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립은 흘긴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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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립은 흘긴 눈

  • 공개되어 있는 글월이 없어서 2009.7.8일 직접 입력해서 올립니다. – 김 민수

  • 입력본은 학원출판공사의 학원한국문학전집 4권입니다.

지은이

현진건

출전

폐허이후 1 <1924>

본문

그이와 살림을 하기는, 내가 열 아홉 살 먹던 봄이었읍니다.

시방은 이래도, 삼십도 못 된 년이 이런 소리를 한다고 웃지 말아요. 기생이란 스무 살이 환갑이라니, 삼십이면 일테면 백 세 장수한 할미장이가 아니에요. 그때는 괜찮았답니다. 이 푸르족족한 입술도 발그스름하였고, 토실한 뺨볼이라든지, 시방은 촉루(髑髏)란 별명고차 듣지마는 오동통한 몸피라든지, 살성도 회고, 옷을 입으면 맵시도 나고, 걸음걸이도 멋이 있었답니다. 소리도 그만저만히 하고, 춤도 남의 흉내는 내었답니다. 화류계에서는 그래도 누구 하고 이름이 있었는지라, 호강도 웬만히 해보고 귀염도 남부럽잖게 받았읍네다. 망할 것 우스워 죽겠네. 하자는 이야기는 아니하고 제 칭찬 만 하고 않았구먼.

어쨌든 나도 한시절이 있은 것은 사실입니다. 해구멍이 막히지도 안 해 요리집에서 인력거가 오고 가고만 보면 새로 두 점 석 점 전에는 집에 돌아온 적이 별로 없었읍니다. 그나마 집에 와서 곧 자느냐 하면, 그렇지도 않아, 대개 집에 손님이 기다리고 있기도 하고 또는 손님과 같이 올 때가 많았읍니다. 그래가지고 또 고달픈 몸을 밤새도륵 고달프게 굴다가, 해뜬 뒤에야 인제 내 세상인가 보다 하고 간신히 눈을 붙이면 사정 모르는 손들이 낮부터 달려들어서 고단한 몸을 끌고 꽃 구경을 간다. 들놀이를 간다, 절에를 나간다 합니다그려. 그거니 몸이 피로치 않을 수 있읍니까. 놀기란 참 고된 일입니다. 어느 때는 사지가 늘어지고, 노는 것이 딱 싫고 귀찮아서, ‘이년의 노릇을 언제나 마나’ 하고, 탄식이 나옵니다.

그럴 때 나의 눈앞에 그이가 나타났읍니다. 나보담 네 해 맏이인 그는, 귀공자답게 얼굴도 곱상스럽고 돈도 잘 쓰며 노는 품도 재미스럽고 호귀로왔읍니다. 나는 그만 그에게로 마음이 솔깃하고 말았지요. 그이도 나에게 적지않게 빠진 모양이었읍니다. 그럭저럭 관계가 깊어 가자, 그이는 나와 살자고 조르지 않겠읍니까. 마침 기생 노릇도 하기 싫던 차이고 밉지도 않은 사내라, 내심으론 이게 웬 떡이냐 싶었지만, 그래도 기생 행투가 그렇지 않아 이 핑계 저 핑계로 그이를 바싹 달게 해서 돈 천 원이나 착실히 빼앗아서 어머니를 주고 마지못해 하는 듯이 살림을 들어가게 되었읍니다.

그이는 간이라도 빼어먹일 듯이 나를 사랑해 주었읍니다. 나를 얻기 전에도 오입깨나 해본 모양이었으나, 나이가 나이라, 어리고 참다운 곳이 있었읍니다. 나의 말이면 콩을 팥이라 해도 곧이들었읍니다. 나의 청이라면 무엇이고 낙종(諾從)치 않는 것이 없었읍니다. 이 눈치를 알아본 나는 그이로부터 갖은 것을 졸라 내었읍니다. 우리 든 집 문서도 내 이름으로 내게 하고, 자개농이랑, 자개의 걸이랑, 한간 벽에 맞는 큰 체경이랑, 물론 온갖 비단과 포목을 필필이 들여오게 하고, 철철에 따르는 비녀며 사흘거리로 진고개에 가서는 순금반지 진주반지 보석반지를 사게 하였읍니다.

