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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貞操)와 약가(藥價)
- 공개되어 있는 내용이 없어서 2009.7.13~7.14일 직접 입력해서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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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입력하고 나서야 자료가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한영, 정조와 약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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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본은 학원출판공사의 학원한국문학전집 4권 입니다.
지은이
현진건
출전
신소설 1 <1929>
본문
최주부는 조그마한 D촌이 모시고 있기에는 오감할 만큼 유명한 의원이다. 읍내 김참판댁 손부가 산후증으로 가슴이 치밀어서 금일금일 운명할 것을 단 약 세 첩에 돌린 것도 신통한 일이어니와, 더구나 조보국댁 젊은 영감님이 속병으로 해포를 고생하여 경향의 명의는 다 불러 보았으되 그래도 효험이 안 나니까 그 숱한 돈을 들여 가며 서울에 올라가 병원인가 한 데에서 여러 달포를 몸져누워 치료를 받았으되 필경에는 앙상하게 뼈만 남아 돌아오게 된 것을 이 최주부의 약 두 제 먹고 근치가 된 것도 신기한 이야기거리다. 이 촌에서 저 촌으로 그야말로 궁둥이 붙일 겨를도 없이 불려다니고 심지어 서울 출입까지 항다반 있었다. 애병, 어른병, 속병, 헌데 할것없이 그의 손이 닿는 대로 마치 귀신이 붙어다니는 것처럼 신통한 효력을 내었다. 맥도 잘 짚고 침도 잘 놓고 헌데도 잘 째고 백발백중하는 그 탕약이야 말할 것도 없지마는 무슨 약으로 어떻게 만들었는지 그의 고약이야말로 세상에 둘도 없는 명약이었다. 나무하다가 낫에 베인 손가락, 모심기하다가 거머리한테 물리고 그대로 발이 짓물러서 썩어들어가는 데도 그의 보약 한 장이면 씻은 듯이 나았다. 곽란1을 만나 금방 수족이 차고 맥이 얼어붙은 것도 그의 침 한 대면은 당장에 돌린다. 그중에도 아낙네 사이에 더더욱 평판이 좋았다. 그의 빼어난 재주는 부인병, 더우기 젊은 부인병에 더욱 빛난다. 김참판댁 손부에게 발휘한 것과 같이 산후증에 더욱 묘를 얻었지만 대하증 오줌 소태도 영락없이 고쳐 주고, 더욱 놀란 것은 애를 배태도 못하는 여자라도 그의 약을 한두 제만 먹으면 흔히 옥동 같은 아들을 쑥쑥 낳아 내 뜨리는 일이다.
그는 금년에 간당 쉰 살이다. 쉰 살이면 우연만한 늙은이라 하겠으되 머리에 흰털 하나없이 검은 윤이 지르르 흐르는 듯하다. 삶아놓은 게딱지 같은 시뻘건 얼굴빛과 방웅빛과 같이 둥글고 큼직한 코는 언제든지 기운 좋고 혈운 좋아 보이었다.
수십 년을 두고 많은 인명을 살려 낸 공덕인지 본래 먹을 것 없던 그가 인제 와서는 볏섬이나 추수도 받게 되어 허리띠가 너부룩해져서 여간 환자는 잘 보지도 않는다. 교군을 들이대든지 읍내 인력거가 나오지 않으면 그는 좀처럼 동하지 않는다. 그러나 젊고 반주그레한 여자 환자에게만 옛날 친절이 아직도 쇠하지 않았을 뿐이다.
“망할 자식, 병을 안 보려거든 약국을 집어 치우지.”
하고 그에게 거절을 당한 환자가 더러는 분개하였다.
“약국을 집어치우면 계집은 뭘로 호리누.”
이렇게 빈정대는 사내도 하나씩 둘씩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 와서는 이 괭이 상판만한 D촌에 있어서는 그는 비단 명의일 뿐만 아니라 어엿한 지주님이요 부자이기 때문에 드러내놓고 그를 이러니저러니 시비하는 사람은 아직 생겨나지 않았다.
여름 새벽, 부지런한 그는 일찌거니 논꼬에 물이나 마르지 않았나 하고 머슴들을 데리고 휘 한 바퀴 돌아오니깐 마당 가운데 개처럼 쭈그리고 앉은 여자의 모양을 발견하였다.
“누구야?”
