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형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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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형근(池亨根)

  • 공개되어 있는 내용이 없어 2009.9.23~25일 직접 입력해서 올립니다.
  • 입력본은 학원출판공사의 학원한국문학전집 4권입니다.

지은이

나도향

출전

조선문단 3, 4, 5월호, <1926>

본문

1

지형근(池亨根)은 자기 집 앞에서 괴나리 봇짐 질빵을 다시 졸라매고 어머니와 자기 아내를 보았다. 어머니는 마치 풀 접시에 말라붙은 풀껍질같이 쭈글쭈글한 얼굴 위에 뜨거운 눈물 방울을 떨어뜨리며 아들 헝근을 보고 목메는 소리로,

“몸이 성했으면 좋겠다마는 섬섬약질이 객지에 나서면 오죽 고생을 하겠니. 잘 적에 더웁게 자고 음식도 가려먹고 병날까 조심하여라! 그리고 편지해라!”

하며 느껴운다.

형근의 젊은 아내는 돌아서서 부대로 만든 행주치마로 눈물을 씻으며 코를 마셔 가며 울면서도 자기 남편을 마지막 다시 한 번 보겠다는 듯이 훌쩍 고개를 돌리어 볼 적에 그의 눈알은 익을 등 말 등한 꽈리같이 붉게 피가 올라갔다.

”네, 네!”

형근은 대답만 하면서 얼굴빛에 섭섭한 정이 가득하고 가슴에서 북받치는 눈물을 참느라고 코와 입과 눈썹이 벌룩벌룩한다.

동리 사람들이 그 집 문간에 모두 모여 섰다. 어렸을 적 친구들은 평생 인사를 못 해 본 사람들처럼 어색한 어조로 인사들을 한다.

어떤 사람은 체면치레로 말 한 마디 던져 버리고 그대로 돌아서 저쪽에 가 서는 사람 들도 있지마는, 어떤 늙은이는 머리서부터 쓰다듬어내려 마치 어린애같이 볼기짝을 두드리면서,

“응, 잘 다녀오게, 돈 많이 벌어 가지고 오게. 허어 기막힌 일일세, 자네 같은 귀동이 노동을 하려고 집을 떠나간다니 자네 어른이 이 꼴을 보시면 가슴이 막히실 일이지.”

하는 두 눈에서는 진주 같은 눈물이 괴어 오르다가 흰 눈썹이 섬세하고 쌍꺼풀이 진 눈을 감았다 뜰 때 희끗희끗한 눈썹 위에는 눈물이 구을러 맺힌다. 노인이 우는 바람에 어머니와 아내의 울음소리는 더 잦아지며 동리 집 노파들도 눈물을 씻고 젊은 장정들은 초상집에 가서 상제 우는 바람에 부질없이 나오는 울음을 참으려는 것같이 코들만 들이 마시기도 하고 눈만 슴벅슴벅하고 있다.

형근도 눈물을 씻으며 어머니께 인사를 하고 다시 동리 사람을 향하여 작별을 하였다.

자기 아내는 도리어 보는 것이 마음을 약하게 하여 주는 것이며 장부의 할 만한 것이 아니라는 듯이 보지도 않고 돌아서서 동구로 향하였다. 동리 늙은이와 자별한 친구들은 뒤를 따라와 주며, 어린아이들은 마치 출전 하는 장군 앞에 선 군대들같이 앞에도 서고 뒤에도 서서 따라온다.

형근은 가다가 돌아다보고 또 가다가 돌아다보았다. 얼마큼 오니까 아이들도 다 가고 따라오던 사람들도 다 흩어지고 자기 혼잣몸이 고개 마루턱에 올라섰다.

뒤를 돌아다보니 자기가 살던 이십여 호밖에 보이지 않는 촌락이 밤나무 느티나무 사이에 섞여 있다. 자기 집 앞에는 사람들이 흩어지고 어머니와 자기 아내만 여전히 자기 뒤를 바라보고 섰다.

그는 여태까지 나지 않던 눈물이 어디서 나오는지 폭포같이 쏟아진다. 아침 해가 기쁜 듯이 잔디 위 이슬에서 오색 빛을 반사하고 송장메뚜기가 서 있는 감발 위에 반갑게 튀어오르나 그것도 보이지 않는다.

분홍 저고리에 남조각으로 소매에 볼을 받아 입고 왜반물 치마에 부대쪽 행주치마를 입고 백랍 비녀에 가짜 산호반지를 낀 자기 아내 생각을 할 제 스물 두 살 먹은 이 젊은 사람의 가슴은 터질 것 같았다.

그는 한 발자국에 돌아서고 두 발자국에 돌아섰다.

멀리 보이는 자기 집은 아침 해의 그늘이 비추인 산모퉁이에 가리어 보이지 않았다.

2

그는 오 리쯤 가서 단념하였다.

“내가 계집애에게 끄을려서 이렇게 약한 마음을 먹다니! “

그는 마치 번개같이 주먹을 내흔들었다. 그리고 벌건 진흙이 묻은 발을 땅이 꺼져라 하고 더벅더벅 내놓았다.

그는 고개를 쳐들었다. 가슴을 내놓았다. 하늘은 한없이 높이 개었는데 넓은 벌판 한 가운데 신작로로 나서니까 그 가슴속에는 끝없는 희망이 차는 듯하였다.

가면 된다. 이대로 가기만 하면 내 주먹에 지전 뭉텅이를 들고 온다. 그는 열흘 갈 길을 하루에 가고 싶었다.

그때 강원도 철원군에는 팔도 사람이 다 모여들었었다.

그 모여드는 종류의 사람인즉 어떠냐 하면 대개는 시골서 소작농들을 하다가 동양척식회사에서 소작권을 잃어버린 사람이 아니면 일확천금의 꿈을 꾸고 허욕에 덤빈 사람들이었다.

그것은 철원에 수리조합이 생기며 그 개간 공사로 노동자를 사용하는 까닭도 있지만 금강산 전기철도(金剛山電氣鐵道)가 놓이며 철원은 무서운 속력으로 발전을 하는 데 따라서 다소간의 금융이 윤택하여지며 멀리서 듣는 불쌍한 사람들의 마음을 충동이어 ‘나도 철원, 나도 평강(平康)’ 하고 덤비게 된 것이다.

노동자자 모이어 주막이 늘고 창기가 늘었다.

자본 있는 자들은 노동자가 많이 모여들수록 임금을 낮춰서 얼마든지 그들의 기름을 짜내었다. 그러나 그렇게 기름을 짜낸 돈은 또 주막과 창기가 짜내었다. 남은 것은 언제든지 비인 주먹이었다.

평화스런 철원읍에는 전기 철도라는 괴물이 생기더니 풍기와 질서는·문란할 대로 문란하여졌다.

그래도 경상도, 경기도 여기저기 할 것 없이 모든 것을 쓸어버린 불쌍한 농민들은 요행을 바라고 철원, 평강으로 모여들었다.

지형근도 지금 그러한 괴물의 도가니, 피와 피를 빨아먹고 짓밟고 물어뜯고 볶는 도가니를 향하여 가며 가슴에는 이상의 꽃을 피게 하고 있는 것이나 마치 절벽 위에서 신기루(蜃氣樓)에 홀려서 한 걸음 두 걸음 끝을 향하여 나가는 것이다.

그는 오십 리를 못 가서 발이 부르텄다. 그는 한 시간에 십 리를 걸었다 하면 지금은 그것의 절반 오 리도 못 걸었다.

그는 발 부르튼 것을 길가에 서서 지끗지끗 눌러 보며 혼자 속으로,

“흥, 올 적에는 기차 타고 온다. 정거장에서 집까지가 오 리밖에 안 되니 그때는 잠간 걷지‥‥‥”

그러나 그는 주머니 속을 생각하여 보았다. 발병이 나지 않고 그대로 줄창 잘 걸어 간다 해도 닷새나 돼야 들어갈 것이다. 그러면 주머니에 있는 행자는 얼마냐? 빠듯하게 쓰고도 남을지 말지 하다.

해는 져 간다. 가슴에서는 공연히 무서운 생각이 났다. 만일 발병이 더하여 길을 못 가게 되면 어찌하라.

그는 용기가 줄어들고 희망에 구름이 끼는 것 같았다.

그는 비척비척 맥이 없이 걸어가며 궁리해 보았다. 그는 자기가 가는 길가에 아는 사람의 집을 모조리 생각해 보았다.

말할 만한 집이 하나도 없었으나 거기서 한 십 리쯤 샛길로 휘어 들어가면 거기 큰 촌이 하나 있었다. 그 촌 이름을 여기에 쓸 필요가 없으매 그만두지마는 그 촌에는 자기 아버지가 한참 호기 있게 돈을 쓰고 그 근처 읍에 이름있는 쪽자로 있을 때 소작인으로 있던 사람이 생각난다.

그는 그를 자기 집 사랑에서 자기 아버지 앞에 황송한 태도로 않아 있는 것을 보기는 보았을지라도 그의 집을 찾아간 일은 물론 없었다.

“옳지‥‥‥”

형근은 무릎을 쳤다.

“김서방을 찾아가면 얼마간이라도 돌릴 수가 있을 터이지, 거저 달래는 것인가? 돌아올 때 갚을걸!”

그는 김서방의 상전이란 관념이 있다. 옛날에 자기 아버지의 은덕으로 살아간 사람이니까 은덕을 베푼 자의 아들의 편의를 보아 주는 것도 떳떳한 일이라 하였다.

즉 자기 마음이 그러니까 남의 마음도 그러하리라 하였다.

그는 허위단심 김서방 집을 찾았다. 그 집 앞에는 휀한 논과 밭이 있고 집은 대문이 컸다.

주인을 찾으매 정말 김서방이 나왔다. 김서방은 반가와하면서도 놀랐다.

“이게 웬일야?“

김서방은 존대도 아니요 어리벙벙하게 말을 해 버렸다. 형근은 이것이 의외였다. 아무리 세상이 망해서 내가 제 집을 찾아왔기로 어디를 보든지 말버릇이 그렇게 나오지는 못 할 것이었다.

“어서 들어가세.“

이번에는 허세가 나왔다. 형근의 얼굴은 노래졌다가 다시 붉어졌다.

그는 대답이 없었다. 마당에 서서 해만 바라보았다. 해는 벌써 저쪽 서산 위에 반쯤 걸 리었다.

그러나 그는 단념하였다. 자기가 노동을 하러 괴나리봇짐을 나가는 이 시대에서는 무엇보다도 돈이 있어야 한다. 돈만 있으면 무엇이든지 된다. 양반도 되고 남을 부릴 수도 있으니까 자기도 돈을 벌어서 다시 옛날의 문벌을 회복하고 남도 부려 보리라 하였다. 그러니까 지금은 참아야 한다. 숙명적으로 그는 자기가 이렇게 된 것이니까 단념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옛날에는 문벌만 있으면 무슨 짓 — 사람을 죽이고도 무사하였던 것이나 마찬가지로 지금은 돈만 있으면 무슨 짓이든지 괜찮다는 관념이 한층 깊어지며 그는 얼핏 목적지에 가서 돈을 벌어 가지고 오고 싶었다.

그는 분을 참고 그 집에서 잤다. 김서방은 옛날의 어린 주인을 잘 대접하였다. 그는 밥상을 내놓으면서도 웃고, 정한 자리를 펴 주면서도 웃었다. 또는 떠날 때도 종종 들르라고 하면서 웃었다.