이 외에 어머니의 생신이라는 둥, 일가의 혼례에 쓴다는 둥, 장사에 쓴다는 둥, 빛을 졌다는 둥, 갖은 핑계를 만들어서 그의 돈을 긁어 내었읍니다. 무슨 내 변명이 아니라 이런 짓을 한 게 전부가 나의 욕심 사나운 까닭도 아닙니다. 사라고 하고 달라고 하는 그것이 어쩐지 좋고 재미스럽기도 하였어요. 그리고 또 그것이 그에게 피우는 애교이고 아양이었어요. 그것뿐도 아니지요. 내 말이라면 어느 정도까지 들어 주나 곧 그이가 나한테 홀리었는지를 자질도 하고 싶고, 뜻대로 성공을 하면 물건을 얻은 것보담 몇 갑절 더 기뻤읍니다. 물론 어머니가 뒷구멍으로 부추 기기도 하였지만.

그인들 몇만금을 제 수중에 두고 쓰는 게 아니라, 아버지를 팔고 빛을 내는 것이 하루 이틀 아니고 물쓰듯 하는 돈을 언제까지 대어 갈 수가 있겠읍니까. 같이 산 지 석 달이 못 되어 돈 주변할 길이 막힌 모양이었읍니다. 아무리 귀한 자식의 빚봉수라도 한 번 두 번이지 전부 아버지가 갚아 줄 리가 있겠어요. 더구나 구두쇠로 유명한 그의 부친이 그때까지 참은 것도 장한 일이지요. 마침내,

“너 같은 놈은 자식으로 알지도 않으니 죽든지 살든지 나는 모르겠다.”

하게 되었읍니다. 그전에도 여러 번 그러고 얼렀지만 이제는 아주 사실로 나타나게 되었겠지요.

빚장이가 벌떼같이 일어났읍니다. 요리집에서, 금은방에서, 선전, 드팀전 더구나 고리대금업자한테서, 빚장이는 문간을 떠날 새가 없었읍니다. 부자집 외동아들로 자라나 도무지 졸리는 것을 모르던 그이는 단박에 입술이 바싹바싹 말라가기 시작하였읍니다. 문간에서 찾는 소리만 나면 온 몸을 옹송그리고 얼굴이 파랗게 질리는 꼴이란 곁에서 보아도 가없었읍니다. 빚에 졸리는 것이 딱 하기도 하고 또 자격지심도 나서,

“나 때문에 이런 곤란을 당하시지요. 내가 몹쓸 년이야.”

하며는 그이는,

“그게 무슨 말이야.”

하며 질색을 하고,

“왜 채선(彩仙)이 때문이람. 내가 못생긴 탓이지.”

하고는 도리어 면목없는 듯이 고개를 숙이었읍니다.

이런 중에 그에게 또 기막힌 일이 생기었지요. 그것은 다른 일이 아니라 그이가 돈 쓰기도 급하였고 또 못된 동무의 꾀임에 빠져 아버지 도장을 위조하여 빛을 낸 일이 발각이 된 것이에요. 돈 꾸어 준 놈도 물론 알고 한 일이지만 그의 아버지가 나는 모른다고 딱 거절을 하니까 이제는 그이를 보고 얼으딱딱거리며 사기를 했느니, 인장 위조를 했느니, 만일 일주일 안으로 갚지 않으면 고소를 하느니 하고 야단을 합니다. 간이 작고 마음이 어린 그는 얼굴이 새파랗게 타들어가겠지요. 몇 번 그의 어머니를 새에 두고 또는 직접으로 자기 아버지께 말을 해보는 모양이었으나, 도무지 일이 안될 줄은 그 찡긴 눈썹과 붙어진 새죽지 같은 어깨를 보아도 짐작할 수 있읍디다. 그이는 조바심이 되어서 못견디는 듯이 누웠다, 앉았다. 일어 섰다 금시로 집을 뛰어나가는가 하면 금시로 또 뛰어들어오겠지요.