그는 무망중에 부르짖었다. 쭈그리고 앉았던 그 그림자는 깜짝 놀란 듯이 몸을 일으키어
“저어 저 샌님, 좀 모시러 왔어요.”
메인 목이 짜내는 듯이 대답하었다.
(또 왔구나!) 그는 속으로 생각하고 불쾌한 듯이 성큼성큼 걸어 사랑 겸 약방으로 쓰는 뜰아랫방으로 들어가며
“요새 모심기에 바빠서 못 가겠는걸.”
뱉는 듯이 한마디 던졌다.
그는 이런 청잣군에 진절머리가 났다. 명의를 청하러 오면서 탈 것도 안 가지고 타박타박 걸어가자는 이따위 예절 모르는 축들과는 정말 말하기도 싫었다. 졸리다가 못해 가서 볼라치면 오막살이 단간방에 병자인지 뭐인지 귀신 다 된 것이 끙끙 앓는 소리나 지르고 돼지새끼처럼 발가숭이 애들이 쇠파리떼 모양으로 엉덩글하고, 좋은 약을 써서 고쳐 주어도 약값은 으례 떼어먹는 법이다. 끽해야 닭 마리 계란 꾸러미나 또는 담뱃줄이나 가져올 뿐이다. 이것은 그래도 염치 있는 패지마는 어떤 작자는 10여 리씩 끌고 가서 밥 한술 대접하는 법 없이 촐촐 굶겨 보내기가 일쑤다. 한껏 대접이라야 땅이 꺼지는 한숨과 쇠오줌같이 질금거리는 눈물과 귀가 아픈 치사 인사다. 그것들은 사람에겐 한숨과 눈물이 진수성찬인 줄 아는 모양이다. 더구나 오늘날은 나도 당당한 지주님이 아니냐. 제까짓 작인 따위가 이리 오너라 가거라! 건방지기도 푼수가 있지 않느냐!
“너희들 주제에 약이 다 뭐냐. 개발에 다갈이지!”
그는 이런 청잣군을 만날 때마다 속으로 이렇게 중얼거리고 제물에 욕지기가 났다.
오늘 식전꼭두에 들이닥친 이 여자도 그런 따위 환자집 사람인 것은 얼른 보고 깨달을 수 있었다.
제 방에 슬어온 뒤에도 그는 불쾌한 감정을 걷잡을 수 없었다. 못 가겠다고 거절을 하거든 냉큼 돌아가 주었으면 피차에 편할 턴데, 마치 진흙땅에서 투그리는2 개처럼 추근추근하게 졸라대는 데는 더군다나 사람이 죽을 지경이다. 그 여자도 만일 가지 않거든 머슴을 불러 몰아내는 수밖에 없다고 배짱을 정해 두었다.
“샌님! 샌님! 한시가 바쁩니다. 아무리 일이 바쁘셔도 잠간 가서 보아 주세요.”
어느틈에 그 여자는 사랑 밑창 앞까지 온 모양이다. 그는 문도 열어 보지 않았다.
”글쎄 일이 바빠서 못 간다고 해도 그래.”
의원은 둘째마디부터 화증을 낸다.
”못 가시면 어떡합니까? 사람 하나 살리시는 셈 치시고 잠깐만 가 보아 주세요.”
그 여자도 상상한 대로 끈적끈적하게 조르는 패다.
“어떡하다니?”
하고 벌컥 성을 내려다가 그래도 체모가 그렇지 않아서 점잖은 가락으로
“그야 인명이 재천이니 내가 본다고 살고 안 본다고 죽겠소, 허허.”
의원은 딱하다는 듯이 자랑치는 듯이 헛웃음을 지었다.
“그야 그렇지요.”
청잣군은 제 말 고대로 인사성도 없이 시인하는 것이 더욱 제 자존심에 거슬렸다.
“그렇지만 사람 앓는 것을 보고 어찌 약 한 첩도 아니 써봅니까?”
그 여자는 솔직하게 제 맘먹은 그대로 실토를 하면서 말끝이 어디로 돌아가는지 모르는 모양이다. 명의고 뭐고 별다른 기대도 않고 다만 인정에 약이나 좀 써 보자는 수작이다. 의원은 화증이 나다가 못해 (본 바 없는 것들이란 할수없어!) 하고 속으로 어이없이 웃었다.
“약 한 첩! 그러면 병 증세를 말하오. 약을 지어 주게.”