김서방은 지금처럼 만족하고 좋은 때가 없었다. 그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여태까지 자기가 깨닫지 못하였던 자랑을 깨달은 까닭이다. 즉 옛날에 자기가 고개를 숙이던 사람의 자식이 자기 집에 와서 숙식을 빌게 될 만큼 자기가 잘된 것에 만족한 것이었다.

형근은 또 주저주저하였다. 어젯밤부터 궁리도 하여 보고 분한 생각에 단념도 하여 보고 다시 용기도 내어 보던 돈 취할 일, 가장 중대한 일이 그대로 남은 까닭이었다.

그는 눈 딱 감고,

“여봅쇼! “

하였다. 그는 목소리가 떨리며 자기가 얼마나 비열하여졌는지 스스로 더러운 생각이 났다.

말을 하였다. 김서방은 벌써 알아챘다는 듯이 또 웃으며 생색내고 소청한 돈의 삼분지 이를 주었다.

형근은 그 돈을 들고 나오며 분개도 하고 욕도 하고 또는 홀연한 생각이 나서 정신없이 앞만 보고 갈수록 그는 돈이 얼마나 필요 한가를 새삼스러이 느끼는 것 같았다.

3

형근은 다리로 자기가 걸어온 것이 아니라 팔과 머리로 다리를 끌어온 것 같았다.

그는 예정보다 사흘이 늦어서 철원에 도착하였다. 그는 한 다리를 건너면서 두 팔을 벌릴 듯이 반가와하였다. 그는 자기더러 오라고 편지를 한 동향 친구를 찾아가서 지금까지 지고 온 봇짐을 벗어 놓을 때 그는 모든 괴로움과 압박에서 벗어나는 듯하였다.

그러나 그의 짐을 벗어 놓은 것은 어깨를 가볍게 함이 아니라 그 위에 더 무거운 짐을 지우기 위함이었다.

그는 자기 친구를 찾았을 때 여간한 환멸을 느끼지 않았다.

우선 그가 있는 집이라는 것은 마치 짐승의 우릿간과 같은데 거기서 여러 십 명 사람 들이 도야지들 모양으로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땅을 파고 서까래를 버틴 후 그 위에 흙을 덮고 약간의 지푸라기로 덮어 놓은 것이 그들의 집이다. 방안에는 발에는 감발이며 다 떨어진 진흙 묻은 양말 조각이 흐트러 있고 그 속은 마치 목욕탕에 들어간 것같이 숨이 막힐 듯한 냄새가 하나 가득 찼었다.

물론 광선이 잘 통할 리가 없었다. 캄캄하여 눈앞을 잘 분간할 수 없는 그 속에는 사람의 눈들만 이리 굴고 저리 굴고 하였다. 그는 손으로 더듬어서 그 속을 들어갔다.

발길에는 사람의 엉덩이도 채여지고 허구리도 건드려졌다. 그럴 적마다 그들은 굶주린 맹수 모양으로 악에 바친 듯이 소리를 질렀다.

그는 친구의 권하는 대로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여러 사람들에게 인사를 시켰다.

새로 온 사람이라고 여러 사람들은 절을 하다시피 반가와 하였다. 저 구석에서 다섯 직째나 학질을 앓던 사람까지 일어나 인사를 하고 눕는다. 그들에게는 이 새로이 온 친구가 반가운 친구라고 함보다도 다시없는 먹이였다.

그들은 새로 온 사람의 노자냥 남은 것을 노리어서 그것으로 다만 한때라도 탁주 몇 잔, 육회 몇 접시를 토색하기 위하여 자기네의 가진 아첨과 가진 친절을 다하는 것이다.

어떠한 사람은 동향 사람이라고 가까이 하려 하였다. 또 어떤 사람은 동성 동본이라고 친절히 하였다. 또 어떠한 사람은 어려서 자기 아버지와 형근의 아버지와 친하였다고 세교라고 늦게 만난 것을 한탄하였다.

이래서 형근은 처음 이 움 속에 들어올 적에 느끼는 환멸이 어느덧 신뢰하는 마음과 이상과 기쁨으로 가득 차 버렸다. 그날 저녁에 노자푼 남은 것으로 그 근처 선술집에서 두서너 사람과 탁주를 먹으며 편지하던 친구에게 물었다.

“자네는 그 동안에 돈 좀 모았나?”

“아직 모으지는 못하였네. 그러나 인제 수 생길 일이 있지.”

친구는 당장에 수만금 재산을 한손에 움켜 쥘 듯이 말을 하였다. 그것도 그럴 것이 그는 아직까지도 황금 덩어리가 멀지 않은 장래에 자기 손목에 아니 들어올 리가 없으리라고 생각하는 까닭이다.

“설마 천 리 타향까지 나왔다가 맨손 들고 들어가겠나? 지금은 좀 고생이 되지마는 그래도 잘 부비대기를 치면 돈 몇백 원쯤이야 조반 전에 해장하기지.”

형근은 또 가슴속이 든든하여지며 이번에는 걸쭉한 막걸리는 그만두고 입 가볍고 상긋한 약주를 청하였다.

“그러나저러나 여러 형님네가 저를 위해서 어떻게 힘을 좀 써 주셔야겠읍니다. 형님들은 저보다야 경험도 많으시고 또 그런데 길도 좋으실 테니까요.”

형근은 눈이 거슴츠레해서 안주를 들며 말을 하였다.

“아따 염려 마시우. 내나 그 형이나 이런데 와서 서로 형제나 친척같이 생각할 것이 아니요.“

그 중에 머리 깎고 지까다비(地下足袋; じかたび) 신고 행전 친 노동자가 대답을 하였다.

“그럼 저는 형장만 꼭 믿습니다.“

”글쎄 염려 말아요.”

그날 저녁 그는 여러 가지 진기한 것을 보았다. 번화한 시가도 보고 또 술 파는 어여쁜 계집도 보았다. 그러고 여기서 쓰는 말이며 습속을 배웠다.

그는 어리둥절한 가운데에도 속이 느긋하고 만족하여 그대로 하루 저녁을 그 움속에서 자고 났다. 그는 고린내 나는 발이 자기 코 위에 올려 놓이고 허구리를 장작개비 같은 발이 디리질러도 그것이 화가 나지 않고 그 여러 사람을 오히려 동정하고 불쌍타 하는 생각을 가졌었다. 이들도 지금에는 이렇게 고생을 하지마는 나중에는 모두 돈들을 벌어 가지고 고향으로 돌아가면 호강할 친구 들이라고 생각하였다.

그 이튿날 새벽 다섯 시가 되더니 그 같이 자던 사람 중에서 서너 사람은 눈을 부비고 어디로인지 가는 것을 보았다. 그는 어제 자기가 올 적에도 보지 못한 사람이요, 또는 어느 틈에 들어왔는지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었다. 그가 나갈 적에 누가 한사람 인사하는 일도 없고 눈 한 번 거들떠보는 사람도 없었다.

그들이 나갈 적에 부산한 바람에 옆엣 사람들이 잠을 깨었다가 그들이 다 나가는 것을 보고,

“간나웨자식들, 나가면 곱상스리 나갈 것이지.“

하고 투덜대는데 그의 눈은 무서웠다. 마치 뒀다 만나자는 원수를 벼르는 것 같았다. 형근은 그것을 보고 그와 눈이 마주칠까 보아서 눈을 얼핏 감고서 아무리 생각하여 보아도 그러할 리가 없었다. 자기에게는 그렇게 친절히 하던 사람들로는 결단코 하지 않을 일이었다. 그는 그 노동자의 질투를 몰랐으므로 이런 의심을 품었으나 누구든지 이러한 사회에 있으면 그렇게 험상스럽게 될 수 있을 것을 몰랐던 것이다.

그가 다시 실눈을 뜨고 방안을 슬그머니 둘러볼 적에는 젖뜨려 놓은 싸리 거적문으로 아침 해가 붉은 빛을 띠고 들이비치는데, 그 해가 비치는 거적 위에서는 아까 그 불량한 노동자가 코를 땅에다 대고 코를 고는 바람에 땅바닥의 먼지가 펄썩펄썩 일어났다.

아침에 일어나자 어저께 그 지까다비 신고 각반을 쳤던 노동자가 형근을 깨웠다.

“세수하시우.“

그는 세수 옹배기에 물을 떠서 움 밖에 놓았었다. 형근은 황송하고 고맙다는 말을 하고 세수를 하였다. 그리고 아침 먹는 곳을 물었다.

“나만 따라오시우.“

형근은 자기 친구(편지한 친구)를 찾으려 하였으나 그자의 수선 바람에 그대로 끄을려 갔다.

술집에 가서 해장술에 술국밥을 먹었다. 시골서는 먹어 보지도 못하던 것인데 값도 왜 싸다 하였다. 물론 돈은 형근이가 치렀다. 인제는 주머니 밑천이라고 은화 이십 전 하나하고 동전 몇 푼이 남았을 뿐이다. 그러나 그는 내일은 일구멍이 생기겠지 하였다.

돌아오는 길에 그자는 형근의 행장에 무엇이 있는가 물어 보았다. 그는 조선무명 홑옷 두 벌과 모시 두루마기 두 벌과 삼승버선이 한 벌 있다 하였다.

그것은 자기 집안이 풍족할 때 자기 아버지가 장만하여 두고 입지 않고 넣어 두었던 것을 이번에 자기 아내가 행장에 넣어 주었던 것이라 그것이 그에게는 다시없는 치장이요 또는 문벌 자랑거리였다. 그자는 그 말을 듣더니 코웃음을 웃으면서 형근을 비웃었다.

“그까짓 것은 무엇에 쓴단 말이요, 여보!”

형근이 자기 속으로는 무척 자랑삼아 말한 것이 당장에 핀잔을 받으니까 무안하기도 한 중에 또 이상스러웁고 놀라왔다. 이런 곳에서는 그런 것쯤은 반 푼어치의 값이 없나 보다 하는 생각을 하니까 자기의 말한 것이 창피하기도 하고 이제는 자기가 무슨 사치하고 영화스러운 생활을 할 수 있게 되었나 보다 할 때 즐거웠다.

그날 저녁에 형근은 지까다비 신은 사람에게 끄을려왔다.

그가 저녁을 같이 먹으러 가자 하면서 끝엣말에다가

  • “내가 한턱 씀세.”

하였다.

형근은 막걸리 서너 잔에 얼근하였다. 두 사람이 술집에서 나와서 서너 집 지나오다가 그자는 형근을 툭 치며,

“여보, 일구녕 뚫어났쇠다.“

“어디요?“

“허허 그렇게 쉽게 알으켜 주겠소? 한턱 쓰소.”

형근은 좋기는 좋지마는 한턱 쓰라는 데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다만,

“허허.“

하고 반벙어리처럼 한탄 비슷한 대답을 하였을 뿐이다. 그런즉 이런 어리보기쯤야 하는 듯이 두서너 번 까불러 보다가 그자가 미리 묘책 하나를 알려 주었다.

그들은 공연히 빙빙 장거리를 돌면서,

“그렇게 합시다. 그까짓 것 무슨 소용있소. 땀 한 번 배면 고만일걸. 돈푼이나 수중에 들어오면 양복 한 벌을 허름한 것 사 입어요. 그러면 더럼 안 타고 오래 입고 어디 나서든지 대우받고 좀 좋소? 여기서 조선옷 입는 사람야 헐 수 할 수 없는 사람들이나 입지 노형 같은 젊은이가 뭘 못 해본단 말요. 그렇게 합시다.“

형근은 그자의 말대로 곧 귀를 기울일 수는 없었다. 일이 너무 크고 자기의 이성으로는 판단하여 결단하기가 대단히 어려운 까닭이다.