그러다가 나중에는 돌부처나 무엇같이 한 자리에 우두커니 않으면 멍하니 바람벽만 바라보고 어느 때까지 손끝 하나 꼼짝도 아니 하였읍니다.

내일같이 그 일주일이란 귀한 날이고 오늘같은 저녁이었읍니다. 여름답게 횐 구름이 봉오리봉오리 솟은 하늘엔 밝은 달이 걸리었읍니다. 우리는 저녁을 먹고 나서 마루로 나와 달을 쳐다보고 있었읍니다. 그때 나는 문득,

“작년 이맘때에는 한강에서 선유를 하였는데.”

하였읍니다. 굼실거리는 시원한 물결은, 그림자를 부수는 배가 눈앞에 선하게 떠보이매 갑자기 덥고 갑갑해서 견딜 수 없겠지요. 그러나 아무리 뻔지 좋은 나인들 사면팔방을 빚에 졸리어 머리를 못드는 그이에게 뱃놀이 가잘 염이야 있어요.

“이런 밤에 처박히어 나가지두 못하구”

하매 번화롭던 옛날 기생 생활이 그리웠읍니다. 살림 들어온 것이 후회가 났읍니다. 이렇게 마음이 들뜨는 판에 곁에서 훌쩔훌쩔하는 소리가 나지 않겠읍니까. 돌아다보니 그이가 울고 있지 않아요.

“왜 우세요”

하니까 얼른 대답은 아니하고 설움이 복받치어 참을 수 없다는 듯이 이윽히 코만 들이마시다가 껄떡이는 목소리로,

“채선이는, 채선이는 내가, 내가 감옥엘 들어가면 또 기생으로 나가겠지?”

하고 눈물이 그렁거리는 눈을 나에게로 돌리겠지요. 내 속을 알아차렸나 보다 하고 가슴이 뜨끔하였으되 놀아먹은 보람이 있어서 담박에,

“흉헙게스리 그게 무슨 말씀이에요”

하고 질색을 하였읍니다.

“아니야, 내가 감옥엘 가면 채선이는 또 기생에 나가서 뭇놈의 사랑을 받을 거야.”

감옥에 간단 말이 조금 안되었지만 속으로는 ‘암 그렇지’ 하면서도 입밖에 내어서는,

“그럴 리가 있겠어요. 설령 나으리가 감옥에 간다손치더라도 나야 당신 사람이 아니에요. 왜 또 기생으로 나가겠읍니까. 댁에 가서 행랑방 구석으로 돌아다닐지라도 나으리의 나오기만 기다리지요”

라고 꿀을 담아 붓는 듯한 마음에 없는 딴청을 부리었읍니다. 이 말에 그이는 매우 감동된 모양이었읍니다. 바싹 다가들며,

“그게 참말이야?”

“그럼 참말 아니구.”

“그래 내가 감옥엘 가도 수절을 하고 나를 기다리겠단 말이야?”

“그럼 수절하구말구.“

천연덕스럽게 꼭 그러할 듯이 따끈해서 대답을 하였으되 속으로는 수절이란 말이 어째 춘향전이나 읽는 듯해서 우스웠습니다.

“만일 내가 감옥엘 아니 가고 죽는다면.”

하고 그이는 나의 얼굴을 딱 노리었읍니다. 그 시선이 전에 없이 날카로와서 슬쩍 외면 을 하면서도

“따라 죽지?”

하고서 청승맞게 ‘너 죽고 나 살면 열녀 되나 한강수 깊은 물에 빠져나 죽지’ 하는 노래를 읊었읍니다. 나도 죽일 년이지요. 그 소리를 들으며 그이는 또 얼빠진 듯이 우두커니 앉았다가 무슨 단단한 결심을 한 것같이 벌떡 일어서며,

“채선이, 할 말이 있으니 방으로 들어가자”

하지 않겠어요. 나는 ‘흥, 또 안고 끼고 하려나 보다’ 하였읍니다. 그이는 아직도 숫기가 남아 있어 남보는 데, 아니 남이 볼 만 한 데에서는 나의 손목 한 번 시원스럽게 못 쥐고 그리고 싶을 때엔 꼭 방으로 끌고 들어 갔읍니다. 더구나 요사이 와서는 몹시 근심을 한 뒤라든지 또는 비관한 뒤라든지 반드시 나를 쓰다듬고 어루만지기를 잊지 않았읍니다. 이런 짐작을 한 나는 조금 앙탈도 하고 싶었으나 그의 운 것이 가없어서 말대로 방에 들어갔읍니다. 방에 들어온 그는 방문을 모두 안으로 닫아걸겠지요. 내 짐작이 틀리지 않구나 하면서도,

“이 6월 염천에 방문을 왜 닫아요, 남 더워 죽겠는데.”