의원은 큰맘을 썼다. 식전꼭두부터 졸리기도 싫고 꺼들려서 다니느니보다 거지에게 동 전 한푼 적선하는 셈치고 약 한 첩으로 쫓아 보내는 것이 상책이라 생각한 것이다.
의원은 그제야 영창을 열었다. 아직 해는 뜨지 않았으되 여름의 아침빛은 신선하게 밝았다. 그 떼장이는 서슴지 않고 영창 한복판에 뚜렸이 얼굴을 나타내었다. 굶주림과 고역에 시달린 탓이 되어 얼굴빛은 핏기 하나 없이 백지장 모양으로 핼쓱하다. 그러나 그 반달 모양을 그린 새까만 눈썹, 그 밑에서 문틈으로 엿보는 새벽빛 모양으로 맑고 시원한 눈, 동그스름한 앳된 입모습은 아직도 그 나이 스물을 얼마 넘지 않은 것을 가리킨다. 청잣군은 의외로 젊고 아름다왔다. 그 여자는 슬쩍 의원을 쳐다보다가 말고 고개를 다소곳 하며
“아녜요, 병자도 샌님 한번 뵈옵기가 소원이고 동리 사람들도 샌님께만 보이면 고칠수가 있다고 해요. 세상없어도 모시고 가야 돼요.”
조금도 꾸밀 데 없는 말씨건만 그 목청은 어디까지 곱고 보드라운 것을 새삼스럽게 느끼 었다.
최주부는 어여쁜 청잣군의 위아래를 훑어보며
“대관절 집이 어디요?”
“왜 그 동리를 모르세요? 예서 한 10리 안팎밖에 안돼요.”
집을 묻는 것이 가겠다는 뜻인 줄 알고는 청잣군의 얼굴에는 기쁜 빛이 살짝 돌았디
“10리 안팎! 이 여름에 가깝지 않은 길인데!”
하고도 의원의 눈가장자리는 스르르 풀리었다.
“그래 밤을 도와 왔어요. 낮에 가시자면 더우실 듯해서요”
하고 어여쁜 여자 눈은 안심한 듯이 해죽이 웃는다.
‘너무도 생각하십니다’ 하려다가 한번 짓갈을 빼노라고
“암만해도 너무 먼걸”
하고 의원은 입맛을 쩝쩝 다시면서도 그의 눈길은 청잣군의 해어진 광당포 적삼 속에서 군데군데 드러난 흰 살 위를 헤매었다. 그 여자는 그 눈길을 느끼자 두 손으로 부끄러운 듯이 제 가슴을 여미며 의원의 눈치를 지레짐작 하고,
“약값은 세상없어도 해드리겠읍니다. 자배기도 한 개 남았고 농짝도 하나 있답니다. 그걸 다 팔아서라도 약값은 만들어 드릴께요”
하고 그 맑은 눈이 스르르 흐려지며 금방에 눈물이 걸신걸신해진다.
“뭔 천만에, 무슨 약값 때문에‥‥‥ 그럼 좌우간 가보지요. 대관절 앓는 이는 누구요?”
“애아범이지요”
하고 그 여자는 괴었던 눈물을 그예 떨어뜨리고 말았다.
”언제부터 앓았소?”
“흉년들던 재작년 겨울부터 시름시름 앓았답니다. 금년 봄 들고는 아주 몸져 누웠어 요.”
“그것 안되지요”
하고 의원은 눈을 크게 떠보였다.
“여기서 그 동리를 가려면 고개를 하나 넘지요? 한 5리 장정이나 사람의 그림자도 없지 않소?”
“그래요, 밤에 올 적에도 행여 호랑이나 만날까 보아 가슴이 조마조마했답니다”
하고 그 여자는 어린애처럼 웃는다.
의원은 부산하게 세수를 하고 망건을 쓰고 몇 가지 약을 주섬주섬 집어넣은 후 처음보다는 아주 딴판으로 선선히 길을 떠났다.