그는 이럴까 저럴까 난처한 생각으로 다만,

”글쎄요, 글쎄요‥‥‥”

하기만 하며 등싯등싯 그자의 뒤만 따라다녔다. 그러니까 그자는 화를 덜컥 내며,

“여보, 이런 데 와서는 매사에 그렇게 머뭇거리다가는 안 돼요. 여기가 어떤 덴데 그렇소, 엥? 난 모르오. 엑 맘대로 하시로.”

하고 홱 가 버리려 하니까 형근은 약한 마음이 하는 수 없이 그자를 다시 불러,

“그렇게 역정야 낼 것 무엇 있소. 좋을 대로 하십시다그려.“

“글쌔, 좋을 대로 누가 하지 않는댔소. 노형이 자꾸 느리배기를 부리니까 그렇지.”

4

옷을 팔았다.

형근은 친구에게 끌려서 어떤 앉은 술집으로 들어갔다. 그 친구가 두루마기 판 것을 자기 손에 쥐어 줄 줄 알았더니 그것도 그렇게 하지 않고 첫걸음에 가는 곳은 이화(梨花)라는 여자가 술을 파는 내외 술집이었다.

“나만 따라오시우. 내 어여쁜 색시 구경을 씨켜 줄 터이니!”

어깨가 으쓱하여지며 두 눈을 찡긋찡긋하는 그자의 뒤를 따라가며 어여쁜 색시라는 말을 들으니까 속으로는 당길심도 없지 않았으나 첫째 노는 계집 옆에를 가 보지 못한 것은 말할 것 없고 그런 종류의 여자라면 겁부터 집어먹을 줄밖에 모르는 그는 가슴이 두근두근하여질 뿐이다.

“이런 데를 오면은 계집 다루는 것도 배워야 합니다.“

형근이 쭈볏쭈볏하는 것을 보고 그자는 속으로 (네가 아직 철이 안 났구나!) 하는 듯이 코웃음 섞어 말을 하였다.

형근은 그래도 속에는 빳빳한 맛이 있어서 그자에게 멸시를 당하는 것이 창피도 하고 분하기도 하나 사실 뻗댕길 자신도 없었다. 그는 그저 우물쭈물하며 그 뒤를 따라갈 뿐이다. 그렇지만 따라가기는 하면서도 몹시 조심이 되고 조마조마한 생각이 나며 자기 몸에 창피한 곳이나 없나 하는 생각이 나서 걱정 이었다.

마루 앞까지 서슴지 않고 들어선 그자는,

“여보, 술 파우!”

하고 소리를 높여 제법 의젓하게 주인을 부르더니 서투른 기침을 하였다.

안방에서는 여러 사람들이 술이 취하여 장거리의 장군들처럼 제각기 떠들다가 그 소리에 떠들던 것까지 뚝 그쳤다.

그 왁자지껄하던 남자들의 거친 목소리를 좌우로 물결 헤치듯이 확 헤치고 복판을 타고 나오는 연한 목소리는 주인의 목소리였다.

“네, 나갑니다.“

이 소리를 듣더니 그자의 눈은 끔뻑하여 졌다. 그러더니 형근을 한 번 본 후에,

“이거 손님이 왔는데도‥‥‥ 아무도 없소?”

하고 짐짓 못 들은 체하고 이번에는 더 높은 소리를 질렀다.

“나갑니다.“

하고 그 여자는 소리를 질렀다. 그러더니 문이 열리며 그 여자의 치맛자락이 문에 스치며 나오는 것이 보였다.

“어서 오십시요, 저 건넌방으로 들어가시지요.“

형근의 눈에는 머리를 치거슬러 빗어 왜밀칠을 하여 지르를 흐르게 하고 횟박쓰듯 분을 바르고 값 낮은 연지를 입에다 칠하고 금니한 이 사이에서 껌을 딱딱 씹으며 나온 이화라는 여자가 몹시 아름다웁게 보일 뿐 아니라 지투신은 버선까지 유탕한 마음을 일으키게까지 하였다.

그자는 이화라는 여자를 보더니,

“오래간만일세그려! “

하며 그 손을 잡았다. 그것은 나는 이렇게 이런 이화 같은 미인과 능히 수작을 하며 손목을 잡을 만한 자격과 수단이 있다는 것을 지형근에게 자랑하고 싶었던 것이다.

“글쎄요.“

이화라는 여자는 아무렇지도 않은 머리를 다시 만지면서 마뜩치 않게 네가 웬 <허게>냐 하는 듯이 시덥지 않은 어조로 대답을 하여 버렸다.

“그런 게 아니라 이 친구허구 술이나 한잔 나눌까 해서 왔지.“

연해 생색을 내려고 하면서 이화에게 아첨을 하려는 듯이 치어다본다.

“어서 건넌방으로.“

두 사람은 건넌방으로 들어갔다. 그자는 슬그머니 형근을 보더니,

“어떻소? 괜찮지? 소리 한번 시킬 터이니 들어 보시우.”

상을 들고 이화가 들어왔다. 형근의 눈에는 내외 술집에서 한 순배에 사오십 전 하는 술상이 얼마나 풍부하고 진미인지 몰랐다.

그는 어려서 자기 집이 상당한 재산을 가지고 지낼 적에도 이러한 음식을 자기 앞에 차려 주는 것을 먹어 본 일이 없었다.

그는 구미가 동하기보다는 덜컥 가슴이 내려앉았다. 이 비싼 술값을 어떻게 치를까? 그는 속이 초조해지면서 겁이 났으나 나중으로 그자를 믿었다는 것보다는 내가 아니, 너 알아 하겠지 하는 마음이 나기는 났으나 그래도 속이 편치는 못했다.

우선 술잔이 자기에게 돌았다. 형근은 마치 남의 집 부인을 보는 것 모양으로 그 여자를 바라보지 못하다가 술잔을 들면서 바로 보았다.

형근은 그 술 붓는 여자를 이제야 비로소 똑바로 보았다 하여도 거짓말이 아니었다.

형근은 그 여자를 보고 마치 뜻하지 아니한 곳에서 뜻한 사람을 만난 것같이 놀라지 아니치 못하였다. 반가웁다 하면 반가운 일이요, 괴변이라 하면 이런 괴변이 또 어디 있으랴. 그 여자는 형근의 고향에서 한 동리에 자라난 여자다. 그래도 행세깨나 한다고 하여 어려서부터 규중에 들어앉아 배울 것이란 남겨 놓지 않고 배우고 읽힐 젓이란 모조리 읽히더니 불행히 그가 열 세 살 되던 때 아버지가 돌아가고 홀어미 혼자 그 딸을 길러 오는 데 본시 청빈한 집안이라 일가 친척이 있기는 있지마는 인심이 점점 강박하여짐을 따라 돌아보는 이 없으므로 그 여자가 열 네 살 되 던 해 그 어머니는 딸을 데리고 자기 친정 오라버니를 따라갔다.

어려서 이웃집에 살았으므로 서로 보고 알아서 말은 서로 하지 않았으나 낯은 서로 익었었던 것이라 지금 보니 노성은 하였으나 어렸을 때 모습이 더욱더욱 분명히 나타난다.

그러나 만일 참으로 이서방 댁 규수라 하면 나를 몰라볼 리가 없는데 나를 보고 그래도 기척이라도 있었을 것이 아닌가.

그는 썩 감개가 무량하여지면서 또는 기가 막힌다는 듯이 술상 귀퉁이에 고개만 숙이고 무슨 생각인지 정신없이 앉아 있었다.

같이 간 그자는,

“여보, 노형은 무슨 생각을 그리 하슈?”

하며 형근을 본즉 형근은 고개를 들다가 다시 이화를 한 번 보더니 그자를 보고,

“뭐 별로이 생각이라고는 하지 않소이다.“

“허허 그럼 왜 고개를 숙이고 계시단 말이요? 대관절 주인하고 인사나 하시우.”

형근은 이런 인사를 해 본 일이 없으므로 속으로 몹시 조심을 하고 창피한 꼴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였다. 그래서 우선 속을 가다듬느라고 서투른 기침 한 번을 하였다.

솜씨 있는 이화의 통성명하는 것을 받아 어색한 형근의 인사가 있은 후 형근은 이화에게 고향을 물었다.

“고향이 어디슈? “

“‥‥‥예요. “

“그럼 XX동리 살지 않으셨소?”

”네.“

“그럼 지‥‥‥댁을 아시겠소?”

“아다뿐예요. 바로 이웃에 살았는데요. 떠나온 지가 하도 오래니까, 지금도 여태 거기 사시는지요?“

“살지요. 그런데 당신 아버지가 당신 어려서 작고하셨지요?”

“네, 그런 것까지 어떻게 아세요?”

“알죠. 그럼 혹시 나를 못 알아보시겠소?”

이화는 한참이나 다시 자세히 들여다보더니 그래도 알아보지 못한 듯이 고개만 갸웃 하고 있다.

“글쎄요. 퍽 많이 뵌 듯하지마는 생각이 잘 나지 않는데요. XX동리 사셨에요?”

“허허, 너무 오래 되어서 잊은 것도 용혹무괴(容或無怪)한 일이지마는 이웃에 살던 사람을 몰라 본단 말이요? 내가 지‥‥‥의 아들이요.”

이화의 눈은 동그래질 대로 동그래지며,

“네? “

하고 말이 안 나오는 모양이다.

형근도 자기 신세가 이렇게 된 것을 알리기가 부끄럽다는 듯이 말이 없이 앉았고, 그자는 둘이 안다는 것이 신기하다는 듯이 손뼉을 치며,

“아, 그래 서로 알았던가? 그것 참 신소설 같군.“

하는 두 눈에는 질투가 숨은 웃음이 어리었다.

“그런데 여기는 어째 오셨어요? 그렇지 않아도 처음부터 낮은 익어 보이었으나 지주사실 줄야 꿈엔들 알았을 리가 있어요?”

“나 역시 그럴싸하기는 하지만 어디 분명치가 못하니까 속으로는 반가우나 말을 못한 거 아니오?”

형근은 세상을 몰랐다. 그가 고향에서 옛날에 알던 규수(지금의 창녀)를 만나 반가웁기가 한량이 없었지마는 다시 생각하니 아니꼽고 고개를 내두를 만큼 더러웠다.

그는 옛날 일로부터 오늘 이 자리까지 이화라는 창녀의 신변을 두르고 싼 환경의 물질이 어떻게 어떠한 자극과 영향을 주고 또는 질질 끌어다가 여기까지 왔는지를 해부하고 관찰하고 판단할 능력이 없었다. 그는 다만 단순한 직관과 박약한 추측으로 경솔한 독단을 내리어 인간을 평정(評定)하여 버릴 뿐이다.

이화가 오늘 이 자리에 앉았는 것도 그것이 다른 사회적으로 더 큰 원인이 있는 것은 생각할 여지도 없이 이화 자신이 말할 수 없는 잘못 죄악을 범행한 까닭으로 오늘 이렇게 된 것이라고밖에 생각지 못하였던 것이다.

그러한 관념으로 이화를 볼 때 형근의 눈에는 이화라는 창기가 옛날 이야기에 나오는 음부 독부로밖에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그것을 생각하면 반가웁던 생각도 어디로 가고 다만 추악한 생각뿐이 나서 그 자리에서 피해 가고 싶을 뿐만 아니라 여태까지 주저하던 맘, 차리려는 생각, 쭈뼛쭈뼛하던 생각은 어디로 가고 마치 죄인을 꿇어앉힌 것같이 우월감과 호기가 두 어깨와 가슴속에 가득할 뿐이었다. 그리고 창기인 이화를 꾸짖어 마음을 고쳐 주고 싶은 부질없는 친절한 마음까지 났다.