라고 까자를 올렸건만 그 말에는 아무 대답이 없고 제 할일을 다해 버립디다. 전 같으면 부끄러운 듯이 눈을 찡긋하기도 하고 손짓으로 말 말라고도 하였으련만. 나는 벌써 내 입술에 닿는 그의 입술, 나의 젖가슴으로 허리로 도는 그의 팔을 기다렸건만 그이는 이상스럽게 엄연한 얼굴로 마주 앉아 있을 뿐입니다. 얼마 만에 그이는 가라앉은 목소리로,

“채선이 네나 내나 이 세상에 더 구차히 산다 한들 또 무슨 낙을 보겠니, 차라리 고만 죽어 버리는 게 어떠냐?”

하겠지요. ‘미쳤나, 죽기는 왜 죽어’ 하면서도,

“그래요, 고만 죽어 버려요”

라고 쉽사리 찬성을 하였읍니다.

“그래 나하고 같이 죽을 테냐?”

“나으리하구 죽는다면 죽는 것도 꿀이지요.“

“내야말로 너하구 같이 죽는다면 한이 없겠다.“

하는 그이의 소리는 떨리었읍니다. 나도 일부러 목이 메이며,

“내야말로 나으리하구 죽으면 한이 없어요.“

“말만 들어도 고맙다만 정말 나하구 죽을테냐?”

“원, 다심도 하이, 죽는다면 죽는 게지, 그렇게 내가 못미덥단 말이에요”

하고 가장 남의 속을 못도 알아준다는 듯이 새파랗게 성을 내었읍니다. 그리하는 것이 어째 신파 연극을 하는 듯싶어 재미스러웠어요. 설마 죽을 리는 만무하고 이왕이면 이대도록 너한테 정이 깊다는 걸 표시함도 좋았지요. 그이는 나의 기색을 살피더니 그만하면 되었다 하듯이 벌떡 일어나 자기가 쓰는 가방을 가져오더니 그 안에서 횐 봉지를 하나 꺼내겠지요.그 봉지 속으로는 밤낱만한 고약 같은 것 두 개가 나왔읍니다.

(저것이 아편이구나) 하매 가슴이 조금 섬뜩 어리었으되 그리 놀라지는 않았읍니다. 그 약으로 말하면 그이가 돈 안 주는 자기 아버지를 놀라게 하려고 몇 번 자기 어머니에게 보이는 것을 곁에서 구경을 하였으니까요. 그것을 먹고 죽는다고 야단을 해서 돈을 얻어온 일도 있으니까요. 그러니 시방 와서 새삼스럽게 놀랄 것도 없지마는 같이 죽자는 말 끝에 그것이 나온지라 시방껏 달떴던 마음이 조금 긴장은 됩디다. 그이는 자릿기를 당기더니 그 약을 앞에다 놓고 이윽히 내려다보며 닭의 똥 같은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지 않겠읍니까. 그때만은 나의 가슴도 찌르르하였읍니다.