훤한 광명에 쫓기고 엷어지면서도 실안개는 새벽녘의 꿈길처럼 아직도 산허리와 논두렁에서 어릿어릿 존다. 파랗게 깔린 모와 뿌유스름한 논꼬 사이에 움직이는 횐 점은 새벽에 일어난 농군들이리라. 처음 눈뜬 새들이 갖은 노래를 종알거릴 제 ‘엄매!’ 하고 어미 찾는 송아지 울음이 무겁게 들려 온다. 느리고도 바쁘고 조용하고도 시끄러운 농촌의 첫아침. 짚신이 푹푹 젖는 논두렁길을 걸어 온지 한참만에 그들은 M고개의 기슭에 다 다랐다. 오른편으로 소나무와 잡목이 [겅성드뭇하다|겅성드뭇한]] 석산을 끼고 올라가노라면 왼편으로 그리 가풀막지지 않은 낭떠러지의 여울물이 발 아래서 소리치고, 뻐근하게 덮인 풀 사이에 실낱 같은 횐 길이 꼬불꼬불 원을 그리며 뺑뺑이를 돈다.
청잣군은 앞서고 의원님은 뒤를 따랐다.
고개를 두어 모롱이 돌았을 제 일찍 뜨는 여름해는 어느틈에 그 불덩이 같은 얼굴을 나타내었다. 뜨거운 볕살은 축축하고 시원한 그림자를 휘몰아 쫓으며 우거진 가지와 잎새의 푸른 바탕에 영롱한 광선을 그린다. 풀끝에 맺힌 이슬들은 얼마 아니하여 스러질 제 운명에 마지막 광채를 발하는 것처럼 은가루 같이 번쩍인다. 짧은 밤사이에 가까스로 몸을 식힌 길바닥은 벌써 훈훈하게 달기 시작 한다.
최주부의 눈은 아까부터 앞서 가는 이의 잔등에 땀이 배인 것을 놓치지 않았다. 땀이 여러 번 거른 그 광당포적삼은 땀에 대한 아무런 저항력도 없는 것처럼 살에 착 달라붙었다. 처음에 접시만한 언저리가 주발만해지고 사발만해지고, 자꾸 번저나간다. 그 둥그스름한 어깨에도 돈짝만한 살구꽃이 피었다.
청잣군의 등에 살구꽃이 피는 모양으로 의원의 가슴에는 불꽃이 이글이글 타올랐다. 숨이 턱에 닿고 발 한 자국마다 이마에서 땀 한 방울씩 떨어졌다.
그러나 청잣군은 제 등에 땀밴 줄도 모르고 제 뒤에 누가 따라오는 것도 잊은 듯하여 뒤도 한 번 돌아보지 않고 두 다리가 잽싸게 놀며 종종걸음을 친다.
“여보 여보 아주먼네, 우리 좀 쉬어 갑시다.”
사람의 그림자란 얼씬도 않는 고개를 네 모롱이나 돌았을 제 뒤선 이는 숨을 헐떡거리며 부르짖었다.
앞선 이는 그제야 잠깐 얼굴을 돌린다.
구슬 같은 땀방울이 맺힌 발그레한 얼굴, 뒷등 모양으로 앞섶도 착 달라붙어서 뚜렷이 드러난 가슴의 윤곽, 한움큼에라도 쥐어질 듯한 가는 허리.
최주부는 핑핑 내어둘리는 듯이 눈을 슴벅슴벅3하다가 그대로 풀밭에 주저앉았다. 환자의 아내는 민망한 듯이 딱한 듯이 서성서성 할 뿐.
“덥지 않아요? 이리 와 좀 쉬시우”
하고 여전히 그 붉은 기 도는 눈을 슴벅슴벅하면서 커다란 쥘부채를 훨훨 부치다가 갑자기 제 앉은 자리가 바로 길가요 햇살이 너무 부신 것을 깨닫자 깔았던 고의 뒤를 툭툭 털고
“여긴 볕이 드는군”
하면서 그늘을 찾는 핑계로 산기슭 풀밭으로 휘적휘적 기어올랐다. 사람 발자국이 별로 밟지 않은 풀밭은 아름다왔다. 파란 <쿠션>을 깔아 놓은 듯한 잔디도 좋거니와 바위 얼굴을 덮은 담쟁이에 오불오불한 붉은 줄기 가진 병꽃풀, 좁쌀낟만씩한 수효도 없는 흰 꽃을 머리에 이고 기름기름하게 뻗은 대나물에 석죽화 뺨칠 어여쁜 패랭이꽃, 이름은 사나우나마 가련한 파랑꽃의 인나, 달기 씨깨비 노란 뿌리를 내어민 백합화들! 제각기 다른 풍정으로 사람의 눈을 이끈다. 다홍에 분홍에 자주에 연두에 회고 누르고 혹은 굵게 가지각색의 이 자연의 비단!