자기의 영락, 얼핏 말하면 타락은 어느 정도까지 당연한 일일는지 알지 못하나 첫째 돈 많고 땅 많고 입을 것 먹을 것이 많던 지XX의 외아들이 철원 바닥에까지 굴러와서 노동자 중에도 그 중 엉터리하고 얼리어 한 순배에 사오십 전짜리 술을 사먹으러 왔다는 것은 이화라는 여자가 얼핏 생각하기에는 그렇게 의외의 일이 없는 것이다.

자기가 이렇게 된 것을 그 사람에게 보이는 것도 부끄러운 게 아닌 게 아니지마는 그 부끄러움까지 지나쳐서 지XX의 아들의 일이 알고 싶지 않은 것도 아니었다.

술잔을 들고 의기 있게 자기가 계집을 기롱하는 솜씨를 보이어 상대자를 위압하려던 그자는 두 사람이 서로 동향 친구라는 이유로 자기 같은 것과는 서로 말할 여지가 없이 이상한 감격과 비극적 분위기에 싸여 있는 것을 보고 자기도 그 분위기 속에 참가를 하든지 그렇지 않으면 그 분위기를 헤쳐 버리고 다른 기분을 만들어야 할 것을 깨닫고 말을 꺼내었다.

“아니 고향 친구를 만났으면 고향 친구끼리나 반가왔지 딴 사람은 술도 못 먹는담?”

재담 섞어 솜씨 있게 말을 한다는 것이다.

이화는 손님의 마음을 거슬리지 않으려고 억지로 웃음을 웃어 마음을 가라앉혀 놓은 후,

“천리 타향에 봉고인이라는 말이 있지 않아요? 조주사 나리는 공연히 그러셔. 그만한 것은 아실 만하시면서. 약주를 처음 잡숫는 것도 아니요 세상 물정도 짐작하실 듯한데 이런 때는 왜 그리 벽창호야.”

이화는 생긋 웃었다. 그 웃음 하나가 조화 부른 웃음이던지 소위 조주사의 마음도 흰죽 풀어지듯 하였다.

“히히, 내가 벽창혼가, 이화하고 말이 하고 싶어 그랬지.”

“말은 넌지시 하는 말이 비싼 말이라나? 손님도 계시고 한데 무슨 말을 한단 말이요.“

“그럼 언제?“

“글쎄 물어 봐서는 무엇을 하우, 뻔히 알면서‥‥‥”

하고 웃음 섞인 눈으로 쨍그리고 본다.

“옳지, 옳지.“

“글쎄 좀 가만히 있에요. 옳지는 무슨 옳지야. 부증난 데 먹는 가물치는 아니고. 이 손님하고 이야기 좀 하게 가만 있어요.”

하고 고개를 형근에게 돌리려다가 잔이 비인 것을 보더니 조주사란 자에게 술을 권하였다.

“자, 약주나 드시우.”

하고 잔이 나니까 다시 형근을 주면서,

“그런데 여기는 어째 오셨에요. 참 반갑습니다. 벌써 우리가 거기서 떠나서 외가로 간 지가 칠팔 년 됩니다.“

“그렇게 되나 보.”

형근은 자기도 모를 한숨을 쉬더니,

“나 여기 콘 거야 말할 것까지 있겠소? 그런데 당신은 어째 이렇게 되었소?”

하며 동정한다는 듯이 눈을 아래로 깔았다. 이 소리를 듣던 조주사라는 자가,

“왜 어때서 그러쇼. 인제 얼마만 있으면 내 마마가 된다우.”

하더니 혼자 신에 겨워서 허리를 안고 웃어 댄다.

두 사람은 그 소리를 들었는지 말았는지,

“그 동안에 제가 지내 온 이야기는 다해 무엇하겠읍니까? 안 들으시는 것이 상책이지요.“

그의 얼굴에는 수심이 가득하여지면서 목소리가 비통하여진다.

“차차 두고 들으시면 아시지요.”

하고 다시 고개를 숙일 뿐이다.

“그래도 어디 이런 기회가 자주 있겠소? 만난 김이니 이야기 겸 말해 보구려. 대관절 언제 이곳으로 왔소?”

하니까 조주사라는 자가 가로맡아 나오면서,

“온 지 벌써 반 년이 되나? 그렇지, 아마?“

하고 말고기 설익은 것 같은 얼굴을 이화에게 가까이 갖다 대며 들여다본다.

“네, 한 반 년 돼요.”

이화는 고개를 그자 얼굴에서 비키면서 말을 하였다.

대여섯 잔이 넘어 들어간 술이 얼근하게 돈 조주사라는 자는 자기 얼굴을 피하는 이화를 뚫어지게 보더니 다시 제 손으로 자기 뺨을 한 번 탁 치며,

”왜 그래, 어때 그래? 사내 같지 않아? 얼굴에 뭐 묻었어? 왜 피해.”

하고 왜가리같이 소리를 지르더니 다시 슬쩍 농을 쳐서,

“하하, 그럴 것 뭐 있나? 이런 놈도 있고 저런 놈도 있지. 잘못했네, 응, 그만두세.”

“무얼 잘못했어요. 글쎄 아까 말한 것 있지, 우리는 너무 말을 하면 안 된다니까 그래요, 가만히 있어요.”

“어떻게?“

“색시 처럼.“

형근은 우습기도 하고 또 심심치도 않아서 싱긋 웃다가 다시 이화를 보고,

“그 후에 외삼촌 댁에서 언제까지 지냈단 말이요?“

“한 이태 지냈죠.”

“그 후에는?“

할 때 조주사라는 자가 잔을 들더니 소리를 지른다.

“술 좀 따라! 술 먹으러 왔지 이야기하러 왔나 퉤퉤.“

하고 침을 타구에 뱉더니 지형근을 보고,

“노형, 실례가 많소. 그렇지만 대관걸 말씀요, 술이나 자셔 가면서 이야기를 해야 할 것이 아니오. 이야기 안 하는 나는 어떻게 하란 말씀요, 그렇지 않소?~”

“그럴 듯한 말씀요. 그럼 우리 약주를 자십시다. 오히려 내가 실례가 많습니다.“

“아따 천만에 그럴 리가 있나요? 두 분 이야기에 내가 방해가 된다면 먼첨 가죠.”

이번에는 이화가 두 눈이 상큼하여지며,

“온 조주사도 미치셨소? 그게 무슨 말씀이오, 사내답지 못하게. 두 분이 오셨다가 혼자 가신다니 어디 가 보시우, 가 봐요. 가지 못해도 바보.”

하고 입을 삐죽하였다. 조주사라는 자는 바로 일어서더니 모자도 들지 않고 문 밖으로 나가려 하니까 이화가 본 체 만 체하더니 슬쩍 뒷손으로 그자의 옷자락을 잡으며,

”정말요? 이거 너무 과하구겨. 내가 미안하구려, 어서 들어오시우.”

하며 일어서서 잡으니까 형근은 숫배기 마음에 가슴이 덜렁하다.

“이거 정말 노하셨소? 가시려거든 같이 갑시다.“

하고 따라 나서려고까지 할 때,

“아니 놔요, 놔, 그런 법이 어디 있담?”

“잠깐만 참으시우, 자 들어와요.”

조주사라는 자는 못 이기는 체하고 들어오더니 자리에 앉아 깔깔 웃으며,

“가기는 어디를 가, 모자도 안 쓰고‥‥‥”

하며 술잔을 든다. 형근은 속은 것이 분하고 속힌 것이 밉살스러우나 어떻든 홀연해졌다.이화는,

“정말 붙잡은 줄 아남? 한번 해 본 것 이지.“

이러는 서슬에 술이 얼마간 더 돌아갔다. 조주사는 이화에게 술을 서너 잔 권하였다. 이화는 별로 사양도 하지 아니하고 그 술을 받아먹었다.

형근의 머릿속에서는 이화라는 창녀가 마치 하늘에서 죄짓고 땅에서 먹구렁이 노룻을 하는, 옛날의 삼 신선 중의 하나이나 마찬 가지로 자기의 지은 허물로 말미암아 이렇게 하게 되었다고 해석할 수밖에 없었다.

옛날에 귀한 것, 깨끗한 것, 아름다운 것은 이화 자신의 잘못으로 다 썩어지고 오늘에 남은 것은 간악한 것, 음탕한 것밖에는 없으리라는 생각밖에 없었다. 즉 이화는 옛날의 XX의 딸의 죄악의 탈을 쓴 화신(化身)이다.

착한 자는 언제든지 착하고, 악한 자는 언제든지 악하다.

그것은 날 적에 타고난 숙명 즉 팔자다. 이것이 그의 인생관이다.

그러므로 이화는 팔자를 창기로 타고났으므로 그는 언제든지 창기밖에 못 된다. 그의 가슴속에나 핏속에는 다른 것은 조금이라도 섞이었을 리가 없었던 것이다.

형근도 술기운이 돌면서 얼기설기하게 척척 쌓였던 감정이 흥분됨을 따라서 마치 초가집 장마 버섯 모양으로 떠올라 오기를 시작하였다.

그는 자기가 아버지에게 듣던 것이나 마찬 가지 교훈을 이화에게 하여 주고 어른이 아이에게, 친구가 친구에게, 형이 아우에게 하여 주는 것 같은 책망과 충고를 하여 주고 싶었다. 말하자면 이웃집 부정한 처녀를 종아리치는 듯한 심리로 이화를 보고 앉았다.

“왜 당신이 이런 짓을 하고 앉았던 말이요?”

형근은 젓가락짝으로 상머리를 두들기며 엄연하고 간절한 말로 말을 하였다.

“당신도 당신 아버지와 당신 집을 생각해야죠.“

형근의 말은 틀은 잡히지 않았으나 꾸밈이 없고 진실하고 힘이 있었다.

“나는 이런 데서 당신을 보는 것이 우리 누이를 보는 것보다 부끄러워요.“

이화의 가슴속에는 대답할 말이 많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말이 없었다. 그는 다만 그 말을 듣고 있었다. 방 안은 갑자기 엄숙하여졌다. 조주사라는 자는 처음에는 눈이 둥그래지더니 나중에는,

“힝.“

하고 코웃음을 쳤다.

“언제든지 이 모양으로 있을 터이요? 그래도 어째서 마음을 고칠 수 없겠소?”

이화는 그 <마음을 고칠 수 없겠소?> 하는 소리를 듣고 형근을 기가 막히다는 듯이 치어다보았다.

그러더니 안타까움에서 나오는 눈물이 그의 두 눈에 진주같이 고였다.

조주사는 이화가 우는 것을 보더니 제법 점잖은 듯이,

“손님이 무슨 말씀을 하시면 잘 명심해 들을 것이지 울기는 무얼 울어!”

하고 덩달아 책망이다.

“돌아가신 아버님의 이름을 더럽히는 것도 더럽히는 것이어니와—”

하다가 형근은 이화의 눈에서 눈물이 흐르는 것을 보고는 말을 그쳤다. 그는 너무 큰 감격 으로 인하여 자기의 감정이 찬지 더운지 알 수 없게 된 것 같았다. 그러나 그는 하던 말 을 다시 이어,

“살아 계신 어머니 생각은 하지 않소?”

