ‘냉담한 것 ‘ 덕 (德)하지 아니하되, 그 비장한 최후의 학자는 어떤 사람이었는지 조사할 길이 없다. 이 간단한 장치의 정물은 ‘쓰당카멘 ‘ 처럼 적적하고 기쁨을 보이지 않는다.
피만 있으면, 최후의 혈구 하나가 죽지만 않았으면 생명은 어떻게 라도 보존되어 있을 것이다.
피가 있을까. 혈흔을 본 사람이 있나. 그러나 그 난해한 문학의 끄트머리에 ‘사인’이 없다. 그 사람은 – 만일 그 사람이라는 사람이 그 사람이라는 사람이라면 – 아마 돌아오리라.
죽지는 않았을까 – 최후의, 한 사람의 병사의 논공조차 행하지 않을 – 영예를 일신에 지고 지리하다. 그는 필시 돌아올 것인가. 그래서는 피로에 가늘어진 손가락을 놀려서는 저 정물을 운전할 것인가.
그러면서도 결코 기뻐하는 기색을 보이지는 아니하리라.
지껄이지도 않을 것이다. 문학이 되어버리는 잉크에 냉담하리라. 그러나 지금은 한없는 정밀 (靜謐)이다. 기뻐하는 것을 거절하는 투박한 정물이다.
정물은 부득부득 피곤하리라. 유리는 창백하다. 정물은 골편 까지도 노출한다. 시계는 좌 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그것은 무엇을 계산하는 ‘미터 ‘일까. 그러나 그 사람이라는 사람은 피곤하였을 것도 같다. 저 ‘칼로리 ‘의 삭감 – 모든 기계는 년 한이다. 거진거진 – 잔인한 정물이다. 그 강의 불굴 하는 시인은 왜 돌아오지 아니할까.
과연 전사하였을까.
정물 가운데, 정물 가운데 정물을 저며내고 있다.
잔인하지 아니하냐.
초침을 포위하는 유리덩어리에 담긴 지문은 소생하지 아니하면 안 될 것이다. 그 비장한 학자의 주의를 환기하기 위하여.
여기는 도무지 어느 나라인지 분간할 수 없다. 거기는 태고와 전승하는 판도가 있을 뿐이다. 여기는 폐허다. ‘피라미드 ‘와 같은 코가 없다. 그 구녕으로는 ‘유구한 것 ‘이 드나들고 있다. 공기는 퇴색 되지 않는다. 그것은 선조가 혹은 내 전신이 호흡하던 바로 그거이다. 동공에는 창공이 의고 하여 있으니, 태고의 영상의 약도다.
여기는 아무 기억도 유언되어 있지는 않다. 문자가 닳아 없어진 석비(石碑)처럼 문명에 잡다한 것이 귀를 그냥 지나갈 뿐이다. 누구든 이것이 ‘데드마스크 ‘라고 그랬다. 또 누구든 ‘데드마스크 ‘는 도적 맞았다고도 그랬다.
죽음은 서리와 같이 내려있다. 풀이 말라버리듯이 수염은 자라지 않은 채 거칠어 갈 뿐이다. 그리고 천기 모양에 따라서 입은 커다란 소리로 외친다.- 수류처럼. 그 수염난 사람은 시계를 꺼내어 보았다. 나도 시계를 꺼내어 보았다. 늦었다고 그랬다.
일주야나 늦어서 달은 떴다. 그러나 그것은 너무나 심통한 차림차림이었다. 만신창이 – 아마 혈우병인가도 싶었다.
지상에는 금시 산비할 악취가 미만하였다. 나는 달이 있는 반사 방향으로 걷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걱정하였다. – 어떻게 달이 저렇게 비참한가 하는 -작일(昨日)의 일을 생각하였다. – 그 암흑을 – 그리고 내일의 일도 – 그 암흑을 -달은 지지하게도 행진하지 않는다. 나의 그 겨우 있는 그림자가 상하(上下)하였다. 달은 제 체중에 견디기 어려운 것 같았다. 그리고, 내일의 암흑의 불길을 징후(徵候)하였다. 나는 이제는 다른 말을 찾아내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다.
나는 엄동과 같은 천문과 싸워야 한다. 빙하와 설산 가운데 동결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리고 나는 달에 대한 일은 모두 잊어버려야 한다.- 새로운 달을 발견하기 위하여 – 금시로 나는 도도한 대 음향을 들으리라. 달은 타락할 것이다. 지구는 피투성이가 되리라.
사람들은 전율하리라. 부상한 달의 악혈(惡血) 가운데 유영하면서 드디어 결빙하여 버리고 말 것이다.
이상한 괴기가 내 골수에 침입하여 들어오는가 싶다. 태양은 단념한 지상 최후의 비극을 나만이 예감할 수가 있을 것 같다.
드디어 나는 내 전방에 질주하는 내 그림자를 추격하여 앞설 수 있었다. 내 뒤에 꼬리를 이끌며, 내 그림자가 나를 쫓는다.
내 앞에 달이 있다. 새로운 – 새로운 – 불과 같은 – 혹은 화려한 홍수 같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