최주부는 앞으로 담쟁이 얽힌 바위가 가리니 뒤로는 소나무숲이 삐욱하게 푸른 그늘을 던지는 아늑하고 포근포근한 잔디밭을 필경 발견하였다.
그는 거기 펄썩 주저앉으며 기슭 아래서 망설이는 청잣군을 불렀다.
“어 여기가 참 시원하군, 이리 와 잠깐만 쉬어 갑시다.”
청잣군은 민망한 듯이 또는 난처한 듯이 얼마쯤 주저주저하다가 필경 올라오고 말았다. 먼저 자리잡은 이는 얼른 제 옆자리를 손으로 한 번 쓰다듬어 보고 뒤에 온 손님에게 않으란 뜻을 보이었다. 그러나 환자의 아내는 그 옆으로부터 한 간쯤 떨어져서 금방에 날아갈 듯이 쭈그리고 앉았다. 그렇다고 그 여자가 의원을 의심한다거나 못 미더워하는 기색이 털끝만큼이라도 있다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갈길이 바쁜데 1분 1초를 이러고 보내는 것이 민망한 눈치였다.
“거기가 예보담 나아요”
하고 의원은 드러내놓고 부둥부둥 가까이 갔으되 본능적으로 몸을 흠칫할 뿐이요, 환자의 아내는 조금도 경계하는 빛이 없었다.
“웬 땀을 그렇게 흘리오? 너무 기어한 모양이구면.”
하고 의사는 물끄러미 어여쁜 청잣군을 쳐다보다가 별안간에 이런 소리를 하며 땀이나 씻어 줄 듯이 오른손을 번쩍 들다가 말고
“어디 맥이나 좀 짚어 볼까요?”
하면서 이번에는 왼손으로 그 새새끼 같은 손목을 잡아당기어 제 무릎 위에 놓았다. 여자는 앞이마 머리칼이 사내의 불덩이 같은 뺨을 스치며 앞으로 잠간 쓰러진다. 법대로 의사의 식지와 장지가 나란히 환자의 맥 위에 놓이자마자 문득 아귀 센 두 손은 가늘게 떠는 손목을 움켜쥐었다. 그러자 여자는 별안간에 독수리에 채인 새새끼 모양으로 깜짝 놀라며 손을 빼려 할 겨를도 없이 솥뚜껑 같은 검은 두 손은 또다시 땀에 촉촉하게 젖은 여자의 젖가슴에 구렁이처럼 휘감겼다.
그 여자의 얼굴은 어디까지 맑고 깨끗하였다. 한 군데 흐린 점도 없고 흥분된 기색도 없다. 슬퍼도 않거니와 분해도 않는다. 새파란 잎새로 새어흐르는 햇발처럼 명랑하다. 바람기 없는 공중에 뜬 나비의 나래와 같이 조용하고 풀끝에 맺힌 이슬 모양으로 영롱하다. 꼭 아까 모양으로 앞장을 서서 다시금 종종걸음을 칠 뿐이다.
최주부가 도리어 겸연쩍었다. (조금 더 앙탈이라도 하였더면!) 하고 혼자 웃었다. 정조관념이란 약에 쓰려도 없고 아무한테나 몸을 맡기고도 눈곱만한 부끄러운 마음을 모르는 것이 불쾌하였다. (이런 것들은 할 수가 없어‥‥‥) 하고 속으로 제법 개탄까지 하였다. 가다가 심심하면 쫓아가서 손도 쥐어 보고 뺨도 만져 보았건만 그 여자는 그의 하는 대로 맡기고 눈썹끝 하나 움직이지 않았다. 물결치는 대로 떠나가는 부평초와 같이 걸리면 멈추고 놓이면 또 흘러갈 뿐이다. 하늘가에 흐르는 횐 구름 모양으로 모든 것이 무심하고 심상하다.
마침내 그들은 다 쓰러져 가는 오막살이 삽짝문 앞에 섰다.
“예가 우리 집예요”
하고 하염없이 웃어 보인다.
의원은 제 지은 죄 밑천으로 머리끝이 쭈뼛쭈뼛하는 듯하며 발 들여놓기가 서먹서먹 하였다. 문득 여자의 손가락이 사내의 손목에 쇠꼬챙이같이 박혔다.
“어서 들어가세요, 우리 아범을 꼭 고쳐주셔야 말이지 그렇쟎으면 큰일날 줄 아세요”
하는 나직한 말소리가 의사의 등골에는 찬물을 끼얹는 듯하였다.