할 때 이화는,

“어머니는 돌아가셨에요.“

하고 그대로 꺼꾸러져 운다.

형근은 이화가 우는 것을 볼 때 그는 놀랐다는 것보다도 기적을 보는 것 같았다.

그에게 눈물이 있었을 리가 있으랴. 자기도 자기 아버지가 돌아갔을 때 자기가 억제할 수 없는 눈물이 난 일을 당하여 본 일밖에 참으로 가슴속에서 펑펑 넘쳐흐르는 눈물을 흘려 본 일이 없었다. 자기 아버지가 돌아간 것이 자기로 보아서 세상에서는 가장 엄숙하고 비통하고 또는 위대한 사실인 동시에, 자기가 그렇게 울어 보기도 아마 전에 없던 일이요 또다시 없을 것이다.

그것은 지금이나 언제든지 그의 가슴에 속 깊이 깊은 인상으로 남아 있는 것이다. 그 인상은 때때로 자기에게 힘있는 정열과 감격을 주어서 이상한 감정의 세례를 받는 때가 있다.

이화가 운다. 샘물을 손으로 막는 것처럼 막을수록 북받쳐 올라오는 울음은 형근의 가슴속으로 푹푹 사무쳐 드는 것 같았다.

울음은 모든 비극을 알리는 음악이니 형근은 이 비극적 장면을 볼 때 말할 수 없이 위대한 사실을 목전에 당한 것 같았다.

꼭 자기 아버지가 돌아갔을 적에 자기가 받은 인상이나 별다름 없이 비통하고 엄숙하였다.

그는 까딱하면 따라 울 뻔하였다. 코도 벌룽거리는 것을 참고 눈에 눈물이 핑그르르 도는 것을 슴벅슴벅하여 참았다.

그러나 형근은 이화가 어째 우는지를 알지 못하였다. 옆에 있는 조주사라는 자는 이화의 어깨를 흔들면서 혀꼬부라진 소리로,

“글쎄, 울지 말어, 내가 다 알어, 이화의 맘을 나는 다 안단 말야. 자 고만두고 일어나요. 공연히 그러면 무얼해?”

형근은 속으로 알기는 무엇을 안다누? 무슨 깊은 의미가 있나 하는 궁금한 생각이 나나 속으로 참고 여태까지 아무 말도 못 하고 앉아 있다가 이화의 어깨를 조주사란 자 모양으로 흔들어 보며,

“글쎄, 울지 마쇼. 그만 그치쇼. 울지 말아요.“

하였으나 들은 체 만 체하고 엎드려 울 뿐이다.

형근은 나중에는 민망한 생각이 나서 말이 없이 앉았으려니까 조주사라는 자는 일껏 흥취 있게 놀 것이 깨어져서 분한 생각이 나서 혼잣말처럼,

“울기는 왜 쪽쪽 울어 재수없게 응? 쯧쯧.”

혼잣말같이 중얼거리며 화증을 내고 앉아 있다.

얼마 있다가 이화는 일어서서 아무 말도 없이 얼굴을 외면하고 바깥으로 나갔다.

조주사란 자는 형근을 보더니 눈짓을 하며,

“고만 갑시다.“

하고 입맛을 다셨다. 생각하니 더 앉았어야 재미도 없을 것이요, 또 재미있게 하자면 주머니 속 관계도 있음이다.

형근은 이마를 기둥에 받은 듯이 웬일인지 알 수가 없어서 멀거니 앉았다가 그대로 고개만 끄덕끄덕하고

“녜.”

하였을 뿐이다.

그렇지만 형근은 알 수가 없다. 어째서 창기인 이화의 눈에서 눈물이 났으랴?

얼마 있다가 이화는 손을 씻고 들어오며 머리 단장을 다시 하였다. 조주사라는 자는 일어서며 셈을 하였다.

“왜 그렇게 가세요? 제가 너무 실례를 해서 그러세요?“

하며 미안해한다. 조주사라는 자는 입에 달린 치사로

“아니 그럴 리가 있나. 다음에 또 오지.”

하며 마루에서 내려섰다. 형근은 여전히 큰 수수께끼를 품고 조주사의 뒤를 따라내려 갔다.

조주사는 문 밖에 나섰다. 형근이 마당에서 중문으로 나갈 때 이화는 넌지시,

“쉬 한 번 조용히 놀러 오세요.”

하였다. 형근은 대답을 한 둥 만 둥 바깥으로 나왔다. 조주사는 형근을 보더니,

“아주 채미 없었소.”

하며 입을 찡그린다.

형근은 재미가 있고 없는 것은 그만두고라도 이화의 눈물을 해석할 수가 없어서,

“대관절 이화가 왜 그렇게 울우?”

하고 물으니까 조주사라는 자는 손가락질을 하며 혀끝을 채고,

“허는 수 없어. 으례 그런 계집들이란 그런 것이 아뇨? 아마 노형이 전에 잘 살았다니까 지금도 전 같은 줄 알고 그러는 게지.“

“돈 먹으랴고?”

“암, 어떻게 그런 데서 구해나 줄까 하구 그러는 게 아뇨.”

“구허다니요?“

“지금은 팔려 와 있지 않소.”

5

형근은 조주사라는 자가,

“어디 잠깐 다녀가리다.“

하고 샛길로 슬쩍 빠져 버리는 것을,

“꼭 다녀오시우. 기다릴 터이니.”

하고 어슬렁어슬렁 술에 풀린 다리를 좌우로 내놓으며 큰길거리를 지나갔다.

길가에는 전기등으로 휘황히 차린 드팀전, 잡화상, 더구나 자기의 평생 한번 가져 보고 싶은 자전거가 수십 대 느런히 놓인 것이 어른어른하여 불 같은 호기김이 일어나서 그 앞에 서서 그것을 구경도 하다가 다시 돌아서며,

“내 돈만 모으면 꼭 한 개 사서 두고 말 터이야.“

하며 그는 주먹을 쥐며 결심을 하고 머릿속으로는 자기 시골에서 때때로 자전거 타고 다니는 면서기를 보고 부러워하던 생각을 하였다.

그는 혼자 자전거 공상을 하다가 그것이 어느덧 변하였는지 양복 입은 면서기가 되었다가, 다시 돈을 많이 가진 촌부자가 되었다가, 그러다가 발부리가 돌을 차는 바람에 다시 지금 철원 와서 노동하려는 지형근이가 되었다.

그는 훗훗한 남풍이 빙그르 자기를 싸고도는 큰길을 지내 놓고 골목길로 들어서다가 어떤 촌색시가 지나가는 것을 보고, 깜박 잊어버렸던 이화가 다시 눈앞에 보였다.

그는 술기운이 젊은 피를 태우는 번뇌스러운 감정 속에 그 이화를 다시 생각하였다.

“조주사 말이 참말이라 하면 이화에게도 어딘지 사람다운 데가 남아 있었던 것이지. 그러나 만리 타향에서 옛 사람을 만났지만 시운이 글렀으니 낸들 어찌하나?”

하며 개탄하는 맘으로 얼마를 걸어가다가

“그러나 누가 창기 여자의 울음을 곧이 생각한담. 모두 못 믿을 것이지.”

바로 세상 경험이 풍부한 사람처럼 점잖게 결정을 하고 앞에 누가 있는 사람처럼 고개와 손을 내흔들었다.

그는 움에 왔다. 옆에 무성한 풀 냄새가 움을 덮은 진흙 냄새와 함째 답답하게 가슴을 누른다.

노동자들은 웃통 아랫도리를 벗은 채 거적대기들을 깔고 즐비하게 드러누워서 혹은 코를 골기도 하고 혹은 돈 타령도 하고 혹은 두 다리를 모으고 앉아 단소도 분다. 한 모퉁이에는 고춧가루를 태우는 것같이 눈을 뜰 수 없는 풀로 모깃불을 놓았다.

그는 여러 사람 있는 틈을 지나갔으나 자기를 보고 아는 체하는 사람이 드물었다. 그 중에 키 크고 수염 많이 나고 얼굴 검고 눈이 부리부리한 사람이,

“허허 대단히 좋으시구려. 연일 약주만 잡수시니. 조주사만 친구고 우리 같은 사람은 친구가 못 된단 말요? 그런 데는 따돌리고 다니니. 허 젊은 친구가 그런 데 맛을 붙여 서 는‥‥‥”

빈정대는 어조로 말을 하니 형근은 갑자기 할말이 없어서 주저주저 어색하다가,

“잘못 됐소이다.“

하였으나 맨 나중에 ‘젊은 친구가’ 하고 누구를 타이르는 것 같은 것이 주제넘은 것 같아서 혼자 속으로 알아 두었다.

그는 바깥에 좀 앉아서 여러 사람들과 이야기나 할까 하는 생각이 있었으나 그자의 말이 비위를 거슬리므로 그대로 움 속으로 들어가기로 하였다.

움 속은 흙내에 사람의 땀내, 감발에서 나는 악취가 더운 기운에 섞여서 일종의 말할 수 없는 냄새를 낸다. 즉 여우의 굴에서 노린 내가 나는 것같이 사람 중에서도 노동자 굴에서 노동자내가 나는 것이다.

그는 불과 몇 마장 떨어져 있지 않는 이화 집과 지금 자기가 들어온 이 움 속과의 차이가 너무 현저한 데 아니 놀랄 수가 없었다.

이화는 일개 창부다. 자기는 그래도 그렇지 않은 집 자손으로 힘들여 돈을 벌려는 사람이다. 그 차이가 너무 과한 데 그는 의혹이 없지 않았다.

그가 더듬거려 움 안으로 들어갈 때,

“어디 갔다 오나, 여태 찾았지.”

하고 나서는 사람은 자기 동향 친구였다.

“난 길이나 잊어먹지 않았나 하고 한참 걱정을 하였네그려. 그래서 각처로 찾아다녔지. 대관절 저녁이나 먹었나?”

형근은 웬일인지 이화의 집에 갔었단 말을 하기가 부끄러웠다. 그는 그 말을 하면 그 동향 친구가 반드시 자기를 꾸짖을 것 같고 또 이화의 집 갔던 것이 더구나 옷을 팔아서까지 갔었다는 것은 말할 수 없이 분수에 넘치는 경솔한 짓 같았다.

그래서 그는,

“나는 또 자네를 찾았다네.”

처음으로 속에 없는 거짓말을 하였다.

“조주사가 한잔 낸다고 해서‥‥‥”

잠깐 말을 입속에다 넣고 우물우물하다가,

“그래서 또 한잔 먹지 않았나. 자네하고 같이 가지 못한 것이 대단히 미안하데마는 어디 있어야지‥‥‥”

동향 친구는 형근의 말에 거짓이야 있을 리 없으리라 믿는 듯이,

“인제는 고만 다니게. 여기가 어떤 덴 줄 아나? 조주산지 그자하고 다니지 말게. 사람 사귀기도 몹시 어려우이.”

형근은 실쭉하여지며 말이 없었다. 속으로 생각에 대체로는 그 친구 말이 옳은 말이지 마는 조주사 같은 친구와 사귀지 말라는 데는 도리어 동향 친구에게 질투가 있는가 하여 적지않이 불목이 있었으나 말로는 나타내지 않았다.

그는 말이 없이 한 귀퉁이를 부비고 드러누웠다.

일부러 눈을 감아 오지 않는 잠을 청하나 찌는 듯이 무더운 기운이 코 속에 확 차서 잠은 오지 아니하고 답답한 생각에 마음이 바깥으로 나간다.