한참 약을 내려다보고 울고 있던 그이는 무슨 비장한 결심을 한 듯이 몸을 흠칫하더니 그 약 한 개를 얼른 입에 집어넣고 한 개를 집어 나를 주지 않겠읍니까. 나도 서슴지 않고 그 약을 입에 넣었읍니다. 약을 머금은 그는 손가락으로 자릿기를 가리켜 나한테 물을 마시란 뜻을 보이었습니다. 나는 그의 시키는 대로 물을 마시었으나 물만 넘기었지 약은 혀밑에 감춰 둔 것은 물론입니다. 내야 꿈에도 죽을 마음이 없었읍니다. 같이 사는 정의에 그이의 빚에 졸리는 것이 딱하지 않은 바이 아니고, 그 때문에 살림살이가 전같이 호화롭지는 못하였을망정 그걸로 비관할 까닭은 조금도 없었읍니다. 정 못 살게 되면 도로 기생으로 나갈 뿐입니다. 벌써 살림살이가 물려서 그렇지 않아도 기생 생활이 그립던 나인데 아직 나이 어리고 남에게 귀염 받던 일, 호강하던 일이 어제 일같이 역력히 기억에 남아 있는 나인데, 앞길에도 기쁨과 호강이 춤추며 기다리고 있는 줄 믿는 나인 데, 왜 죽자는 마음이 추호만친들 생기겠읍니까. 내 몸뿐만 아니라 그이가 죽는다는 것도 믿지 않았읍니다. 처음엔 실없는 거짓말로 알았고 약을 머금은 뒤에라도 또 무슨 연극을 꾸미는가 보다, 내일이고 모레면 그 댁에서 허덕지덕 돈을 갖다 줄 터이니 또 홍청거릴 수 있구나 하고 도리어 기쁘기도 하였읍니다. 독약을 먹고 하는 노릇이라 가슴이 조금 아니 떨린 것도 아니지만.

그러나 어찌해요. 그이는 나의 물 마시는 것을 보더니 매우 안심된 듯이 내 손에서 자릿기를 빼앗아 꿀떡 마셔 버렸읍니다. 그이가 정말 약을 삼킨 것은 좁은 목구멍으로 굵은 약덩이가 넘어가느라고 얼굴이 새빨개지고 어깨를 추스르며 목줄기가 구불텅하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읍니다. 그러더니 고만 뒤로 벌떡 자파지겠지요. 약 힘이 삽시간에 퍼진 것은 아니겠지만 약을 먹었다 하는 생각에 정신을 잃었는가 보아요.

이 뜻밖의 일에—그이로 보면 조금도 뜻 밖의 일이 아니겠지만—나는 더할 수 없이 놀래었읍니다. 저이가 정말 죽었구나 하는 생각이 칼날같이 가슴을 찌르자마자 무어라고 형언할 수 없는 감정이 온 몸을 뒤흔들었읍니다. 무어니무어니하여도 고작해야 열 아홉 살 먹은 계집애가 아니에요.

이 난생 처음 당하는 큰일에 어안이 벙벙 하여 ‘악’ 소리도 치지 못하고 가위눌린 눈만 휘등그리다가 나도 죽었네 하는 듯이 뒤로 자빠졌읍니다.

얼마 되지 않아 그이가 벌떡 일어나 미친 듯이 방안을 왔다갔다하지 않아요. 아편을 먹으면 자는 듯이 죽는다는 것은 빨간 거짓말인가 보아요. 답답하고 뉘엿거려서 못 견디겠다는 듯이 두 손으로 가슴을 쥐어뜯으며 ‘핫핫’ 하고 괴로운 숨을 토합디다. 그러더니 다짜고짜로 두 손을 입안으로 넣어 왝왝 헛구역질을 하겠지요. 아마 속이 너무도 괴로움에 죽자는 결심도 간 곳 없고 먹은 약을 토해 낼 작정이던가 보아요. 그러나 약은 아니 나오는 듯하였읍니다.

이 광경을 바라보던 나도 일변 무섭기도 하였지만 못 견딜이만큼 괴롭기도 하였읍니다. 그의 받는 고통이 도무지 내 탓이 아니에요. 나로 하여금 돈을 쓰고 그 돈을 물리다못하여 죽는 죽음이니 내 탓이 아니고 누구의 탓이겠옵니까. 그런데 나는 죽을 때까지 그를 속이었읍니다. 거짓 죽는 시능을 해서 그를 속이었읍니다. 내가 만일 따라 죽는다 아니하고, 그를 말리었던들 그이는 아니 죽고 말았을지도 모르지요. 그 약을 먹고 저런 욕을 아니 볼는지도 모르지요.