의사는 허둥지둥하는 발길로 삽짝 안에 끌려들어섰다. 수숫대로 친 담도 반나마 쓰러졌고 집이래야 토막인데 툭 꺼져서 내려앉으려는 지붕은 몇 해를 이지 않은 듯, 명색 부엌 한 간에 거기 잇달아 기역자로 방 두 간이 형용만 남았는데 황토로 발라 놓은 벽에 엉그름4이 턱턱 갈라져서 더러는 떨어지고 더러는 주둥이를 쳐들고 떨어질 때를 기다린다. 대꼬챙이로 얼기설기 엮은 대에 신문지를 되는대로 발라 놓은 명색 방문을 열고 들어서니 매콤한 냄새가 첫째 코를 엄습한다. 그다음엔 삿자리 깐 방바닥과 신문지벽에 진을 치고 있던 파리들이 왁하면서 새로 오는 사람에게로 달려든다. 또 그다음엔 거미같이 마른 네댓 살 되는 발가숭이 계집애가 양촛자루만한 다리를 비비꼬는 듯이 쭈적쭈적거리며
“엄마!”
소리를 내자 대번에 삐죽삐죽 울기 시작한다.
방 아랫목엔 환자가 웃통을 벗고 배 위에만 헌 누더기를 걸쳤는데 울퉁불퉁하게 드러난 뼈가 가죽 한 겹을 남겨 놓고 가까스로 얽매여 있는 듯, 이맛전만 불쑥 높고 뺨과 턱 언저리는 훑은 듯이 쪽 말랐는데 만일 뚜룩뚜룩하는 큼직한 눈이 없었던들 아무라도 해골로밖에 안 보게 되었다.
아내와 의사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 상반실을 일으키려던 그 환자는 아내의 보드라운 손길에 다시 누웠다.
“더치시면 어쩌자구.”
“고 고맙네, 그 먼델 갔다와서! 그래 모시고 왔지. 아이구, 저 저 땀 보아. 개똥아, 어머니 부채 찾아 드려라.”
하고 제 어린 딸에게 명령한다.
“괜찮아요, 괜찮아요”
하며 치마꼬리로 땀을 씻고 문득 제 얼굴을 그 해골 다 된 얼굴에 문지르며 훌쩍훌쩍 운다.
“왜 울어? 인제 의원님이 오셨는데 약 먹으면 나을 텐데!”
환자 또한 목이 메인다. 뼈만 남은, 꼬치꼬치 마른 남편의 손은 아내의 흐트러진 머리칼을 쓰다듬는다.
“세상없어도 나을 테야, 안 죽고 살아날 테야. 울지 말아요, 울지 말아요.”
그들은 몇 번이나 이러고 서로 울며 위로 하였던고!
“그런데 여보세요, 내가 죄를‥‥‥”
하고 아내는 더욱 느껴 운다.
윗목에 서성서성하고 있던 죄인은 그 소리에 가슴이 뜨끔하였다. 그 방울 같은 코끝에 땀이 또 한 방을 맺혔다.
“여보, 죄가 무슨 죄요. 저 샌님을 좀 앉으시게나 하오.”
아내는 말대로 선뜻 일어나 웃목으로 오더니만 제 치맛자락으로 삿자리를 흠칫흠칫한다.
“이리 좀 앉으세요”
하여 의원을 앉히고는 다시 남편에게로 왔다.
“저 샌님을 모시고 오다가, 저 샌님의 말씀을 들었어요. 집에 모시고 온대야 약값 드릴 거리도 없고 당신의 병은 세상없어도 고쳐야 되겠고‥‥‥”
말끝은 다시금 눈물에 흐렸다.
아까부터 바늘방석에 앉은 것 같은 최주부는 그 말에 회오리바람이 온몸과 맘을 휩싸고 뒤흔드는 듯하였다. 금시로 저 해골바가지가 이를 뿌드득 갈고 일어서며 날카로운 칼로 제 목을 푹 찌를 것 같았다. 그러나 환자의 대답은 그야말로 천만뜻밖이었다.
“자, 자, 잘했소.”
한마디하고 그 새새끼 같은 팔뚝으로 아내를 제 가슴에 쓸어안고 흑흑 느낀다.
“그것도 내 병 탓이지. 내 죄지 임자가 무슨 죄요. 아니오, 임자 죄는 아니오”
한다.