그는 지금 돈 아는 동물들이 늘비하게 드러누워 있는 곳에서 생각은 이화에게서 멀리 하여지지 아니한다. 그는 어두움 속에서 끊이는 듯 이으는 듯 애소하는 듯 우는 듯한 단소 소리가 움 밖에서부터 청아하게 이 움 속으로 흘러 들어와 자기의 몸과 혼을 스치고 지나갈 때 그의 피는 공연히 타는 것 같아서 마음을 어찌할 수 없었다. 그는 고요한 꿈에서 소요하는 것같이 흐르는 듯하고 녹은 듯한 정조에 잠길 때도 있다가, 또는 미쳐 날 뛰는 파도 위에 한 조각 배를 띄우듯이 무서웁게 흔들리는 정열에 마음을 어떻게 진정해야 좋을지 알지 못하기도 하였다.

그는 하는 수 없이 일어섰다. 몸을 털고 나왔다. 그는 움을 뒤에 두고 들로 나왔다가 뒷 산으로 을라갔다가 다시 내려왔다가 앉았다가 섰다가 하였다.

하늘에는 별이 총총하고 풀에는 이슬이 다락다락하였다.

6

이튿날 아침에 해가 동산에 솟았다. 생명 있는 태양이다.

언제든지 절대의 뜨거움과 광명으로 싼 생명을 가진 태양이다. 태양이 없는 곳에서 생명이 없다.

구리빛 햇발이 온돌방을 비추고 그것이 또한 거짓이 없고 편협함이 없이 이 구더기 같은 노동자들이 모인 곳에 그의 생명의 빛을 비추어 주었다.

형근은 일어나던 맡에 세수를 하였다. 그는 세수를 하고 아침 안개가 낀 너른 벌판을 내다보고 호호탕탕한 기운을 모조리 들이마실 듯이 가슴을 벌리고 숨을 들이마셨다. 그는 또 한 번 너른 들에서 이삭이 패어 가는 벼 위에 가득히 내려쪼인 햇볕이 눈부시게 반사하는 것을 보고 알 수 없는 기운이 자기 몸에 가득 차는 것 같아서 두 팔을 들었다 놓았다 하였다.

형근은 여러 사람들과 모여 앉아서 밥 되기만 기다리고 있었다. 노란 조밥을 사기 사발에 눌러 담고 그 위에 외지 한 쪽씩 놓거나 그렇지 않으면 무쪽 두 개씩 놓는 것이 그들의 양식이니 그나마 잘못하면 차례가 못 가거나 양에 차지 않아서 투덜대게 되는 것이니, 형근의 신조는 어떻든 이런 곳이나 이런 밥을 달게 여기고 부지런히 일만 하고 얼마만 신고(辛苦)하면 그만이라고 스스로 위로 하였다.

형근도 남과 같이 밥을 기다렸다. 어저께와 그저께 같이 술을 먹고 지내던 두서너 사람도 옆에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수상스러웁게 자기를 두서 너 번 치어다보더니,

“여보슈!“

하고 말이 공손하여졌다.

형근은 따라서,

“왜 그러시우.“

하였다. 세상 사람도 모두 자기같이 은근하고 친절하였다.

“미안한 말씀이지마는 돈 가지신 것 있거든 이십 전만 취하실 수 없겠소?”

형근은 그 말하는 사람보다 자기가 더욱 미안하고 얼굴이 붉어지는 것 같았다. 자기가 남더러 돈 취해 달랠 적 모양으로 그도 무안하리라 하였다.

그래서 그는 주머니를 뒤졌다. 형근은 어저께 술집에서 남은 돈 이십 전이 있는 것을 생각하고 서슴지 않고 내주었다.

“예, 여기 이십 전이 남았구려, 자 엣소이다.“

하고 신기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꾸어 주었다. 속으로는 이따가 주겠지 하였다. 그 사람은 그것을 받더니,

“고맙소이다. 이따 저녁에 갚으리다.“

하고는 옆엣사람과 수군거리며 저리로 가 버린다.

형근은 한참이나 않아서 기다리려니까 배가 고파 왔다. 그리고 여러 사람들을 보니까 그들도 일하러 가는 사람 같지는 않게 배포 유하게 앉아서 이야기들을 한다. 한옆에서는 어떤 자가 다른 어떤 사람더러 오 전짜리 단풍표 담배 한 개를 달라거니 안 주겠거니 하고 싸움이 일어나서 부산하다.

조금 있더니 동향 친구가 왔다.

“여보게 밥이 다 되었네. 밥 먹으러 가세.”

하며,

“밥값이나 있나?“

하였다.

“밥값이라니?“

형근은 눈이 둥그래졌다.

“밥값이라니가 무어야? 누가 거저 밥 준다든가? 십 오 전씩이야.”

형근은 기가 막혔다. 오던 날부터 그저 모든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밀어맡기면 될 줄 알았고, 또 그자들도 염려 말아, 염려 말아 하는 바람에 정신없이 지내다가 이십 전까지 아침에 뺏긴 것을 생각하니 허무하다.

“밥은 일일이 사서 먹나?”

“그럼. 누가 밥값까지 낸다던가? 어림없네.“

동향 친구는 그래도 주머니에 돈이 얼마나 남았을 줄 알고서,

“이거 왜 이러나, 어서 내게.”

형근은 덜렁 가슴이 내려앉아서 동향 친구를 붙잡고 돈이 한 푼도 없는 이야기를 하였다.

동향 친구라는 사람은 친구라고 하느니 보다 형근 집에 은혜를 입은 사람이니, 같은 양반으로 형근네는 돈푼이나 있고 할 때 그 친구의 아버지가 빛진 것이 있었으나 그것을 갚지 못하여 심뇌하는 것을 형근의 아버지가 알고 호협한 생각에 그대로 탕감을 해 준 일이 있다.

지금은 그 아들들이 서로 만났지만 선대의 일들을 서로 갸슴속에는 넣어 둔 터이라 그 친구는 형근을 그리 괄시를 하지 않는다.

“그럼 가세.“

그 친구와 밥을 먹었다. 그나마 형근은 신세 밥 같아서 먹고 나서도 몹시 미안하였다.

아침을 먹더니 그 친구가 형근을 보고 이르는 말이

“누가 어디를 가자거나, 일구녕이 있다거나 도무지 듣지 말게.”

하고 점심값을 주고 가 버렸다.

그는 공연히 왔다갔다하며 혼자 심심히 지낼 뿐이다. 조주사가 오늘은 꼭 올 터인데 어제 어디서 자고 아니 오노 하며 오정이 넘어 해가 두 시나 되도록 기다렸으나 오지 않았다.

그는 한옆으로 밥 먹을 구멍이 얼핏 생겼으면 좋을 텐데 하는 걱정과 또 조주사나 왔으면 모든 것을 의논하여 보겠다 하고 기다리는 마음도 마음이려니와, 또 한 가지는 이화의 울던 꼴이 생각나고 또는 은근히 한 번 오라고 하던 말이 어떻게 박여 들렸는지 잊을 수가 없다. 그나마 하룻밤 하루낮이 지나고 나니까 부썩 마음이 그리로 키어서 못 견디겠다.

그는 앞산에 올라가서 이화의 집이라도 가리켜 보려는 듯이 부리나케 올라갔다. 그러나 서투른 눈에 복잡해 보이는 시가가 방위도 잘 알 수 없고 어디쯤인지도 몰라서 동에서 떴다가 서에서 지는 해만 공연히 치어다보며, ‘동서남북’만 욀 뿐, 나중에는 고향이나 바라본다고 남쪽만 내다보다가 그대로 풀밭에서 멀거니 있다가 잠이 들어 버렸다.

잠을 깨고 나니 벌써 해가 서쪽에 기울려 하였다. 그는 무엇에 놀란 사람처럼 벌떡 일어나서 허둥지둥 움을 향하여 왔다.

그는 밥 먹을 시간이 늦은 것도 늦은 것이 려니와 조주사가 일할 자리를 얻어 가지고 와서 자기를 찾다가 그대로 가지 아니하였나 하는 걱정이 있음이었다. 그는 때늦은 찬밥을 사먹고 옆엣사람들에게 물어 보았으나 조주사는 다녀가지 않았다 하였다.

그렇게 지내기를 닷새가 넘고 열흘이 넘었다.

조주사라는 자는 장거리에서 한두 번 만났으나 코웃음을 치고 우물쭈물 얼렁얼렁하고 홱 피해 버릴 뿐이요 전과는 딴판이요, 동향 친구는 사람이 입이 무거워서 말은 아니 하지마는 그래도 기색이 좋은 기색은 아니었다. 그뿐 아니라 그 더운 염천에 그 지저분한 곳에서 여벌 옷 한 벌을 입고 지내려니까 온몸에서 땀내가 터지게 나고 옷이 척척 달라붙어서 거북하고 끈적끈적하기 짝이 없다.

그는 비로소 사람 많이 사는 데 인심 강박한 것을 알았다. 아무도 자기를 위하여 힘써 주는 이 없고 더구나 서로 으르렁대고 뺏아 먹으려고 하는 것뿐인 것을 알았다.

그뿐 아니라 그는 지금까지 시골서는 양반 이었고 행세하는 사람이요, 먹을 것은 없으나 그래도 일 군에서 누구라면 알아 주기는 하였으나 지금 여기 와서는 지형근의 존재가 없다. 그뿐이면 오히려 예사이지마는 입을 것도 없고 먹을 것도 없어 남의 것을 빌어 먹다시피 하는 사람이 된 것을 생각할 때 그는 자기가 불쌍하니보다도 웬일인지 가슴에서 무서운 생각이 날 뿐이다.

자기가 이화를 보고 그 계집이 창기가 된 것을 비웃었으나 그는 오늘에 거의 비렁뱅이가 된 것을 생각하고 눈이 아플 만큼 부끄럽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이곳에 온지 열흘이 넘도록 그는 일이라고는 붙들어 보지를 못하였다. 자기뿐만 아니라 자기와 같이 잠을 자는 축에도 십 여 명이나 그런 사람들이 있다. 그는 이상해서 하루는 물었다.

“당신들도 일자리가 없어서 노시우?”

그들은 서로 얼굴들을 보더니 그 중 한 사 람이,

“그렇소, 요새는 여름이 되어서 전황한 까닭에 일본 사람들이 일을 하지 않는다우. 그래 일자리가 퍽 드물죠. 그렇지만 가을만 되면 좀 괜찮죠.”

“가을에는 일본 사람들이 돈을 풀어 놓나요?”

”풀다뿐요? 작년 가을에도 여기 수만금 떨어졌소. 오죽해야 돈 소내기가 온다 했소.“

형근은 다만,

“네에, 그래요?“

하고 말을 못 했다.

“가을까지만 기다리시우. 그때는 괜찮으시리다. 저것 좀.”

하고 전찻길 깔아 놓은 걸 가리키며,

“저것 놓는 데도 돈이 산더미같이 들었소. 지긋지긋합니다.“

형근은 그 말에 배가 불러서 공연히 좋았다. 속으로 가을만 되면 태산만큼은 그만 두고라도 그 한 모퉁이쯤은 생기려니 하고 혼자 좋았다.

돈 생기는 생각만 하면 이화 생각이 난다. 이화 생각이 나면 이화 집에 가고 싶다. 젊은 가슴은 그림자를 붙잡으려는 듯한 부질없는 정열로 해서 애를 쓴다.

그는 밤중만 되면 이화 집 앞을 돌아온다. 갈 적에는 혹시 이화의 그림자라도 보았으면 하고 가기는 가지마는 어찌 그런 일에 그러한 공교로움이 있을 리가 있으랴.