그러면 내 손으로 그이를 죽인 것이나 다를 바가 무엇이겠율니까. 그때에야 물론 이렇게 사리를 쪼개서 생각은 안했지마는 차마 그이의 괴로와하는 꼴을 볼 수는 없었읍니다. 나는 진저리를 치고 눈을 딱 감았읍니다. 그때입니다. 무엇이 나의 어깨를 흔들지 않아요. 번쩍 눈을 떠보니까 그이가 걷어쳐 올라가는 개개풀린 눈으로 내 옆에 앉아서 나를 내려다보고 있겠지요.

나는 소름이 쪽 끼치어 흠칫하고 몸을 소스라쳐 일으켰읍니다.

나의 일어나는 것을 보고 그이도 따라 일어서며 용서해 달라는 표정으로,

”괴롭지, 괴롭지, 공연히 나 때문에”

라고 더듬거리고는 눈물이 핑 도는 듯하였읍니다. 그 소리는 어쩐지 무서움에 떠는 나의 창자 속까지 스며 들어가는 듯하였읍니다. 나의 눈에도 뜨거운 눈물이 쏟아졌읍니다. 그러자 그이는 바짝 다가들며 한 손으로 내 목덜미를 안고 또 한 손을랑 나의 입에 대입니다. 죽어가는 그이, 아니 벌써 송장이나 진배없는 그이의 손이 나에게 닿았건만 나는 조금도 전같이 두렵고 무서운 증이 들지 않았읍니다.

“배앝아라, 배앝아. 어서 배앝아”

하고 그이는 손가락을 입 안으로 꾸역꾸역 들여밀겠지요.

이때에 입 안에 든 약을 생각한 나는 흘리던 눈물을 뚝 그치고 ‘에그머니!’ 싶었습니다.

나는 그이의 지중한 사랑에 감읍하였으되, 그이가 돌려 내려고 얘를 쓰는 것이로되 나는 그 약을 내어놓기가 죽어도 싫었읍니다. 나는 차라리 삼켜 버려야 하였읍니다. 몇 번을 침을 모아 그 약을 넘기려 하였으나 원수의 덩이가 큰 까닭인지 세상 넘어가지를 않습디다. 그러는 판에 내 입에 들어온 그이의 손가락이 벌써 그 약을 집어내겠지요. 그 약을 집어내자 나를 바라보던 그이의 얼굴은 시방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어쩌면 그 곱상스럽던 얼굴이 그렇게 변할까요. 나는 어떻다 형용할 수가 없읍니다.

제 계집이 딴 사내를 끼고 자는 것을 보는 본남편의 얼굴이나 그러할는지요. 얼굴의 표정은 분노 그것이었읍니다. 원한 그것이었읍니다. 입술을 악물고 드러난 이빨 하나만 보고라도 누구든지 질겁을 할 것입니다. 더구나 잊히지 않는 것은 그 눈자위예요. 일상 생글생글 웃는 듯하던 그 눈매가 위로 홉뜨이 어서 미친 개 눈깔같이 핏발을 세워 나를 흘긴 것이에요. 그 무섭기란 시방 생각하여도 몸서리가 쳐져요.

그이는 숨이 진 뒤에도 그 홉뜬 눈을 감지 않았읍니다. 물론 나는 고약한 년이지요. 그 를 죽을 때까지 속인 몹쓸 년이지요. 그러나 그이는 나에게

“괴롭지”

라고 묻지 않았어요.

”배앝아”

라고 하지 않았어요. 돌려내려고 내 입에 손까지 넣지 않았어요. 그러다가 악을 삼키지 않고 그저 있음을 보았으면 내 마음은 어떠하든지 그이는 죽어가면서도 나를 생각한만큼 거룩한 사랑을 가진 그이는 기뻐해야 옳을 일이 아니에요. 좋아해야 옳을 일이 아니에요. 그렇게 성을 내고 나를 흘길 일이 무엇이에요. 내 그른 것은 어찌 갔든지 그때에는 그이가 야속한 듯싶었어요. 야속하다니보담 의외이었어요. 그런데 시방 와서는 그 흘긴 눈이 떠오를 적마다 몸서리를 치면서도 어째 정다운 생각이 들어요. 그립은 생각이 들어요.

<1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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