최주부는 제 눈과 귀를 믿을 수 없었다. 세상에 기괴한 일도 있고는 볼 일이다. 이왕지사 정조를 깨뜨렸거든 그 비밀일랑 제 속 깊이 감춰 둘 일이지, 그것을 샅샅이 남편에게 고해바치는 년도 년이어니와 뻔뻔스럽게 그런 소리를 드러내놓고 지껄이고 제 정부조차 버젓하게 데리고 온 계집을 잘했다고 위로하는 놈도 놈이 아니냐. 이윽고 두 남녀는 떨어지며 청잣군은 또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또는 마땅히 할 일을 하였다는 것처럼 환한 얼굴을 의원에게로 돌렸다.
“병을 좀 보아 주세요.”
의원은 두근거리는 가슴을 간신히 진정하고 정중하게 맥도 짚어 보고 병날미도 들어 보았다. 재작년 한재에 부치던 논 열 마지기가 다 타 버리고 추수마당에서 빗자루만 털게된 뒤로 굶기를 밥먹듯 하였고 작년에는 그 논마저 떨어져서 농사도 못 짓고 품팔이로 그날그날을 지내노라니까 점점 병이 더 쳐서 오늘날 이 지경에 이른 것이라 한다. 그것은 갈데없는 부족증이다. 기혈 부족, 원기 부족에서 생긴 병이니 의원의 양심은 초제 몇 첩 가지고는 도저히 돌릴 수 없는 병임을 알린다.
의원은 제가 가지고 온 약재를 골라서 보원탕 세 첩을 지어 주고 이 병은 매우 뿌리가 깊으니 여간 낱첩으로는 낫지 않을 터인즉 가미한 십전대보탕 한 제는 먹어야 되겠다고, 그 약을 지으려면 약재를 가져온 것이 없으매 돌아가서 지어 보내겠다고 설명해 드렸다. 이왕 지은 허물이니 손해는 보더라도 약 한 제쯤으로 삯쳐 버리고 한시바삐 이 괴상한 자리를 떠나려는 배짱이었다.
그러나 그렇게 풀기없이 제 팔뚝에 쓰러졌던 그 계집은 인제 와서는 여간 아귀가 센 것 이 아니다. 고쳐 주기 전에는 한 발자국도 여기서 움직이지 뭇한다. 한 달이고 두 달이고 얼마든지 약을 써서 그예 병뿌리를 빼야 놓아 보낼 터이다. 약재가 없으면 적어 주면 몇 차례라도 넘나들며 가져오겠다고 악지를 쓴다. 의원은 환자집 의견에 아니 복종할 수 없었다. 입맛을 쩍쩍 다시면서 쪽지를 적어 주고 환자의 아내는 10리 안팎 길을 한숨에 뛰어가고 뛰어왔다.
밤이 되었다. 병자와 의사가 자는 방엔 삿자리 한 잎으로 간을 막았다.
“난 샌님을 모시고 잘까요?”
아내는 서슴지도 않고 예사롭게 남편에게 묻는다.
“참 그래, 그러구료. 개똥이는 내 옆에 갖다가 눕히고 임자는 그리로 건너가구료”
남편도 제가 먼저 말할 것을 잊었다는 듯이 대찬성이다. 그 수작이 끝나기가 무섭게 아내는 실행한다. 저녁먹던 맡에 웃방에 곯아떨어진 개똥이를 환자 방으로 갖다 눕히고 자기는 의원의 곁에 와서 눕는다. 이번에는 의원의 몸이 오그라붙는 듯하였다. 그는 일부러 큰 소리로,
“괴이한 일이로군. 아까는 내가 환장이 되어서 그랬지만 다시야 그럴 수가 있소? 병자를 두고 딴 방에 자다니”
하고 제법 점잔을 빼 보았다.
“괜찮사와요, 괜찮사와요.”
남편은 마치 손님에게 밥이나 권하는 듯이 아내와 같이 자기를 권한다. 아내도 남편에 지지 않게 손님의 사양은 귀곁에도 넣지 않으려 한다. 옷까지 훌훌 벗어 버리고 옆에 착 달라붙어 누우며 머리맡에 놓인 손님의 부채를 찾아 들더니
“더우시지 않으세요?”
하면서 훨훨 부쳐 준다. 아무리 사양을 해도 손님이 잠들기 전에는 부채질을 쉬려고도 하지 않았다.