갔다가는 헛되이 돌아오고 돌아올 때에는 스스로 다시 안 가기를 맹세한다. 맹세만 할 뿐이 아니라 이화를 멸시하고 욕하고 침뱉았다.

그러나 그 이튿날이 되면은 아니 가려 하다가도 자연히 발길이 그쪽으로 향하여져서 으례 허행일 것을 알면서도 다녀오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루는 전처럼 그 집 앞을 지나다가 그 집을 기웃이 들여다보았다. 여간한 대담한 짓이 아니었다. 그는 발길을 돌이켜 누가 쫓아서 나오는 것처럼 머리끝이 으쓱하여 나와서 집 모퉁이를 돌아서며 다시 한 번 훌쩍 돌아볼 제 마침 그 집에서 나오는 사람이 있는 것을 보았다.

그 사람은 다시 말할 것 없는 조주사였다. 형근의 얼굴에는 갑자기 질투의 뜨거운 피가 올라오더니 두 눈에서 번개 같은 불이 솟는 것 같았다.

만일 자기 손에 날카로운 칼이 있다 하면 당장에 조주사를 죽여 버리거나 그렇지 않으면 자기가 죽어 버릴 것 같았다.

그는 그날 종일 잠을 자지 못하였다. 그는 부질없이 몸에 힘이 오르고 엉터리없는 결심과 용기가 생기기 시작하였다.

그는 내일은 내 모가지가 달아나더라도 이화를 만나보리라 하였다.

그러나 만나볼 도리는 없었다. 자기의 주제를 둘러보며 부끄러운 생각이 날 뿐이요, 주머니에는 가을에나 들어올 돈이 아직 한푼도 없다.

그는 눈을 감고 생각하였다.

(내 맘이 떴다.)

그러나 비행기를 탄 사람이 바깥을 보지 않고는 떴는지 안 떴는지를 모르는 것처럼 형근은 뜬 것 같기는 하나 또 그렇기 않은 것 같기도 하다.

혹간 냉정히 자기가 자기를 보려다가도 조주사가 생각날 적에는 그는 조주사는 볼지라도 자기는 볼 수가 없었다.

그는 돈을 얻을 도리를 생각하였다. 그러나 바위 위에서 물을 구하는 것이나 마찬 가지였다.

빈궁은 죄악을 만든다는 말이 진리가 아니라고 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형근은 무슨 분수 이외의 도리가 있다 하면 해 보지 않고는 못 배길 만큼 되었다.

그는 동향 친구를 또 생각하였다. 동향 친구는 그 동안 근근히 저축한 돈이 얼마인지는 모르나 쇠사슬로 얽어 놓은 가죽지갑 속에 있는 것을 일전에 무엇을 찾느라고 꺼내는 것을 보았다.

그는 처음에는,

(그렇지만 염치가 어떻게 돈까지 꾸어 달라노?)

하다가는,

(돈은 또 무엇에 쓰느냐고 하면 대답할 말도 없지.)

하고 눈을 꿈벅꿈벅하다가,

(그렇지만 내 말이면 제가 돈 몇 전쯤 안 취해 주지는 못하렷다.)

이렇게 흔자 궁리는 하나 맘뿐이요 몸으로 할 것 같지는 않다.

그는 또 당장에 단념을 하여 버리는 것이 옳은 듯이,

(에 고만두어라, 내 마음이 비뚤어 가기 시작을 하는 것이야.)

하고 툭툭 털고 일어나서 빙빙 돌아다녔다. 그날 저녁 동향 친구는 형근을 찾았다.

“여보게, 일자리가 생겼네.”

하고 형근에게 달려들 듯하였다. 형근은 너무 의외의 일이라 가슴이 공연히 설렁 내려 앉더니 두근두근하며 손끝이 떨린다.

“어디?”

“글쎄 이리 오게. 떠들면 여러 사람 와 덤비네.“

“모레는 금화(金化)로 가세. 내가 오늘 거기 십장에게 자네 일까지 부탁을 하여 놓았으니까 염려없네. 금전도 퍽 후하고 일도 그리 되지 않은 것이야.”

형근은 좋은 소식은 좋은 소식이나 도는 마음 한 귀퉁이가 서운하다.

“금화?“

하고 형근은 눈을 크게 뜨며,

“여기서 괘 멀지?”

하고 초연한 생각이 나타난다.

“무얼. 얼마 된다고. 한나절이면 갈걸.”

두 사람은 모레 같이 떠나기로 약조를 하였다. 형근은 감사스러운 중에도 무정스러운 감정으로 공연히 마음이 가라앉지 않아서 허둥지둥 엉덩이를 땅에 대이지 아니하고 저녁을 먹었다.

저녁을 먹은 뒤에 그는 움 앞에 다시 앉았었다. 이화는 다시 한 번 보지도 못하는구나, 하며 한숨을 쉬었다. 그러나 꼭 한 번 오라고 하였으니 의리상으로라도 한 번은 가 보아야 할 터인데 — 하다가 그대로 생각나는 것은 동향 친구 주머니 속아 있는 지전 조각이었다.

(내가 입으로 말을 할 수야 있나? 죽어도 그것은 할 수가 없지, )

말을 하는 입내만 내어 보아도 쭈뼛쭈뼛하여지는 것 같다.

(인제야 일할 구녕이 생겼으니까 나중에 갚는 것도 걱정이 없어졌으니까, )

으쓱한 생각에 마음이 느긋하여졌다. 이화를 찾아가는 것도 그다지 부끄러울 것 없을 것 같았다.

(세상에 사람이 살아가려면 권도라는 것도 있는 법이지마는 나 같아서야 어디 살아갈 수가 있어야지‥‥‥)

해가 넘어가고 날이 어둑어둑하여지니까 공연히 마음이 처량하여지면서 쓸쓸하다.

오늘 저녁이 아니면 내일 저녁밖에 없는데 하며 담배를 붙여 물고 한 바퀴 휘 돌아왔다.

와서 보니까 본시 술을 많이 먹지 못하는 동향 친구가 어디선지 술이 잔뜩 취하여 저 쪽에다가 거적을 깔고 외따로이 누워 있다.

(이것이 웬일인가?)

하고 곁으로 가 보니까 그는 세상을 모르고 잔다.

그의 가슴은 웬일인지 무슨 예감을 받은 사람처럼 떨리더니 그의 머리속에 번개같이 일어나는 충동이 있다.

마치 어여쁜 여자가 외로이 누운 그 곁에 선 젊은 남자가 받는 충동이나 마찬가지로, 주머니에 돈을 지닌 사람이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 의식을 잃어 버리고 누운 것을 본 형근은, 더구나 돈에 대하여 목전에 절실한 필요를 느끼는 그는 무서운 죄악의 충동을 느끼었다.

그러나 그는 그 찰나에 자기가 의식치 못하던 죄악의 충동을 일으킨 것을 깨달았을 때 그는 이를 깨물며 주먹을 쥐고 울 듯이 고개를 내젓고 마음속 깊이깊이 뜨거운 후회로 자기를 깨달았다.

그는 그러한 마음을 한때라도 다정한 친구에게 일으킨 것이 그에게 대하여 무엇이라고 말할 수 없이 미안하였다.

그는 그를 잡아 흔들었다.

“여보게, 이슬 맞으면 해로우이, 들어가세.“

목소리는 다정함으로 떨렸다.

“응, 응, 가만 있어.”

하며 다시 얼굴을 하늘로 두고 뒤쳐 드러누우며 그는 풀무같이 숨을 쉬면서 드르렁드르렁 코청이 떨어지듯이 숨을 쉬었다.

“이거 큰일났군.“

형근은 그래도 다시 가까이 가서 몸을 추스르려 할 때에 그 동향 친구의 지갑이 어디 들어 있는지 그것부터 먼저 보지 아니치 못 하였다.

그는 동향 친구를 일으켜 겨드랑이를 부축하였다. 동향 친구는 세상을 몰랐었다. 그러나 눈을 한 번 떠서 형근을 보더니 안심하는 듯이 다시 까부라졌다. 형근의 손은 그 동향 친구의 지갑에 닿았다. 그는 맥이 풀려서 지갑을 꺼내기는 고사하고 친구까지 땅에 떨어뜨릴 뻔하였다. 그는 다시 팔에 힘을 주어 움속까지 그를 끌고 들어갔다.

바깥에서는 여러 사람들이 이 꼴을 보며 저희들끼리 떠들었으나 거들어 주는 자는 없었다. 그러나 움 속에 들어오니 아무도 없으므로 별로이 보는 이가 없었다.

형근은 그 컴컴한 움 속에서 그 친구를 든 채 얼마간 섰었다. 내려놓지도 않고 눕히지도 않고 그는 무서운 시련의 기로(岐路)에서 방황하였다.

그는 눈을 한 번 감았다 뜨며 친구를 눕히는 서슬에 지갑을 뺐다. 그의 손은 이상한 쾌감과 함께 손아귀가 뿌듯한 것을 깨달았다.

그는 친구를 뉘고 달음박질해 나왔다. 그는 사람 적은 곳에 가서 그것을 열지도 못하고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그는 다시 시원한 가운데에서도 무서움을 품고 그것을 펴지도 못하고 열지도 못하다가 다시 저쪽으로 갔다.

그는 그대로 그것을 손에 움켜쥔 채 공연히 망설이다가 이화 집을 향하여 갔다.

그는 가는 길 으슥한 곳에서 그것을 펴 보았다. 그는 그것을 펴 보다가 마치 무슨 기운에 눌리는 사람같이 가슴이 설렁하여지며 눈이 등잔만하여지더니 뒤로 물러서,

“에구.“

하였다. 그의 손에는 시퍼런 십 원짜리 석 장이 묻어나왔다.

“이건 잘못했구나.“

그는 그대로 서서 오도가도 못하였다.

자기가 요구하던 것은 그것의 몇 분의 일에 지나지 않는다. 이것은 보기만 해고 무서울 만큼 많은 돈이다. 그러나 이것을 지금에 도로 갖다 줄 수도 없고 또 그대로 있을 수도 없다. 그는 한참이나 떨리는 손을 진정치 못 하다가 그대로 눌러 생각해 버렸다. 술 깨기 전에 갖다 주지, 그리고 쓴 것은 말을 하면 되겠지.

그는 마음을 억지로 가라앉히고 이화 집 문간에 왔다.

그는 전번에 왔을 적이나 별로이 틀림없는 수줍음과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발을 들여놓았다.

그는 술을 청했다. 술을 청하는 것보다도 이화를 부르는 것이었다. 그러나 아래채 조용한 방에서 분명히 이화의 목소리로 소리를 하는 모양인데 나오지를 않고 다른 여자가 나와 맞았다.

방은 전에 그 방이다. 발을 늘여서 안에 있는 것이 바깥에서 보인다.

그는 기대가 틀어진 것에 낙심을 하고 어떻든 술을 청하였다.

그새 여자가 술상을 들고 들어오며 형근을 아래위로 훑어보더니,

“혼자 오셨에요?“

하였다.

“그럼 여러 사람이 다닙니까?”

그 계집은 손으로 입을 막고 웃었다.

“자, 드시죠.”

“술도 급하지만 나는 이화를 좀 보러 왔소.“

그 계집은,

“네?“

하더니 또 웃는다.

“저는 인물이 못생겼죠? 언젯적부터 이화와 가까우시던가요?“

형근은 자기는 좀 점잖이 말을 하는데 그 계집이 실없이 하니까 속으로 화는 나지만 위엄을 보일 수가 없다.

“이화가 어디 갔소? 잠간 보자는 이가 있다고 하구려.“

그 계집은 문을 열고 나가더니 왼 집안이 다 들리게,

“이화 언니! 이화 언니! 당신 나지미 왔소. 어서 나오.”

하며 땍대굴거리며 웃는다.

이화는 무슨 영문을 모르는 듯이 어떤 손님과 자별하게 이야기를 하다가 문을 열고 고개를 내밀면서,

“무어야? 얘가 왜 이래, 실성을 했나?”

하고 형근의 앉아 있는 방을 올려다보고는,

“응 저이가 왔군.”

싱겁게 혼잣말을 하고 다시 돌아앉으니까 함께 한방에 있던 젊은 사람(면서기 같은)이 마주 기웃하고 내다보더니,

“저것이 나지미야?“

하고 비웃는다.

“온 이주사도, 아무렇기로 내가‥‥‥”

할 때,

“글쎄, 꼭 봐야 하겠다니 좀 가 봐요.”

하며 그 계집이 지근거린다.

“나를 그렇게 봐서 무엇을 한다더냐?”

하고 이주사라는 자의 눈치를 보는 것이 그의 눈앞을 조리는 모양이다.

“가 봐 주지. 그것도 적선인데. 내 앞이 되어서 몹시 어려워하는 모양이로군. 그럴 것 무엇 있나?”

“온 말씀을 해두 왜 그렇게 하시우. 누구는 끈에 매 놓았읍니까? 나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지내지, 몇십 년 사는 인생이라구.”

“그러나 대관절 어떤 자야.”

“고향서 이웃집 사는 사람야.”

이러는 동안에 형근은 아무도 없는 빈 방에 혼자 앉아 술상만 대하고 있으려니까 싱거웁고 갑갑하고 역심이 나서 올 수도 없고 갈 수도 없다. 그뿐이면 고만이게. 이화라는 년은 다른 놈하고 앉아서 자기 방을 치어다 보는 것이 마치 창살 속에 넣어 놓은 청국 사람의 원숭이같이 대접을 하는 것 같아서 속으로 분하고 아니꼬운 정이 나며,

“천생 타고난 기질을 어떻게 하니? 창기는 판에 박은 창기년이다.“

속으로 이렇게 중얼거리는데 자기 방 계집이 쭈르르 다녀오더니,

“심심하셨죠? 이화는 인제 옵니다.“

하고 술을 따라 놓더니,

“과일 잡숫고 싶지 않으세요? 과일 좀 들여 오죠. 이화도 오거든 같이 먹게요.”

하더니 제멋대로 이것저것 들여다 놓고 먹어 댄다.

아무리 기다려도 이화는 오지 아니한다. 여전히 아랫방에서 그자와 이야기를 하는 모양이다. 형근은 혼자서 술을 먹을 수가 없어서 그 계집과 서로 대작을 하였다. 그 계집은 어수룩하고 아직 경험 없는 것을 알아채고 어떻게 해서든지 형근의 주머니를 알겨낼 생각이다. 주제를 보아서 아직 극단의 수단을 내어놓지 않는다.

한 시간이 지나갔다. 형근은 다시 그 계집에게 이화를 불러 달라고 청을 하였다. 그 계 집은 술잔이나 들어가더니 형근의 말을 안 듣고 요리 핑계 조리 핑계한다. 형근도 술잔이나 들어가니까 객기가 나지 않는 것도 아니다.

“가 불러 와.“

그는 소리를 질렀다.

“싫소.“

“왜 싫어?“

웃방에서 왁자하는 것이 자기 때문인 것을 알아챈 이화는 문을 열고 나왔다.

“어딜 가?“

면서기는 어느덧 술이 곤죽이 되어 드러누웠다가 이화의 치마를 잡았다.

“잠간만 다녀올 테니 놓세요.”

“안 돼.”

이화는 팩한 성미에 흉허물 없는 것만 믿고 치마를 뿌리쳤다.

“안되기는 왜 안돼요. 잠깐 다녀온다는데. 누가 삼십육계를 하나?“

면서기는 노했다. 그대로 일어섰다. 이화는 형근의 방으로 안 들어가고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술취한 면서기는 다짜고짜로 형근의 방 발을 집어던졌다.

“이놈아! 이런 건방진 자식이, 술잔이나 먹으려거든 국이나 먹으러 다녀. 너 이화는 봐서 무얼 할 모양이냐? 상판 생긴 것하고 그래도 무엇을 달았다고 계집맛은 알아서. 놈 계집 궁등이 따라다닐 만하다.”

형근은 기가 막혀 치어다볼 뿐이다.

“이놈아, 왜 눈깔을 오랑캐 뜨고 보니? 내 얼굴에 무엇이 묻었니? 에 튀튀.”

면서기는 침을 방에다 막 뱉는다.

“대관절 이화 어디 갔니? 응, 이화 어디 갔어?”

하고 호통이다. 온 집안 사람이며 술 먹으러 온 사람이 모여들었다.

이화는 이 소리를 듣더니 뛰어나오며 면서기를 달래고 형근에게 연해 눈짓을 하였다.

“글쎄, 이주사 나리. 이게 무슨 짓요. 약주 취했소. 어서 저 방으로 가시우.”

하고 이주사에게 매달리다가,

“대단 미안합니다. 점잖으신 이가 약주가 취해서 그러신 것을 서로 참으시지. 그렇죠? 어서 약주나 자시지요.”

면서기는 그래도 여전히 형근을 보고 놀려 댄다.

“이놈아. 네가 이놈 노동자가 감이 누구 앞에서 이따위 짓을 해? 흥.”

형근의 인습 관념에 젖어 있는 젊은 피는 끓었다. 그는 결코 자기가 노동자는 아니다. 양반의 자식이요 행세하는 사람이다. 몸은 비록 흙 속에 파묻혔으나 마음과 기운은 살았다.

“무엇, 노동자!“

형근에게는 그 외에 더 큰 모욕이 없었다. 그는 면서기를 향하여 기운에 타는 두 눈을 부릅떴다.

“그래 이놈아, 네가 노동자가 아니고 무엇야?“

“글쎄, 그만들 두세요. 제발 저 방으로 가세요.“

하며 이화는 가운데 들어섰다. 형근은 이화를 뿌리쳤다.

그는 이화를 뿌리칠 때,

“더러운 년! 갈보년.”

하는 소리가 입으로 나오지는 아니하였으나 그의 온 전신을 귀퉁이 귀퉁이 속속들이 울리는 것 같았다.

형근은 이화를 뿌리치던 손으로 이주사라는 자의 따귀를 보기좋게 붙이니까 그대로 땅에 나가 딩굴었다.

  • “이놈 봐라, 사람 친다.“

하더니 면서기는 웃옷을 벗고 덤비었다.

“어디 또 한 번 때려 봐라.”

하고 주먹을 들고 덤비려고 사릴 제 옆엣방에서도 툭 튀어나오고 대문에서도 쑥 들어서는 사람들의 눈은 횃불같이 타면서 형근을 훑어보더니 다시 이주사를 보고,

”다치지나 않았소? 대관절 어찌된 일요? 말을 좀 하시구려.”

옆에 섰던 이화도 말을 아니 하고 그 계집도 말이 없다.

“대관절 손을 먼저 댄 게 누구야?”

하며 형근을 보더니 그 중에 구척같이 키가 크고 수염이 더부룩한 자가 들어서더니,

“여보 이 친구. 젊은 친구가 술잔이나 먹었으면 곱게 삭일 일이지 누구에게다 손찌검하고‥‥‥흥, 맛 좀 보련.“

하더니 넉가래 같은 손이 보기좋게 따귀를 붙이는데 눈에서 불이 나며 입에서는 에구구 소리가 저절로 난다. 그는 아무 말 없이 볼따구니만 쥐고 있다.

그러려니까 연신 번갈아 가며 주먹과 발길이 들어오는데 정신이 아뜩아뜩하고 앞이 보이지를 않는다. 그는 에구구 소리만 지르면서,

“글쎄, 나는 잘못한 게 없습니다.”

하고 빌어 대면,

“이놈아, 잔말 말어. 너도 세상맛을 좀 알아야 하겠다.“

하고 한 개 더 붙인다. 옷은 갈가리 찢어지고 얼굴에서는 피가 흐른다.

이화는 후닥닥거리는 서슬에 마루끝에 서서,

“여보, 박서방, 가서 순사를 불러 오. 야단났소. 그저 그만두라니까 그러는구려.”

할 때 형근은 순사라는 소리가 귀에 들릴 제 그는 꿈에서 깬 것같이 정신이 났다.

(이화가 나를 순사에게!)

하고 얻어맞는 중에서도 온 기운을 다 내었다. 초자연의 기운은 그를 거기서 뛰어 여러 사람을 헤치고 문 밖으로 뛰어 나갈 수 있게 하였다.

그는 눈 딱 감고 뛰었다. 그러나 때는 늦었다. 문간에 나가자 그 집으로 들어오는 사람이 있었다. 그러나 형근은 그것도 못 보았다. 들어오던 사람은 형근을 보더니 재빠르게 뒤를 따랐다.

  • 형근의 다리는 마치 언덕비탈을 몰려내려 가다 다리의 풀이 빠진 사람처럼 곤두박질을 하였다. 그의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집이나 사람이나 전기불이 별똥 떨어지듯이 휙휙 지나갈 뿐이다.

뒤에서는 여전히 따라왔다.

“도적야!”

달아나며 이 소리를 귓결에 들은 그는,

(응, 도적?)

(그러면 나를 쫓아오는 것이 아닌 게지.)

그의 머리속에서는 자기가 지금 어째 도망을 하는지 그 본능은 있었을지언정 의식은 없었던 모양이다.

그러나 그는 다만,

(나는 도적이 아니다.)

하면서도 달음질을 여전히 하였다.

그는 어느덧 움 앞에 왔다.

그는 친구의 이름을 부르고 그자리에 기진해 자빠져서 기운을 잃었다.

경관과 형사는 그놈을 뒤져 동향 친구에게 지갑을 보이고,

“당신이 찾던 것이 이것이요? 꼭 틀림없소?”

동향 친구는 눈이 뚱그래서,

“형근이가 그랬을 리가 없는데요.”

하니까,

“듣기 싫어. 물건을 찾으면 그만이지. 맞느냐 말야.“

하며 경관은 흩뿌린다.

“네.“

친구는 가까스로 대답을 하더니,

“그런 줄 알았더면 경찰서에도 알리지 않을걸.“

하며,

“여보게, 형근이, 정신차려. 일어나서 말이나 좀 하세, 속 시원하게. 도무지 이게 웬일이 란 말인가?“

하며 비쭉비쭉 운다.

형근은 아직까지도 깨지 못하고 그대로 누워 있다.

7

형근은 그날로 경찰서 구류간에서 잤다. 어려운 취조가 끝난 뒤에 형근은 검사국으로 넘어갔다. 그 이튿날 신문에는 아래와 같은 신문 기사가 났다.

XXX 출생으로 철원군 XXX리에서 노동을 하는 지형근(池亨根) (XX)지난 X월 X일 자기 동향 친구의 주머니에 있는 삼십 원을 그 친구가 술이 취하여 자는 틈을 타서 절취하여다가 XX 이화라는 술 집에서 호유하다가 철원 경찰서 형사에게 체포되어 취조를 마치고 검사국으로 압송하였다더라.

<1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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