열흘 동안이나 최주부는 정말 땀을 뺐다. 굴속 같은 방안, 밤마다 예사로 벗고 눕는 환 자의 아내, 산나물에 좁쌀낟을 눈에 겨우 뜨일 만큼 띄운 죽물, 감옥살이의 고통도 이토록 지긋지긋하지는 않을 듯싶었다.
다행히 환자는 약발을 잘 받았다. 약 한 첩 들어가 보지못한 위장에는 인삼과 녹용이 그야말로 선약 같은 효험을 드러내었다. 최주부는 하루바삐 이 고통에서 벗어나려고 이해타산도 모조리 잊어버렸다. 제 돈을 들여 닭 마리도 사서 고아 먹이게 하고 나중에는 제 집 쌀까지 가져오래서 이밥을 지어 먹이도록 하였다. 환자의 회복은 하루가 다르고 한시가 달랐다. 열흘이 되매 기동도 맘대로 하게 되고 뼈만 남았던 몸에 살까지 부옇게 찌게 되었다. 마지막날 새벽에 잠을 깨어 보니 옆에 누웠던 환자의 아내가 없었다. 삿자리 한 잎 너머로 그들의 속살속살하는 이야기 소리가 들린다.
“참 인젠 가슴도 두두룩하시구료.”
아내는 남편의 가슴을 만져 보는 모양.
“가슴뿐야, 자, 이 팔을 만져 봐요. 제법 살이 올랐지? 오늘이라도 농삿일을 하겠는데, 허허.”
“안돼요. 아직 안돼요. 좀 조리를 더 하셔야지 또 병환이 더치시면 어떡해.”
아내는 질색을 한다.
“인제 다시는 병이 안 날 테야. 인젠 두 주먹 쥐고 벌지. 그래도 입에 들어가는 것이 없으면 도적질이라도 할 테야. 안 굶으면 병이 안 나겠지. 이번엔 꼭 죽을 줄 알았더니만 임자 덕에 살았지.”
하고 잠간 말이 끊임은 젊은 내외의 으스러지는 듯한 포옹이 있는 모양.
“임자를 안고 나니 두 팔에 기운이 더 붙는듯한데‥‥‥ 신기한걸, 내일부터는 임자를 업고 다니면 더 기운이 나겠지.”
“나중에는 별소리를 다 하시는구료. 그래 조금도 꺼림칙하지 않으세요?”
“뭣이 꺼림칙하단 말이오?”
“저 남의 아주번네하고 같이 잤는데도.“
“백 날을 같이 자면 무슨 일이 있나, 내 병땜에 임자에게 귀찮은 노릇을 격게 한 게 애연할 뿐이지.”
”참, 그래요. 나도 그런 일을 당하면서도 조금도 부끄럽지 않았어요, 처음엔 가슴이 좀 두근거리더니만 무슨 짓을 하든지 당신 병만 나으면 그뿐이라 하고 보니 맘이 그만 가라앉아요.”
“그럼, 서로 위해서 하는 일이 부끄러을 것이 뭐람.”
그들의 수작은 아침에 재잘거리는 새 모양으로 흐리고 터분한 점은 도무지 없고 어디까지 명랑하고 어디까지 상냥하다.
“그래도 저 방에서 샌님을 뫼시고 자려니까 어쩐지 가슴이 뻐근하고 슬퍼요.”
“나도 그래. 고마운 생각이 지나쳐 눈물이 나려고 하더구면. 인젠 병이 나았으니까 옛말이지.”
두 내외는 또 쓸어안는 모양. 그때에 개똥이가 자다가 무엇에 놀란 듯이 삐하고 운다.
“왜 왜!”
하고 애 달래는 소리가 나더니 삿자리를 걷어 치우며 조심조심 건너온다.
그날 아침페 최주부는 놓이게 되었다. 환자도 개똥을 안고 문밖까지 전송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최주부는 여남은 걸음 걸어가다가 고개를 돌이키니 두 내외는 아직도 나란히 사립 문턱에 서서 자기의 가는 양을 바라 보고 있었다. 때마침 그들은 떠오르는 햇발을 담뿍 안고 있었다. 의좋게 나란히 서 있는 그들의 얼굴엔 광명과 행복이 영롱하게 번쩍이는 듯하였다.
“저런 것들은 정조도 모르고 질투도 모르는 모양이지!”
최주부는 눈이 부신 듯이 얼른 고개를 돌리며 혼자 중얼거렸다.
<19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